본격 ‘섹스룸스타그램’ 만들기

인테리어는 자아의 퍼즐을 맞추는 과정이자 욕망의 발현이며 나만의 은밀한 세계를 설계하는 것과 같다. 그런 면에서 플레이스테이션 VR과 의자 체위를 위한 흔들리는 그네가 있는 섹스룸은 방을 서재나 영화관으로 꾸미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전에 건물 전체를 섹스룸으로 채운 신비로운 공간에 간 적이 있다. 사방에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하는 아리송한 아이템 천지였다. 예측 가능한 물건이 늘어서 있는 지상층과 달리 지하에는 낮은 조도의 문 닫힌 음산한 방들이 있었다. 이케아의 쇼케이스 룸처럼 섹스를 위한 기구들로 가득한 각기 다른 컨셉트의 섹스룸이었다. 거울로 둘러싸인 방에는 초콜릿으로 만든 티팬티와 딜도가 걸려 있고, 침대 모서리에는 족쇄가 매달려 있었다. 그 옆방에는 SM을 위해 만든 공간인 듯 족쇄가 달린 철봉이 서 있고, 사방에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작은 불덩어리로 몸에 자극을 줘 고통의 쾌락을 느끼게 하는 일종의 섹스 토이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그들만큼 익스트림 섹스를 즐기지 않아도 일상 공간의 작은 변화로 뜨거운 섹스 놀이터를 만들 수 있다. 나는 하펜시티에서 사 온 족쇄와 로프를 침대에 묶어 종종 애인과 롤플레이 섹스를 한다. 그때는 사방이 암막 커튼으로 둘러싸여 있어야 하고(누가 보면 큰일이다), 붉은색 조명등이나 미러볼로 사이키한 분위기를 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도에서 구입한 향초와 검은 안대만 있으면 하펜 시티 섹스숍의 은밀한 방 따위는 부럽지 않다.

 

꼴리는 대로 하기

얼마 전 롤링스톤스가 새로운 음반 <Blue & Lonesome>을 발표했을 때, 그들의 노래는 들리지 않았다. 내 눈엔 오로지 파란 막대사탕을 빨던 크리스틴 스튜어트만 들어올 뿐. 수록곡 ‘Ride’Em on Down’의 뮤직비디오에서 머스탱을 몰고 나타난 스튜어트는 그야말로 몸이 녹아내릴 만큼 끝내준다. 가슴이 보일락 말락 한 찢어진 흰 티셔츠를 입고 머스탱과 한 몸으로 질주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타인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누가 본들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혼춤’을 춘다. 교각 아래에서 과감한 드리프트를 선보이고 핸들을 기타 삼아 자동차를 연주하다가 붉은 석양 아래에서 ‘Fuck You’ 사인을 날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녀처럼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신념과 행동의 합일,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쏟아내는 이른바 ‘나쁜 년’ 스웨그를 올해는 더 실천하겠노라고 다짐한다.

요즘 난 오랜 시간 공들여 머리를 기르는 중이다. 엉덩이에 닿을 듯 말 듯 길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여인처럼 발가벗고 해벽 아래에서 누드 사진을 찍으리라. 스튜어트처럼 머스탱을 몰지는 못해도 롤링스톤스의 노래는 배경으로 틀어놓아야겠다. 언제나 그 반항정신과 자유로움이 세상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왔다고 믿으며.

 

내 오르가슴은 내 손으로

그 사람 앞에 서면 사회적 지위나 자존심 따위는 내려놓게 됐다. 그저 몸이 원하는 대로 만지고 핥고 때리고 만끽하다가 본능에 가까운 극렬한 고함을 질러대며 ‘브라보’를 외칠 뿐. 다른 세계에서 성장기를 보낸 외국인이기 때문일까. 나는 그를 만나며 성적 본능을 깨우쳤다. “네가 하는 걸 보고싶어.” 수개월간의 장거리 연애에 지친 그의 말에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을 느끼기보다 가슴이 뛴 이유다. “타인 앞에서 자위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여자들끼리는 자위에 대해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걸.” 나의 대답에 그는 조금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자위는 금기나 다름없으니까. 여자가 섹스를 더 잘하면 놀던 여자(엄밀히 말해 많이 자본 여자)로 낙인찍는 나라에서 자위라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한 여자들조차 자위행위에 대해 언급할 때만큼은 보수적이다. 하여, 그가 내게 자위가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이며 자위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제껏 자위의 기쁨을 모르고 살았을 거다.

자위는 속도감이 중요한데 가장 좋은 방법은 성감대의 화룡점정인 클리토리스를 이용하는 거다. 젖꼭지가 단단해졌을 때 차가운 얼음이나 질감이 확실한 패브릭으로 유두에 자극을 주는 방법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파트너가 시의적절한 ‘지시’를 곁들인다면 그보다 더 섹시할 수는 없다. 나는 종종 페이스타임을 이용해 그의 지시를 받곤 했다. 그는 절대 내 마음대로 절정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데, 절정에 이르기 직전 동작을 멈추게 하고 심호흡으로 내 몸을 진정시켰다. ‘일시 정지’를 여러 번 반복하다 결국 내 몸이 더는 그 강약을 참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그의 허가가 떨어지고 나는 생애 가장 오래 지속되는 멀티 오르가슴을 느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이어지는 저릿저릿한 울림이 사지를 휘감았다. 이다지도 좋은 것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적어도 외로운 밤 전 남친에게 지질한 카톡 따위는 보내지 않았으리라. 그래, 올해에는 더 많이 자위하자. 그리고 방금 섹스하고 나온 여자처럼 생기발랄한 낯빛으로 일상을 견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