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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았던 3월호 마감을 마치고 나니 사무실 책상이 폐허 같았다. 커피가 바짝 말라 있는 컵이 몇 개나 쌓여 있고, 쓰레기인지 서류인지 모를 것들이 책상 위에 흩어져 있었으며, 전화선은 언제부터였는지 심하게 꼬여 있어 전화를 받으려면 얼굴을 전화기에 바짝 가져가야 했다.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한 지 오래됐고, 속이 아픈 날이면 커피를 마시지 않기보다는 간편하게 위장약을 먹고 말았다. 문득 스스로가 혼돈 상태인 책상 위에 아무렇게 올려져 있는 물건들처럼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본래의 나는 지난 한철 텃밭에서 가꾼 채소들로 한 상 가득 저녁을 차리기도 했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물건을 사고파는 도심 장터 마르쉐@혜화의 시작을 함께하며 진심이 담긴 먹을거리에 감동받기도 했으며, 뚝딱 만들어내는 인스턴트보다 속도가 더디더라도 건강한 재료를 가지고 만드는 진짜 요리를 더 좋아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일단 도시락을 챙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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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는 대신 어느 식품업체의 건강을 내세운 도시락을 주문하기로 했다. 매일 다른 잡곡이 들어간 밥 과 신선한 샐러드, 나트륨을 확 줄인 반찬 등으로 이뤄진 꼼꼼한 식단으로 구성된 한 끼 식사가 일회용 그릇에 담겨 온다. 도시락을 다 먹고 나면 일회용품이 한가득이다. 지구의 건강을 해쳐 사람의 건강을 지키는 것 같았다. 히라마쓰 요코가 지은 <혼자서도 잘 먹었습니다>(인디고 펴냄)에 보면 도시락의 본심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도시락에는 본심이 드러난다. 허술하면 허술한 대로, 정성을 쏟으면 정성을 쏟은 대로. 과도하게 허세를 부리면 그것 또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 도시락의 진심은 딱 거기까지였다.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앨리스 펴냄)라는 책에는 시노다 나오키가 23년간 기록한 그의 모든 식사가 담겨 있다. 음식을 사진 대신 그림으로 남기고 간단하게 코멘트를 덧붙였는데, 식사를 기록하는 습관 덕분에 간식이나 몸에 나쁜 음식을 피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식사에는 삶에 대 한 개개인의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식사를 그저 한 끼를 때우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면, 삶의 가치가 건강한 인생이 아니라 다른 무엇일 테고, 건강한 인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한 끼 식사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번 마감이 끝나면 좀 더 괜찮은 도시락을 직접 챙겨봐야겠다. 이왕이면 정직한 농부가 단단한 신념과 땅의 순환을 배려해 수확한 채소, 과일로 채운 도시락을 말이다.

 

스웨덴에는 ‘피카’의 시간이 있다. 커피에 무언가를 곁들여 먹는 시간을 말하는데, 바쁜 와중에 한숨 돌리는 여유로운 시간이기도 하다. 피카에 곁들이는 빵과 과자는 원래 편리한 믹스 제품 대신 정제되지 않은 곡물 가루를 손으로 반죽해 만든다고 한다. 괜찮은 한 끼 식사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이 시간일지도 모른다. 재료를 고르는 시간, 그것들로 음식을 만드는 시간, 그렇게 만든 음식을 여유롭게 먹을 수 있는 시간. 그리고 그런 시간을 만드는 건 결국 우리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