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3가역이 있는 대로변. ‘을지면옥’ 건물 옆으로 난 골목에 들어가면 색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을지로의 힙한 카페 깨나 다녀본 사람이라 할지라도 눈이 휘둥그레 지는 이곳은 서울시에서 재개발구역으로 승인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 포함된 세운3구역이다. ‘성신볼-트’ ‘태광정밀’ 등 40년을 훌쩍 넘는 시간이 묻은 간판들과 그 시간을 고스란히 견딘 건물들은 넋 놓고 구경할 만큼 압도적이다. 싸늘할 것 같던 골목은 여전히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바쁘다. 이미 재건축이 시작된 공사장 앞에서한 중년 남성이 공구를 사러 왔는데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 안전모를 쓴 공사장 직원은 ‘아직’ 예전 그대로인 뒤쪽 골목을 가리켰다.

야무지게 묶은 커피 보자기를 들고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 사이를 부산히 오가는 아주머니가 돌아가는 ‘응접실 다방’도, ‘육칼’의 명가 ‘안성집’도 모두 근처의 공구상과 작은 공장을 중심으로 퍼져 있다. 이곳의 상인들이 ‘노포 상생을 위해 재개발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결정에 크게 기뻐하지 않는 이유다. 70여 년에 걸쳐 필요에 따라 자생적으로 넓어진 을지로3가 일대 제조업 단지는 건축, 조명, 공구, 미싱, 금속 등 도매상과 제조 공장들로 넓게는 평화시장까지 그영향력이 이어지며 오랜 시간 상생해왔다. “전부 다 연계돼 있는 거죠. 이웃집에서 물건을 받아 자기가 할 일을 하고 나한테 넘겨주면 내가 부속품을 깎아 가공해요. 그러고 옆집에 주면 그 집에서 광을 낸 후 또 다른 집에서 칠을 해요. 그렇게 같이 완성해서 납품하죠. 혼자서는 못 해요. 나만 다른 데로 이전하면 우선 재료 사는 데 시간이 걸리고 가공한 후 도장이나 착색 같은 후처리를 할 때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경비와 인건비가 늘어 단가가 올라갈 거예요.” 세운3구역 ‘태광정밀’에서 36년간 일한 조무호 장인의 말이다. 이 구역의 앞쪽 세운3-1구역은 이미 재개발이 시작돼 4백여 개의 가게가 밖으로 내쫓겼다. 몇몇은 문래동으로 이전했지만 일이 없어 손을 놓고 가게만 지키고 있다. “엄청 후회하더라고요. 일 없이 월세만 감당하다 보면 폐업하는 수밖에 없겠죠. 모두 연계돼야 하기 때문에 청계천, 을지로가 아니면 안 되는 거예요.”

앞쪽의 무너진 건물들은 잔해가 돼 바닥에 쌓여 있고 공사는 촬영 당일에도 계속됐다. 박원순 시장이 개발을 재검토하지 않았다면 태광정밀 역시 그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1년간의 보류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일대 상인과 장인들이 원하는 것은 재개발 백지화다. “할 수만 있다면 젊은 청년들에게 내 기술을 전수하고 싶어요. 세운상가 양쪽을 리모델링해서 청년들이 창업하게 만들었잖아요. 그 사람들은 우리가 필요해요. 대학교수들도, 대기업에서도 계속 찾아와요. 그들의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게 우리 장인들이거든요. 이뿐 아니에요. 충무로 인쇄 기계에 들어가는 부품, 평화시장의 재봉틀 수리 전부 우리가 합니다. 공구상과 정밀 공장이 무너지면 이 일대가 전부 무너질 거예요.”

다음은 세운재정비촉진지구와 함께 재개발지구로 승인된 수표도시환경정비구역에서 퇴거 명령을 받고 60일 넘게 영업을 중단하고 있는 ‘두루통상’의 강문원 사장과 불안함 속에서 영업을 지속하고 있는 ‘동구종합상사’ 채수노 사장의 이야기다.

동구종합상사 채수노 을지로상가 을지로공구점

동구종합상사 채수노(53세)

여기서 30년간 일했습니다. 전기 공구나 기계 공구를 판매하고 수리까지 하고 있죠. 직장 생활 15년, 제 사업 15년 해서 올해가 딱 30년째예요. 스물네 살에 첫 이 일을 시작했으니 젊은 시절을 여기서 다 보낸 거죠. 다른 일은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제가 50대인데 이제 와서 업종을 바꾼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으니 여기서 나가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이곳만의 특징이 있어요. 목재가 필요하면 5가 쪽에 있는 목재상에 가면 되고 건재가 필요하면 저 뒤에 콘크리트나 시멘트 같은 자재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한 건재상에 가면 돼요. 공구가 필요한 사람은 우리 가게로 오면 되고 도배지나 비닐을 파는 방산시장도 가까이에 있어요. 청계천에서 구하지 못하는 건 없을 거예요. 기계도 마찬가지죠. 판매하면서 조금씩 용도에 맞게 개조해달라는 의뢰를 받아요. 옆 가게에 가서 설명하고 ‘이렇게 만들어주세요’ 하면 한 개라도 다 제작해줘요. 이런 게 가능한 곳은 전 세계에서 청계천 지역뿐일 거예요.

많이 고민했어요. 이걸 계속 끌고 가야 되나, 수표지구도 세운 지구처럼 무너지면 업종을 바꿔야 할까. 영업은 계속할 것이고 지속돼야 하지만 만약 재개발이 확정된다면 저는 포기하려고요. 다른 데 가서 다시 자리 잡는 게 어디 1, 2년에 가능한 일인가요? 최소한 5~10년은 걸릴 텐데 그 시간을 버티기가 겁나요.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은 지금 같은 때는 더욱 그렇죠. 다들 그렇게 생각 할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투쟁하는 거고요.

이번에 깜짝 놀랐어요. 젊은이들은 이 일에 관심을 갖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텐트에서 지켜보면 서명해주는 분 가운데 의외로 20대가 상당히 많아요. 지나가다 보고 서명해주더라고요. 청계천은 젊은이들이 들어와서 일하기에도 굉장히 매력적인 자리라고 생각해요. 젊은 아이디어로 같이 일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두루통상 강문원 공구 을지로공구점 을지로시위

두루통상 강문원(60세)

청계천에서 공구 장사를 하고 있는 강문원입니다. 올해 60이 됐고요. 제 가게는 63일째 영업을 안 하고 있어요. 지난해 11월 5일에 건물 주인이 찾아왔어요. 자신도 재개발에 동의해서 건물을 매각할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세운지구는 시행사의 갖은 협박을 이기지 못한 상인들이 두 손 들고 8개월 만에 무너졌거든요. 호소문을 써서 사람들에게 사인을 받고 12월 초순에 천막을 만들어 긴급하게 1인 시위를 시작했어요.

시나 구청에서는 공청회도 안 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어요. 상인들 사이에서 ‘여긴 함부로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고요. 재개발이 이루어지려면 이 많은 사람들과 상의할 텐데 그럼 분명히 결렬될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밀어붙이기 식으로 진행해버릴 줄 몰랐어요.

이곳의 세입자들은 수십 년 동안 건물주와 암묵적으로 2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계약을 연장했어요. 세입자 보호 대책은 5년이하의 경우에만 보호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짧으면 10년, 길면 40년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세입자 보호 대책 대상이 아니에요. 건물주가 나가라고 하면 명도소송 당하고 그냥 나가야 하죠. 손해배상 청구도 못 하고요.

청계1가부터 8가까지가 공구 거리로 연결돼 있어요. 그 양편으로는 귀금속, 시계, 정밀, 인쇄, 스페이스 월, 철물, 도기 업체가 들어섰는데 전부 연관돼 있어요. 우리 공구가 없으면 그중 하나도 제대로 만들 수 없죠. 그 정도로 긴밀한 연관성이 있는데도 공구 쪽만 숟가락으로 떠내듯 다른 데로 이주시킨다는 발상 자체가 아주 나쁜 거예요. 우리 몸에서 간만 떼서 다른 데로 옮길 수 있어요? 신체에 비교하면 공구는 가장 중요한 장기나 마찬가지예요. 탁상행정의 표본이죠. 개발제한구역으로 30년 동안 묶어놓고 화장실도 고치지 못하게 하고 슬레이트 한 장 못 바꾸게 하니까 지붕이 새면 임시방편으로 우리가 천막을 덮어놨어요. 그게 오래되니까 지저분하고 슬럼화됐다고, 다시 지어야 한다며 원주민이나 마찬가지인 상인들을 내쫓는 것은 교묘한 국가권력의 횡포예요.

다른 점포들은 대부분 법을 모르기 때문에 마지못해 받아들였는데 내가 1인 시위를 시작한 후부터는 ‘지킬 수도 있겠다’는 기대 심리가 생겼는지 동조하기 시작했어요. 박원순 시장이 정책 결정을 번복하면서 상인들이 제게 많은 힘을 실어주고 있죠.하지만 재검토한다고 한 뒤로도 공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어요. 그리고 재검토해봤더니 합리적으로 공사를 하는 게 맞다고 나오면 공사를 하는 거잖아요? 저는 전면 중단을 요구합니다. 이곳이 옛 모습을 다시 찾았으면 해요. 이미 부순 곳은 공익성을 가진 문화공간이나 관광지로 만들고 을지로와 청계천 일대를 보존해서 후세에게 가치 있는 정책 사업을 하면 좋겠어요. 우리나라가 역사상 최단 시간에 발전한 근본이 여기 있었고, 우리 대기업이 세계 일류기업으로 클 수 있는 바탕도 여기 있었어요. 주문만 하면 탱크고 인공위성이고 다 만들 수 있는 곳이 여기예요. 학생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장소고요. 가장 창의적이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지역을 아파트 몇 채 짓자고 때려 부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개발 제한을 풀어놓으면 우리 스스로 다 고쳐서 쓸 수 있어요. 부분적으로 뜯어서 얼마든지 정화할 수 있습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은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여야 하지, 과거는 묻어버리고 미래만 존재하는 도시가 돼선 안 돼요. 요즘 젊은 분들이 옛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새것만 좋아하던 우리때와 다르죠. 과거를 바탕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을 갖고 살면 좋겠어요. 저는 스스로 삶을 영위하면서 이곳을 조금씩 고치고 보존해 후세에 남겨주고 싶어요. 그 이상은 바라는게 없어요.

작가 을지로 서울메탈 할로미늄 을지로상인

밀려나는 젊은 작가

‘문화’와 ‘예술’을 수없이 외치던 서울시는 어떻게 예술을 일시 정지시켰나. 을지로에 작업실을 둔 액세서리 브랜드 ‘서울메탈’의 조유리와 패션 브랜드 ‘할로미늄’의 이유미를 만났다.

을지로에서 작업한 지 얼마나 됐나? 조유리 같이 작업한 지는 2년 됐고, 이유미는 3년 동안 있었다.

왜 을지로로 오게 되었나? 이유미 원래 이곳은 내가 멤버로 있는 ‘우주만물’이라는 잡화점이었다. 우주 만물이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서 ‘할로미늄’의 작업실로 사용하다 조유리와 공유하게 됐다. 조유리 당시 보광동에 작업실이 있었는데 액세서리를 만드는 작업의 특성상 이곳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알다시피 금속공예와 관련된 거래처 대부분이 을지로나 청계천에 밀집해 있다. 일 때문에 매일 와야 했던 터라 이곳에 들어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금속공예를 전공해서 학부 때부터 학교보다 더 자주 을지로를 오갔다.

만드는 사람에게 을지로는 어떤 의미인가? 이유미 서울의 중심지라 어디로 가도 교통이 좋은데 무엇보다 동대문종합상가가 가깝다는 점이 가장 좋다. 전에는 효창공원 주변에서 작업했는데 동대문을 오가는 게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일을 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주변에 실크스크린 장인들도 많고 포장할 때 쓰는 비닐 재료를 파는 상인들도 을지로4가에 많으니 작업실 근처에서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여길 아주 좋아한다. 조유리 처음에는 재료 구하거나 일하는 데 편리한 것만 생각하고 이곳에 왔다. 이제 시작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재료 구하기 쉽고 어디든 가기 편하며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임대료로 오래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그래서 최근 몇 년 사이 많은 동료들이 을지로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이제 그 장점이 사라지게 됐다. 우리도 임대인에게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재개발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이유로 나가라는 건 아니지만 재개발로 이 일대 임대료가 크게 상승했고, 급하게 새 작업실을 알아보니 시세가 2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져 있었다. 을지로의 임대료가 낮았던 이유가 개발제한구역이었기 때문인데 그게 풀리려는 움직임이 있으니 앞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을지로에서 한 작업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 이유미 우주만물 안에 할로미늄 쇼룸을 만드는 데 집기가필요했다. VMD에게 맡기면 편하지만 형편상 내가 해야 해서 고민이 많았는데 옆 골목으로 가서 물으니 아는 만큼 알려주고 나머지는 저쪽 집 가보라 해서 갔다가 거기서도 아는 만큼 알려주고 나머지는 어느 집으로 가보라고 해서 다 해결했다. 거의 ‘마을’의 개념인데 이런 곳이 없었으면 나 같은 아마추어나 예산이 적은 상인들은 시작도 못할 것이다. 조유리 우리만 해도 시작은 했다. 어떤 방식으로 뭐가 필요하다는 걸 조금이라도 접한 상태라서 유지는 할 수 있을 텐데 우리 다음 세대는 시작하기가 더 힘들 수도 있다. 지나가다가 물어봐서 알 수 있는 정보가 전혀 없다. 정보의 빈익빈 부익부가 심각해질 것이다.

을지로의 상인이나 장인들과 가까이에서 소통해왔다. 을지로 재개발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유미 배신감이 크다. 불과 1, 2년 전만 해도 이곳을 좀 더 부흥시키려고 많은 정책을 시행했는데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다. 조유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을지로 길 살리기’를 한다고 ‘을지 유람 지도’도 만들었었다. 을지로만의 특징을 살리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였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내가 학부생일 때 송파구 문정동에 ‘가든파이브’가 생겼다. 그때도 청계천 되살리기를 한다며 이곳 상인들을 그쪽으로 다 이주시켜 청계천 길도, 상인들도 살린다고 했다. 적은 수의 상인들이 그쪽으로 갔는데 몇 분은 폐업했고 아직 유지하고 있는 분들도 문정동으로 이주한 걸 후회한다. 가보면 그야말로 외딴섬 같다. 공구를 사러, 장인에게 뭘 맡기러 굳이 문정동에 간다고? 한번 시도해봤으니 다른 식의 부흥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게 방증된 건데, 이번에는 되살리기도 아니고 갑자기 아파트를 짓는다니 정말 황당하다. 허물어지는 건물임에도 계속 남아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유미 다 흩어지면 아마 소비자가가 올라갈 거다. 조유리 우리가 걱정하는 게 그 점이다. 작업실을 옮기는 건 그냥 우리가 조금 불편하면 될 일이지만 이곳 상인들과 장인들이 흩어지면 소비자가가 올라가고, 그 전에 당장 우리부터도 그분들에게 일을 맡길 때 단가가 높아질 거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내 일을 유지하는 데도 위협을 받게 된다. 먹이사슬처럼 다 연결돼 있다. 얼마 전 학생 때 찾아갔던 시보리집을 다시 찾았다. 10년전에도 왔는데 그간 어떻게 지냈느냐고 여쭤보니 자기만 남았다고 하시더라. 그분도 오래 버티지 못하겠지.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이제 나는 누구한테 맡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와중에 내 걱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아차 싶지만 그게 현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