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사랑 연인 정반대

싸우기만 하면

B와 나는 연인이지만 둘 사이의 같은 점을 찾는 것보다 다른 점을 찾는 게 쉬울 것이다. 연애한 지 6년이 된 터라 다른 것은 그럭저럭 맞춰가고 또 닮아가는 부분도 많이 생겼는데 아직도 접점을 찾지 못한 부분이 있다. 다투고 나서 화해하는 법. 나는 속에 감추는 거 없이 다툼의 원인을 찾아 끝까지 밝히고 풀어야 발 뻗고 잘 수 있는 성격이다. 그런데 B는 싸울수록 점점 더 말이 없어지다가 나중에는 마음속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러고 나면 단 한 마디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런 그의 성격 때문에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B의 말로는 그때 자기가 더 이야기하면 싸움만 길어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나는 ‘대화’라고 생각하는 것을 B는 ‘싸움’으로 여기는 것이 우리가 화해하기 어려운 근본 원인인 듯하다.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두 사람이 평생 싸우지 않고 살 수도 없을 테지만. 결혼을 앞둔 지금 지난 6년 동안 극복하지 못한 이 문제를 우리가 얼마나 덮어두고 살 수 있을지 솔직히 조금 막막하다. S(영업 사원, 36세)

 

미식의 역습

나는 소문난 빵순이다. 서울의 웬만한 빵집은 섭렵했고 여행을 떠날 때도 빵집을 중심으로 ‘빵 투어’를 계획할 정도니 전국의 유명한 빵집은 안 가본 데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연히 만나 짧은 시간에 사랑에 빠진 A와 나는 맛집에 가는 걸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첫 데이트 날 나는 A를 가보고 싶던 새로 생긴 빵집에 데리고 갔다. 케이크가 유명한 곳이었다. 생딸기가 들어 있는 쇼트케이크가 나온 후 나는 정신없이 먹는데 A의 표정이 어딘가 불편해 보이더니 한두 입 깨작거리다 포크를 내려놓았다. “왜, 어디 안 좋아?” 하고 물으니 A는 “케이크는 느끼해서 한 입 이상 못 먹겠어” 하고 대답했다. 알고 보니 A는 청국장, 돼지갈비, 냉면 맛집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가는 토종 한국인 입맛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요즘엔 노포 투어에 빠져 있다며 나를 데리고 을지로를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밌었지만 전날은 등뼈찜, 오늘은 제육볶음, 다음 날은 육개장을 먹으러 다니는 데이트에 점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빵집에 몇 번 데리고 간 적 있었지만 단 한 입도 입에 대지 않는 A를 보면서 나까지 입맛이 떨어졌다. 먹는 걸 너무나 좋아하는 내게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는 만남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잠에서 깼는데 입 안에 지난밤 칼국수와 함께 먹은 김치의 마늘 맛이 남아 있었다. 순간 짜증이 솟구쳐서 A에게 전화해 헤어지자고 말했다. A는 황당해했는데 그러면서도 끝내 빵을 같이 먹어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지금 나는 함께 맛있게 빵을 먹어주는 내 친구들과 데이트하느라 매일 설레며 보내고 있다. S(대학원생, 27세)

 

하나부터 열까지

누군가를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나와 다른 점도 다르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콩깍지가 씌었는지 내가 모르는 것도 많이 알고 있구나 하고 감탄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외향적인 C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그럴 때 나는 혼자 집에서 영화를 봤다. 처음 몇 번은 그가 그 자리에 데리고 가서 함께 즐기라고 권했지만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나는 그 자리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된 기분이 들어 다음부터는 따라가지 않았다. 둘이 같이 있을 때 C의 휴대폰은 쉴 새 없이 알람이 울린다. 그럴 때면 나는 C밖에 없는데 C는 내가 없어도 즐겁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가라앉는다. 밝고 긍정적인 C를 만나니 내부정적인 성향이 더 도드라지는 것 같았다. 싸울 땐 이 모든 다른 점을 들어 서로를 공격했다. 다른 점이 이렇게 많은데도 지기 싫어하는 면모는 똑같아서 싸움이 6시간씩 이어진 적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귀는 동안 한 번도 헤어진 적 없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야 테트리스처럼 딱 맞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걸. 지금 나는 C의 긍정 바이러스에 완전히 전염됐고 진지한 이야기는 간지러워서 못 하겠다던 C는 매일 퇴근 후 내게 오늘 하룻동안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조잘조잘 이야기한다. 비혼주의자이던 내가 요즘 들어 C와 함께라면 결혼해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Y( 디자이너, 3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