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도심에서 벗어나 한적한 정림동에 들어서면 작은 공장에 닿는다. ‘더랜치브루잉’이라는 나무 푯말은 이곳이 수제 맥주 공장임을 알린다. ‘더 랜치(The Ranch)’는 ‘목장’이란 뜻으로, 이곳 대전(한밭)의 목장에서는 맥주를 양조한다. 공장 운영을 책임지는 수장은 프랑스인 프레데릭 휘센(Frédéric Huyssen). 배낭여행을 왔다가 한국 음식과 문화에 감명을 받은 그는 카이스트에서 물리학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았고, 한국인 아내를 만나 약 17년째 대전에 머무르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공장을 운영한 것은 아니다. 결혼 당시 아내가 운영하던 궁동의 수제 맥주 가게 ‘더 랜치 펍’이 그 시작이다. “프랑스 파리 출신인데도 와인보다 맥주가 좋아요. 갑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대전, 그리고 맥주와 사랑에 빠져 핸드앤몰트, 바이젠하우스의 헤드 브루어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맥주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대전에 브루어리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큰 아쉬움을 느꼈죠. 그래서 브루어리를 내기로 했고 맥주에 대전의 정체성을 담고 싶었어요.”
그가 공장을 가동하며 가장 먼저 개발한 것은 이곳의 시그니처 맥주인 ‘빅필드 IPA’. ‘빅필드’는 ‘한밭’을 영어로 표기한 것이다. 흐린 오렌지 색을 띄며 4가지홉을 사용해 5일간의 드라이 홉핑을 거친다. ‘정림페일에일’은 공장이 위치한 정림동의 이름을 딴 과일 맛이 나는 맥주다. 이외에도 밀 맥아를 사용해 부드러우면서도 효모 특유의 화사한 맛을 자랑하는 ‘파리지엥’과 견과류의 고소한 맛이 나는 ‘피칸스타우트’ 등의 맥주를 만든다. 전국적으로 지역의 이름을 딴 다양한 맥주가 등장한 가운데, 대전 시민들의 자부심이 되길 바라는 소망을 담아 대전의 대표 맥주를 양조하고 있다.

프레데릭이 만드는 맥주의 특징은 바로 ‘과학’이다. 카이스트에서 배운 공학 지식을 활용해 공장 내 고품질 설비를 대부분 직접 설계하고 제작했다. 공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탭 룸’의 큰 유리 통창 너머로 거대한 양조 시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본래 탭 룸에서 다양한 맥주를 맛볼 수 있지만, 현재는 임시 휴업 중이다. “양조의 핵심은 일관된 제품을 내놓는 데 있습니다. 오늘 나온 맥주와 내일 나올 맥주의 맛이 다르지 않도록 높은 품질 유지에 애쓰고 있어요.” 더랜치브루잉은 양조의 기본에 충실한다. 원재료는 수입하고 당화, 여과, 가열, 침전, 냉각, 발효, 숙성, 포장에 이르기까지 두 달여에 걸쳐 맥주를 세심하게 디자인하고 만든다. 특히 맥즙을 만드는 과정에서 화학적 장치로 산도와 산소를 세밀하게 조절하고, 발효 단계에서는 온도를 철저히 맞춰 관리하며, 발효가 완료된 맥주는 미생물과 산소의 접촉을 최소화해 제품으로 내놓는다. 시간을 들여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그의 열정에 공학적 지식이 더해져 더랜치브루잉의 맥주는 좋은 향과 맛은 물론 겉으로 보기에도 깨끗하고 예쁜 색깔을 지녔다.

이렇게 세심한 과정을 거쳐 만든 맥주는 전국의 주류 회사에 유통된다. 특히 서울 을지로의 핫 플레이스 ‘맥주덕후’와 협업해 그가 만든 맥주를 서울에서도 직접 맛볼 수 있다. 더랜치브루잉의 맥주와 가장 잘 어울리는 안주는 맥주덕후의 랍스터피자와 더랜치펍의 퀘사디아다. 그는 새로운 제품 개발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최근 새로 내놓은 제품은 ‘유자 맥주’. 달콤한 유자 향이 나는 투명한 빛깔의 맥주로 현재 심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새로운 맥주에 대한 고민은 ‘내가 마시고 싶은 것’에서 출발해요. 현재 한국에 1백30여 개의 브루어리가 생겼는데 각 브루어리의 장점, 즉 다양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서로 공유해 새로운 맥주를 탄생시키기도 하죠. 7월 초에 서산의 칠홉스브루잉코, 평창의 화이트 크로우 브루잉과 공동으로 개발한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마지막으로 그는 대전을 여행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대전은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시가 분명해요. 술 관련 축제가 많이 열리거든요. 이 중 대전 수제맥주&뮤직페스티벌은 꼭 즐겨보아야 할 이벤트 중 하나죠. 우리 말고도 20개 이상의 업체가 모일 예정입니다. 올해 9월에 열리는 대전국제와인페스티벌도 빠뜨릴 수 없어요. 대전에 온다면 꼭 다양한 술 문화를 즐겨보세요.”

주소 더랜치브루잉 대전시 서구 계백로1249번안길 62 / 더랜치펍 대전시 유성구 궁동로18번길 88
영업시간 더랜치펍 18:00~02:00, 일요일 휴업
문의 더랜치브루잉 042-581-2060, 더랜치펍 042-825-4157

 

SUMMER PICK
빅필드 IPA

“더랜치브루잉의 대표 제품으로 웨스트 코스트 IPA 스타일,
즉 샌디에이고,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에서 즐기는 맥주다.
보통 자몽이나 파인 맛이 강하며 더랜치브루잉의 정림페일에일과 비교하면
도수가 높고 쌉싸름한 맛이 난다.”

-더랜치브루잉 대표 프레데릭 휘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