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 (2010)

고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를 리메이크한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하녀 ‘은이’ (전도연) 와 남자 주인 ‘훈’ (이정재)의 비밀스런 정사에서 비롯되는 파국을 통해 선명한 계급 의식을 그려낸 작품이다. 훈의 집에서 오래 지낸 하녀로, 우아하면서도 칼 같은 수행능력을 지닌 ‘조여사’는 오직 윤여정을 위해 만든 캐릭터 같다. 모든 부조리에 눈 감고 그만큼의 이익을 챙겨온 그는 극중 상황을 몇 발 떨어져 볼 수 있게 만드는 독특한 위치의 인물이기도 하다. 욕망과 환멸을 지나 한 인간으로 각성하기까지의 서사를 섬세하게 연기한 윤여정은 이 영화로 2010년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계춘할망> (2016)

전형적인 할머니 역할에 바로 떠오르는 배우가 윤여정은 아닐 것이다. <계춘할망>의 ‘계춘’이 새롭게 다가오는 건 이 때문이다. <계춘할망>은 해녀 계춘이 홀로 키우던 손녀 ‘혜지’를 시장에서 잃어버린 후 실의에 빠져 살다가 다시 손녀 (김고은)를 만나며 만들어가는 진짜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해사하게 웃음 지으며 손으로 생선살을 발라주는 ‘계춘’은 늙고 작아서 눈물을 자아내는 사람이 아니다. 되려 ‘할망이 모든 거 다 해줄 거여’라며 바닷속에서도 다 큰 손녀의 손을 꼭 잡고 헤엄치며 보호하는 강한 사람이다. 윤여정은 지워지고 계춘이 다가와 따뜻하게 마음을 어루만진다.

 

 

<돈의 맛> (2012)

‘영작’ (김강우)과 밤을 보낸 다음 날 개운하게 아침을 연 ‘백금옥’ (윤여정)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영작에게 이렇게 말한다. “치욕적이니? 늙은 여자도 하고 싶을 때가 있단다.” 윤여정의 파격적인 베드신으로 화제가 된 <돈의 맛>은 돈과 권력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상류층의 민낯을 우습게 비꼬는 영화다. 돈의 주인에서 돈의 노예임을 알아차릴 때까지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백금옥’의 감정선을 완벽하게 연기한 윤여정 연기의 백미를 볼 수 있다.

 

 

<죽여주는 여자> (2016)

박카스 아줌마 ‘윤소영’으로 분한 윤여정의 복잡한 눈빛은 많은 걸 던진다. 빈병과 폐지를 줍거나 파고다 공원에 나가지 않으면 당장 이 달을 견딜 돈을 벌 방법이 없는 사람들, 우울과 빈곤에 시달리는 인간의 말로는 영화보다 현실에 가깝다. 트렌스젠더 ‘티나’, 다리 장애를 가진 ‘도훈’, 코피노 ‘민호’와 더불어 살아가는 소영은 노인이 설 자리 없는 이 사회의 비정한 풍경을 같은 높이에서 바라본다. 이 영화가 신파극이 되지 않은 데에 윤여정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윤여정은 이 영화로 제 26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