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는 새 시즌 테마를 ‘평등’으로 정하고, 극소수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쿠튀르의 우아함을 수호하는 대신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결과 베이식한 쇼츠와 재킷, 편안한 셔츠, 심플한 데님 팬츠 등 활용도 높고 캐주얼한 아이템과 희망적인 색감으로 이루어진 컬렉션 룩을 대거 선보이며 활기찬 분위기를 선사했다. 변화는 이뿐 아니다. 쇼가 열리는 도시를 파리에서 밀라노로 옮기고, 기품이 넘쳐흐르던 기존 컬렉션 장소 대신 밀라노의 경제 발전에 기여한 상징적 공간이자 폐공장인 폰데리아 마키(Fonderia Macchi)를 쇼 베뉴로 정하며 의미를 더했다. 리바이스와 협업하며 화제를 모은 제품 또한 이날 공개했다. 유스 컬처가 떠오르던 1960년대에 ‘자기표현’이라는 가치에 기반을 두며 인기를 얻은 브랜드이니 이번 컬렉션이 지닌 의미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 발렌티노가 밝힌 협업의 이유다. 궁극의 화려함을 자랑하던 기존 컬렉션처럼 탄성을 자아내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진 이 시기에 피치올리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찾아낸 합의점은 꽤 멋지고 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