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라는 거대한 산업과 상업성은 불가분의 관계다. 예술을 할 거라면 돈을, 돈을 벌 거라면 예술을 포기해야 한다는 명료한 이치가 하이패션의 세계에서도 유효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상업적인 옷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톰 브라운은 지극히 오트 쿠튀르적인 쇼피스를 선보이는 디자이너다. 수백 개의 패턴 조각을 정교하게 봉제해 하나의 아이템을 만들고, 하이패션을 향유하는 소비층이 선호하지 않을 법한 우스꽝스러운 디자인을 내세운다. 새 시즌 역시 마찬가지다. 거대한 부피로 시선을 압도하고, 강아지 모양의 가방은 의문을 자아낸다. 얼굴에 반투명한 헤드기어를 쓰고, 성별에 관계없이 치마를 입은 모델들은 젠더리스 패션을 향한 그의 열정을 대변한다. 이번 시즌 컬렉션의 영감을 미국의 전 스키 국가대표 선수인 린지 본(Lindsey Vonn)에게 받았다는 그의 설명은 비록 와닿지 않지만, 뻔하고 세련된 것들 사이에서 그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엿보는 일은 더없이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