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성은 물론 확고한 정체성, 동시대성과 미술사적 의의까지.
올해 키아프 서울의 하이라이트 섹션이 주목하는 작가 10인의 면면.

임노식 LIM NO SIK
Arario Gallery
임노식(1989, 한국)은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졸업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에서 예술전문사를 취득하고 2026년 홍익대학교 회화과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형태와 심상의 혼합체로서의 풍경을 그리는 작업을 통해 회화라는 행위의 동시대적 의미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올해 키아프에서 선보일 작품을 직접 직접 소개한다면?
고향인 경기도 여주의 풍경에서 출발한다. 서로 다른 시간과 거리에서 수집한 들꽃, 벼, 구름, 들녘이 한 화면에 뒤섞이고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과거와 현재의 농촌 풍경과 사건들이 교차한다. 하나하나 모은 이미지를 화면 위에 다시 놓고, 유화로 그린 뒤 투명 오일파스텔로 지워가며 ‘막’을 만든 그림들이다. 막 때문에 형상이 단번에 잡히지 않고, 가까이에서 보면 흐릿하다가 거리를 두면 오히려 또렷해진다. 특히 최근작에서는 꽃과 줄기가 각자의 형태를 지키던 이전과 달리 줄기와 뿌리, 꽃과 잎이 서로를 향해 깊이 엉켜 있어 어디서 하나가 끝나고 다른 하나가 시작되는지 알 수 없다. 이 작업들은 따로 있으면서도 서로 얽혀, 또 다른 덩어리와 시간의 장면을 이룬다.
그동안 회화라는 큰 틀 안에서 기법이나 주제 등의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해온 것 같다.
말하고 싶은 것, 담고 싶은 것에 맞춰 표현하는 방법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지금의 ‘막’ 시리즈도 작업실이라는 공간에 공존하는 것들의 관계를 그리는 데서 시작했다. 공간의 겉모습이 아니라 공기와 온도, 습도 같은 보이지 않는 상태를 담고 싶어서 투명 오일파스텔로 지워 막을 만드는 방식을 처음 시도했다. 이후 안에서 밖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더 큰 공간, 더 넓은 시간과 소재로 실험을 이어갔다. 막 자체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화면 전체를 덮었다면 이제는 부분적으로 나눠서 흐릿한 곳과 조금 더 드러나는 곳의 대비가 커졌다. 앞으로도 계속 변화하고, 탐구하고, 찾아가고 싶다. 멈춰 있기 보다는 움직이는 상태로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하는데, 최근에는 어떤 경험 혹은 기억에서 실마리를 찾았나?
개인적 경험이 특별하진 않다. 작은 마을에서 보낸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관계와 경험들이 작업에 스며 있을 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결국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느 순간부터 함께 일하고 생활하게 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다. 전혀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 집성촌의 오래된 구조 안으로 들어와 같은 시간과 장소를 나눈다. 어릴 적 느티나무 밑에서 할머니를 기다리던 자리에 지금은 다양한 나이와 국적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새참을 먹는다.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서로를 떠받치는 관계의 구조가 있다고 느낀다. 요즘 작업은 대부분 그런 순간에서 시작된다.
그림의 규모와 작품의 의미가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화면 속 풍경을 감각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는 듯하다.
사실 큰 작품이 작업하기 편하고, 대부분 큰 작품이다. 캔버스의 풍경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감각을 몸으로 겪으면서 그리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내 그림은 막이라는 방식 때문에도 거리에 따라 형상이 달리 보인다. 그래서 큰 작품일수록 관람객이 앞뒤, 좌우로 몸을 움직여야 그림을 보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움직임은 내가 이미지를 모을 때 대상 안으로 걸어 들어가 수집하는 과정과 어딘가 닮아 있다.
작가로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언제인가?
흰 캔버스 앞에 설 때 가장 설렌다. 그 위로 붓이 닿을 때 나는 소리가 참 좋다. 소리에 조금씩 적응될 때쯤, 화면 위로 이미지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순간에 큰 즐거움을 느낀다. 물론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도, 완성했을 때도 나름의 기쁨이 있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시간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 레퍼런스를 수집하는 때다. 풍경 속을 걷고, 오래된 사진을 뒤적이고, 지난 기억을 불러오고, 앞으로의 일을 상상한다. 여러 시간이 교차하고 얽힐 때면 묘한 기분이 든다. 그 순간만큼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그사이 어딘가에 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림은 그 순간에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이 좋다. 많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