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에서 낯선 가능성을 발견하고, 하나의 답에 머무르지 않은 채
자신의 표현 언어를 끊임없이 확장해가는 네 명의 젊은 작가.
영상, 퍼포먼스, 회화, 사진의 영역에서 저마다의 질문을 품고 열린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지금.

양유연 YANG YOO YUN

여러 대상 가운데 사람, 특히 얼굴을 그려내는 작가 양유연은 한 사람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아닌 얼굴에 맺힌 감정과 정서를 포착한다. 일상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오래 들여다보고 구체적인 정보는 덜어낸 다음, 작업에 꼭 필요한 부분을 화면에 담는다. 그렇게 낯선 이의 얼굴에서 시작한 그림은 어느새 누구의 것도 아닌 얼굴이 되어 우리를 마주한다.

양유연, ‘없는 사람’, 장지에 아크릴릭, 53×45.5cm, 2026.
Courtesy of the artist and Duarte Sequeira
양유연, ‘환기’, 장지에 아크릴릭, 117×91cm, 2026.
Courtesy of the artist and Duarte Sequeira

최근 두아르트 스퀘이라 서울에서 3년 만의 국내 개인전 <Dog-ear 복기>를 선보였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가장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작년과 재작년에는 전시에서 좀 더 새로운 걸 시도해보려는 마음이 컸어요. 그에 비해 이번 전시는 근본을 생각하자는 마음을 먹고 시작했죠. 제가 왜 사람들을 그리게 됐는지, 그림 그리는 일을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봤어요. 그러다 보니 손에 익고,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인물과 감정을 그려내는 일이었어요. 의도치 않게 이번 전시에 선보인 신작 11점 가운데 10점이 온전한 인물 그림입니다.

단순히 기억을 보존하는 행위를 넘어,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이번 작업의 핵심처럼 읽혔습니다. ‘복기’라는 제목에는 어떤 의미를 담고 싶었나요?

사실 전시명 ‘복기’는 몇 년 전에 그린 작품의 제목이었어요. 이번 전시에 어떤 제목이 좋을까 고민하던 중에 떠오른 이름인데, 작업을 대하는 제 태도와 맞닿아 있다 느꼈어요. 이번 전시는 기승전결을 지닌 감정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고 소개하고 싶어요. 희미했던 것이 뚜렷해지거나, 무에서 유를 형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드라마가 어떤 플롯을 가지고 가듯이 시작부터 중간, 끝, 이렇게 일정한 단계를 따라 진행해온 작업이라 그 안에 감정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었어요. 과거를 들여다보는 태도를 통해 당시
어떤 마음으로 작업했고, 어떤 분위기였고, 또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에 관한 수많은 맥락이 모든 작업에 자연스럽게 담겨 있으면 했어요.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작업에 인물이 반복해서 등장해왔습니다. 때로는 인물에서 벗어나 특정 사건이나 현장, 풍경 등을 그리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인물로 돌아왔어요. 오랫동안 인물을 주요한 대상으로 그려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하고자 하는 말들이 인물 작업에서 특히 극대화되는 것 같아요. 말씀하셨듯 학생 때부터 꾸준하게 인물을 그려왔고, 때때로 인물에서 벗어나 특정 사건이나 현장에 대한 제 목소리를 담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결국은 다시 인물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양감이 뚜렷하면서 입체감이 살아 있고, 딱딱한 것보다는 부드러운 대상을 그리는 것에 즐거움을 느껴요. 이러한 특징이 가장 잘 살아 있는 게 사람의 신체이자 얼굴이라고 생각하고요. 작업의 재료로 사용하는 ‘장지’는 그 위에 사물이나 환경을 그릴 때보다 사람을 그렸을 때 더 결과물이 극대화되는데, 재료가 지닌 질감과 잘 들어맞기도 해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제가 그리는 인물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인물이 품은 정서에 주목하고, 그것을 마주한 제가 화가로서 어떤 감정을 표현하려 했고 그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가 중요한 건데, 많은 사람이 인물 자체를 궁금해 하더라고요.

<양유연: 복기(Dog-ear)>전 전시 전경, 두아르트 스퀘이라 서울, 2026. Courtesy of Duarte Sequeira, Braga l Seoul

맞아요. 어쩔 수 없이 주변 인물 중에서 닮은 사람을 찾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작품은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하나요? 작업의 출발점이 되는 이미지를 어떻게 선택하고, 이를 회화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어떤 변형을 거치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인물을 특정할 수 없도록 상상 속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어요. 어느 시점부터는 늘 원본이 있는데, 이를 변형해서 그리려 하죠. 이를 위해 수집한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들여다보곤 해요. 그림의 원본이 되는 사진들을 작업 이후에 버리지 않고 남겨 놓기도 하고요. 저마다 살고 있는 환경이 다르고, 겪는 일이 다르니까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시기마다 느끼는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잖아요. 당시에는 전혀 인상 깊지 않던 부분이 새롭게 보일 때 또 새로운 것을 표현하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거죠. 이런 이유에서 오래 들여다보는 행위가 저에게는 무척 중요해요.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제가 느끼는 매력이 분명 있거든요. 예를 들면 이목구비의 조화라든지, 목소리 같은 요소가 그 사람을 그리고자 하는 이유가 되어주기도 하니까 최대한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 보니 아무리 변형한다 하더라도 보는 사람들은 ‘왠지 그 사람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이런 이유에서 화면 속 인물들이 구체적인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누구인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는 거군요.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되 관람객에게 각자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는 것 역시 작업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작품 속 인물은 결국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존재라 볼 수 있어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오래 들여다보고 제 손으로 그림을 만지면서 생기는 마음은, 그 대상과 작업을 좋아하는 마음과는 또 달라요.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죠. 작업을 이어오며 늘 ‘일기장 같은 그림은 그리지 말자’고 다짐하곤 해요. 작가가 작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거기에만 몰입해 작업하는 걸 경계하려는 거죠. 작품 안에 담아낸 저만의 감정이나 정서도 사실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고, 겪을 수 있는 감정들이라 생각하고요. 각자의 삶과 이야기는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림을 보면서 작가인 제가 어째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궁금해 하기보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작품을 관통하는 정서에 일관된 결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체로 차분하고 절제돼 있으면서도 쉽게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이 화면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작업을 시작한 초기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이어온 정서적 태도가 있다면요?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사람들이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했어요. 즐겁고 예쁘고 행복한 그림은 다른 사람들이 더 잘 하니,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10년 넘게 작업을 이어오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제 시선을 담고 싶은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작품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더욱 내면적인 방향으로 옮겨간 면도 있어요. 그럼에도 비슷한 맥락의 정서가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는 듯하고요.

화면에서 인물이나 사물의 전체보다 얼굴이나 신체, 혹은 특정 장면의 일부가 화면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체보다 부분을 바라보게 된 이유도 있나요?

사물이나 대상을 확대하면 할수록 그것이 갖고 있는 성격이 드라마틱하게 변조되잖아요. 그래서 불필요한 부분은 잘라내게 됐어요. ‘이 부분을 확대하자’라는 생각보다 그리고자 할 때 중요하지 않은 부분, 사사로운 것들을 잘라내 버리자는 마음이 컸죠. 그렇게 가지치기하듯 잘라내고 닦아내다 보면 가장 중요한 핵심만 남게 돼요. 그런 부분을 화면에 옮겨 올 때 기존의 이미지가 갖고 있던 성격과 완전히 다른 의미로 엉키는 것을 보며 쾌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양유연: 복기(Dog-ear)>전 전시 전경, 두아르트 스퀘이라 서울, 2026.
Courtesy of Duarte Sequeira, Braga l Seoul

또한 그림에서 어둠이 단순히 무언가를 감추는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인물과 감정을 더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장치처럼 느껴집니다. 화면에서 빛과 그림자의 위치나 정도는 어떻게 결정하는지 궁금합니다.

빛과 그림자도 의도를 담아서 표현하고 있어요. 인물의 선명한 이목구비보다는 그림자나 굴곡으로 인해 생겨나는 명암 대비와 분위기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고요. 미세한 질감을 비롯해 화면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갈수록 섬세하게 묘사할 수밖에 없어서, 사실 그리는 과정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의식적으로 조명을 만들거나 전적으로 의도해서 연출하진 않아요. 우연히 포착한 순간과 장면에서 그런 디테일을 찾아가는 거죠.

현재의 표현 방식을 구축하기까지 재료와 기법 면에서 어떤 시행착오를 거쳤나요?

한국화를 전공했다 보니 처음에는 분채나 석채처럼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전통 재료는 특성과 장점은 무척 뚜렷한데, 사용하는 과정이 무척 복잡하고 까다롭거든요. 그러다 아크릴릭을 접했는데 생각보다 제 작업 방식과 잘 맞았어요. 지금보다 더 두껍게 아크릴릭을 바르면서 작업하다 이제는 수채화처럼 묽게 만들어서 수십 번 정도 반복적으로 레이어를 올리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작업을 진행하는 속도가 좀 느린 편이라, 예전에는 한 작업에 오롯이 집중해서 끝을 본 뒤에 다른 작업을 시작했다면 요즘은 기본적으로 두세 점을 동시에 시작하는 편이에요. 한 작업을 빠른 호흡으로 속도감 있게 집중해서 진행하다 완성이 된 후 빠져나온 그림에도 큰 매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작업하고 싶을 때도 있긴 하지만요. ‘나는 이것만 이렇게 한다’라는 마음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앞으로 작업에서 새롭게 시도하거나 더 깊이 탐구해보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요?

두아르트 스퀘이라에서는 소형과 중형 작업 위주로 선보였다면, 이제 조금 더 큰 작업을 시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품의 스케일을 키워보는 중이에요. 전시와 맞물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 <큐어>를 무척 인상 깊게 봤거든요.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정체성이 뚜렷하게 묘사되지 않고 불확실하게 그려지는데, 개인적으로 제 작업 역시 특정한 대상이나 그것과 관계된 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느냐에 대한 문제라 생각하거든요. 물리적으로 이것을 봤다는 사실보다 어떤 관점으로 그걸 봤느냐에 따라 대상의 정체성이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전시를 치르면서 인물을 그리는 것 자체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어요. 지워진 형상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방법, 혹은 그 누구도 누구인지 인지할 수 없는 어떤 인물을 그리는 것에 호기심이 생겼고요. 앞으로의 작업에 대해서는 답을 정해두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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