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호를 마감하는 내내 제 책상엔 책 한 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헤르멘 헤세의 <삶을 견디는 기쁨>이라는 책이죠. 출장 후 또 출장을 가야 해서, 영화제를 개막해야 해서, 마감을 해야 해서, 팀을 챙겨야 해서, 또 아이를 보살펴야 해서 등의 이유로 몸살이 나도 아플 수 없다고 혼잣말을 하는 제게 이 책이 위안의 말을 건넸습니다. “저녁이 따스하게 감싸주지 않는 힘겹고, 뜨겁기만 한 낮은 없다. 무자비하고 사납고 소란스러웠던 날도 어머니 같은 밤이 감싸안아주리라.” 이 문장을 읊조리자 하소연으로 가득했던 제 맘이 정화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죠. 순간, 지난 4월 26일 펼쳐진 제11회 마리끌레르 영화제 (MCFF)의 특별 상영작 <그녀들이 행복한 그날까지>의 주인공인 해녀 엄마들이 떠올랐습니다.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물질을 하는 이분들의 지난한 삶은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 날에는 아이들을 돌보고, 밀린 집안일을 하고, 밭일을 하는 힘겨운 노동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삶의 무게를 돌이켜보는 해녀 엄마들을 인터뷰하는 동안, 저도 곁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뜨거운 눈물을 삼키기도 했죠. 그리고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서울로 향하는 길목에서, 두 눈이 똘망똘망한 한 아이의 엄마인 피처 디렉터와 더없이 씩씩한 한 아이의 엄마인 저는 다짐의 말을 나눴습니다. 저분들의 거대한 삶 앞에 숙연해진 지금의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설익은 불평은 하지 말자고 말이죠. 이러한 뜨거운 깨달음을 담아 무대 인사를 나누고, 마리끌레르가 제작한 해녀 다큐멘터리 상영에 이어 담담하게 진행된 해녀 엄마들의 GV는 큰 박수와 응원 속에 뭉클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김옥자 해녀님의 노랫자락에 뜨거운 박수와 눈물이 뒤엉킨 엔딩이었죠. 아이를 낳자마자 바다로 들어가야 했던 고단한 시절 스스로 본인의 처지를 위로하던 노래, 나이 든 해녀의 삶을 담은 구슬픈 가사는 큰 울림을 안겨주었습니다. 유선애 피처 디렉터가 MCFF 스페셜 기사에 적은 표현을 빌리자면, 삶의 애환을 눌러 담은 곡진한 목소리는 관객 한 명 한 명의 마음에 깊이 가닿았습니다. 이처럼 음악엔 메시지와 순간의 영혼이 담깁니다. 이러한 취지로 6월호 커버라인은 ‘Music, Message, Moment’로 정했습니다. 르세라핌과 함께한 커버의 특별한 비주얼은 다가오는 파리 올림픽의 열기와 더불어 우리의 삶과 커리어를 레이스와 허들에 비유한 김지수 패션 시니어 에디터의 남다른 기획이죠. 또 6월 15~16일 펼쳐질 톤앤뮤직 페스티벌의 매력적인 뮤지션 온유, 유겸, 아이엠의 근사한 화보와 열정 어린 인터뷰도 눈여겨봐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여기 마리끌레르의 막강 피처팀이 전하는 음악에 귀 기울여보세요. 고단한 순간에 희망의 메시지를 안겨준 한 소절의 가사 말이죠. 이처럼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건 대단한 목표나 힘겨운 성취가 아니라 어쩌면 지극히 일상적인 찰나의 작고 소중한 무언가가 아닐까요.
<마리끌레르> 편집장 박 연 경
꽃이 피고 풀이 돋고
김사월 ‘호수’ – 피처 에디터 안유진
때론 낙엽이 지고
앙상해져도 호수는
그대로라고 하네
파도는 자기 혼자서도 신난데 말이야
그런 호수가 나를 적시네
살고 싶고 사랑에 빠지게
그런 호수가 나를 적시네
우리 한 발씩 그대로 있었고
최유리 ‘바다’ – 피처 에디터 김선희
땀, 작은 눈물이 고여
모든 사람들 헤엄칠 수 있게
큰 바다가 될 때까지
곱게 놓여진 우리의 추억이
드넓었던 세상에서
너를 올려주면 고운 그대 저 바다에
닿게 될 거야
밤하늘의 별들처럼
여유와 설빈, ‘밤하늘의 별들처럼’ – 피처 에디터 임수아
밝지 않아도
바람 부는 날의 촛불처럼
난 살아 있네
이젠 바다로 가는 강물처럼
맑지 않아도
흔들리는 날의 눈물처럼
삶은 흐르네
길을 잃기 위해서
좋아서하는밴드 ‘길을 잃기 위해서’ – 시니어 피처 에디터 강예솔
우린 여행을 떠나네
어떤 얘기도 하지 않고 어디론가 걸어가네
Slip inside the eye of your mind.
오아시스 ‘Don’t Look Back in Anger’ – 피처 디렉터 유선애
Step outside,
‘cause summertime’s in bloom.
But don’t look back in an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