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Feburary Issue

“어린 시절, 우리 일상의 매일은 모험의 연속이었죠. 언제든 환상적인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설렘을 느꼈고, 통속적인 기대나 관습에 얽매이지도 않았으니까요. 이번 컬렉션은 전략이 아니라 진정성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순수했던 유년 시절을 향한 그리움을 런웨이로 소환해 이를 지켜본 이들의 마음에 편안하고 즐거운 안식을 안겨줬던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 그의 이야기로부터 2월호 <마리끌레르>의 ‘Dare to Our Dream’을 관통하는 콘텐츠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매달 마리끌레르의 저널리즘적 메시지를 전하는 ‘월드 리포트’. 이달 포르투갈 사진가 마틸드 비에가스의 시선은 방과 후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자아이들에게 향했습니다. 그리고 순수한 마음을 나누며 깊이 교감하는 유년 여성 공동체가 자아내는 온기, 그 안에 자리한 변치 않는 동심의 가치를 역설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마음속에 되살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수많은 질문을 만들어내는 호기심, 새로운 경험을 망설이지 않는 용기, 억제되지 않은 기쁨을 언제나 누리기 바랍니다”라는 당부의 말을 건네면서 말이죠.
얼마 전, 제가 ‘벗’이라고 부르는 삼십년지기 친구가 옛 기억을 떠올려주더군요. 문학소녀 기질이 다분했던 학창 시절, 수화기 너머로 시를 읊어주던 추억을 말이죠. 어느새 잊고 있던, 이상향에 도취된 순수한 즐거움이 문득 그리워졌습니다. 우리의 삶을 함축적이고 정교한 시의 언어 안에 꾹꾹 눌러 담은 시집을 손에 쥐고 싶어졌죠. 어쩌면 여러분도 같은 마음일까요? 첫 시집을 낸 4명의 여성 시인과 마주한 이달의 인터뷰, 2025년 주목해야 할 신진 K-디자이너들과 라이징 모델들에 주목한 시작의 기록, 어린 시절 다이어리 꾸미기 실력을 발휘해 나만의 ‘백꾸’에 열중한 에디터의 백 스타일링, 새로운 세대의 불안감을 무장해제한 ‘무해력’의 매력을 글과 화보로 탐구한 페이지를 통해 다시금 순수함의 생동하는 기운을 느껴보면 어떨까요.
유년 시절, 꿈, 모험, 즐거움, 시작, 우정, 성장이 자아내는 그 무한한 에너지. 다시 살펴보니 이는 2025년 키워드로 대표되는 ‘무해력’과도 통합니다. ‘Embracing Harmless Empowerment’, 즉 무해력은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스트레스 없는 소비’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국내에도 개봉한 다큐멘터리 <움베르토 에코: 세계의 도서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에코의 개인 도서관을 조망합니다. “예전에는 도서관에 가면 세 권 정도의 참고 문헌을 찾았어요. 적어도 세 권의 책은 읽을 수 있었고, 거기서 뭔가는 얻을 수 있었죠. 대신 만 권의 책은 읽을 수 없어요. 말하자면 우리는 엄청난 ‘기억’을 얻게 되었다고 믿었던 바로 그 지점에서 그걸 잃었어요.” 무한한 콘텐츠의 시대에 유한한 시간을 다루며 살고 있는 요즘. 과도한 자극과 과잉 정보에 스트레스와 피로를 느끼는 이들이 솔직하고 자연스러우며 무해한 것을 찾아 헤메는 세상. 우리는 무엇을 잊고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새로운 시대의 기준이 된 긍정 에너지를 바탕으로 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적 연결은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최상위 감정인 ‘신뢰’를 이끌어냅니다. 자극적이지 않아도 깊은 공감 능력으로 신뢰를 얻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 2025년의 마리끌레르가 힘껏 다가가겠습니다.
< 마리끌레르> 편집장 박 연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