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NZO

펠리페 올리베이라 밥티스타가 주도하는 두 번째 겐조 쇼의 막이 올랐고, 게스트들은 철저한 방역을 거쳐 장미 정원으로 입장했다. 베일로 덮은 모자. 이 상징적인 아이템을 보며 디자이너가 무엇에 몰입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의 시골 양봉가를 담은 다큐멘터리 <허니랜드(Honeyland)>를 본 후 현재 인류가 처한 상황을 떠올린 그는 지금이라도 우리가 놓친 자연과의 조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몸을 감싸는 모자의 베일, 주머니를 빼곡하게 단 유틸리티 팬츠와 베스트, 방역관이 떠오르는 레인코트 등 디자인은 세기말의 기운이 서려 있었지만, 원색과 화려한 플라워 프린트로 낙관적인 미래를 꿈꾸게 했다. 나아가 오직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만을 사용하고, 세계 호랑이 개체 수를 두 배로 늘리기 위해 세계자연보호기금(WWF)과 협력하는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며 진지하게 환경보호 사상을 주입했다. 처음보다 나은 두 번째 작품을 보여줬으니, 다음 시즌은 더욱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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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겐조는 지난한 침체기를 겪었다. 컬렉션 피스들은 난해했고, 수정 과정을 거쳐 매장에서 판매하는 옷들은 유치했으며, 레트로 트렌드에 편승하고자 야심 차게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기용한 광고 캠페인까지 ‘세기말스럽다’는 혹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등장에는 어마어마한 관심이 쏟아졌다. 라코스테 컬렉션을 통해 모던 스포티즘의 정수를 보여준 펠리페 올리베이라 밥티스타가 브랜드를 소생시킬 거라는 모두의 기대감 속에 쇼의 막이 올랐다. 그러나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중동의 전통 복장을 연상시키는 실루엣은 지루했고, 브랜드를 상징하는 호랑이와 카무플라주를 애매하게 재해석한 패턴은 세련되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부임 이후 첫 시즌은 대체로 ‘적응기’로 여기기 때문에 아직 단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가 지금껏 보여준 뛰어난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는 점에서는 큰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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