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혁, 최세진 부부.

미국의 유명 건축가 톰 디그가 말했다. “자신의 집을 짓는 사람은 용감하고 삶에 호기심이 많다. 그들은 그저 상품을 사서 작동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잘 살고 있던 아파트 대신 30년 넘은 다세대 빌라를 매입해 손수 고친 서준혁, 최세진 부부만큼이 용감한 이들이 또 있을까. 각각 건축사사무소 지랩과 사무소 효자동을 거친 두 사람은 올해부터 만화기획 건축사무소를 함께 운영 중이다. 합심해 고친 홍은동 뻐꾸기 빌라는 만화기획의 프리퀄인 셈. “주말마다 집을 보러 다녔어요. 애매한 새집보다는 전부 뜯어 고칠 수 있는 15평 내외의 구옥을 찾았죠. 이 집의 첫인상은 굉장히 좁고 낡았는데, 요즘 보기 드문 직사각형 평면에 경사 지붕이더라고요. 꼭대기 층이라 천장을 트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금을 넣었어요. 가능성을 본 거죠. 곧장 빠루(천장을 철거하는 도구)를 사서 쳤는데, 다행히 아주 높고 반듯한 천장이 나왔어요.” 1986년산 다세대 빌라는 그렇게 젊은 새 주인을 맞이했다.

 

1980년대 유행한 건축양식 뻐꾸기창은 당시 다세대 빌라에 부릴 수 있는 최고의 멋이자 장식이었다.

 

물탱크가 있던 천장 자리를 수납공간으로 만들었다.

 

거실과 주방 사이에 미닫이문을 달아 유동적인 공간 활용이 가능하다.

 

작지만 너른 집

15평이 채 되지 않는 빌라는 화장실을 제외하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베란다가 있는 거실 겸 다이닝 룸, 주방 그리고 침실. 법적인 구조를 건들지 않는 선에서 모두 철거하고 새롭게 꾸몄다. 집 안 곳곳에서 부부가 고심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베란다의 문턱을 없애고 길게 마루를 시공해 공간이 넓어 보이게 만든다거나, 남향인 거실의 빛이 투과할 수 있도록 주방 사이에 난 문을 한지로 바른다거나, 3.7m에 달하는 거실 천장의 공간감을 살리기 위해 갓이 없는 펜던트 조명을 다는 식이다. 베란다 천장을 과감히 통유리로 마감한 것도 블라인드 개폐 유무와 관계없이 빛을 온전히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였다. 절대 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수납공간 확보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천장 안에 숨어 있던 물탱크 공간은 미닫이문을 달아 계절 가전과 옷을 수납하는 창고로 만들고, 베란다 한쪽에는 이동 가능한 장을 설치해 공간 활용도를 높인 것. 공사 기간은 약 한 달 반. 회사 생활로 바쁜 와중 직접 집을 고친 탓에 웃지 못할 추억도 생겼다. “입주 날짜가 안 맞아서 게스트하우스 생활을 한 달 정도 했어요. 나중에는 정말 기본만갖춰놓고 입주해 두 달 동안 화장실 문도 없이 지냈죠. 덕분에 서로 더 친해졌달까요.(웃음)” 우여곡절이 많았던 공사 과정은 인스타그램 계정(@villa_cuckoo)에 차곡차곡 담겼다.

 

뻐꾸기 빌라가 된 이유

1970~1980년에 지은 다세대 빌라는 대부분 밖으로 돌출된 ‘뻐꾸기창’이라 불리는 작은 창이 있다. 빌라를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내던 그 시절, 빌라에 부릴 수 있는 최고의 멋이자 유행이었던 셈. “이 집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뻐꾸기창이에요. 단열 보수를 하고 괜찮은 창호로 시공하면 안쪽 공간을 잘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좁은 집에 재미와 깊이감을 더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했고요.”
홍은동으로 이사한 지 2년이 되어가는 지금,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동네에서 느낀 정겨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집은 정말 우리가 살고 싶은 집에 살기 위해 찾은 집이에요. 아파트에 살 때보다 이웃을 만날 일도 많고, 서울인데도 작은 마을에 살고 있다는 소속감이 들어요. 솔직히 30~40년 된 다세대 빌라를 사서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고치는 것이 요즘 부동산 이치에는 맞지 않잖아요. 아파트가 더 편리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럼에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몸에 꼭 맞게 고쳐서 편안한 것도 있지만 삶이 한층 풍부해졌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