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진가 새뮤얼 제임스(Samuel James)는 생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짧은 순간 빛을 발하는 반딧불이의 모습을 7년간 프레임에 담았다.
자연에 대한 경외를 품은 채, 인고의 시간을 지난 끝에
반딧불이가 어둠을 가르며 그려낸 다채로운 빛의 궤적이 사진에 담겼다.
한 생명이 발산하는 생에 대한 의지, 이들에게 건네는 조용한 응시.



2019년부터 생체 발광을 통해 소통하는 반딧불이의 모습을 기록한 프로젝트 ‘Mirror Fugue’를 이어오고 있다. 어떤 계기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나?
매년 여름이면 미국 오하이오 남부의 온대 낙엽수림을 찾는다. 어린 시절부터 내 안에 깊이 각인된, 내 삶을 지탱해주는 뿌리 같은 장소로, 이곳의 다양한 생명체가 한데 얽혀 살아가는 모습을 기록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특히 초여름은 반딧불이가 번식기를 맞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빛을 내는 시기다. 이 지역은 생물 다양성이 이례적으로 풍부하게 보존돼 있어 반딧불이 40여 종을 관찰할 수 있다. 처음 이 생명체를 찍겠다 결심한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안개가 자욱한 어느 저녁, 남쪽 하늘엔 번개가 끊임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그 순간 ‘포투리스(Photuris)’ 반딧불이들이 일제히 섬광을 터뜨렸다. 그 풍경에 단번에 압도되어 그날 이후로 매년 이맘때면 이곳에 머무는 관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반딧불이의 발광 패턴은 서식지와 계절, 시간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들었다. 촬영에 앞서 어떤 기준이나 목표를 세우기도 하나?
시기별로 나타나는 종의 특성을 고려해 그들이 나타날 만한 장소를 찾아 나서지만, 장소를 결정한 뒤에는 순전히 자연의 흐름에 맡긴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며 기다리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여름 내내 숲속에서 지내다 보면 단 하루도 어제와 같은 날이 없다. 같은 장소, 같은 계절이라도 자연은 매일 새로운 풍경을 안겨주기에 그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사진 속 섬광은 점처럼 찍혀 있기도, 선처럼 흐르기도 한다. 빛의 흔적을 기록하는 작업이 지닌 표현의 가능성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공중에서 길게 이어진 섬광은 사진 속에서 하나의 선이 된다. 반딧불이의 이동 경로와 발광 주기에 따라 사진에 담기는 빛의 형태가 달라지는데 이때 굉장히 추상적인 구성이 만들어진다. 내게는 어떨 땐 하나의 암호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순간에는 음악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장노출 기법으로 이들의 모습을 촬영하는데, 어둠 속을 유영하는 반딧불이의 궤적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데 효과적인 방식이다. 반딧불이가 만들어내는 추상적인 빛과 형태를 바라보며 각자의 감상을 떠올리길 바란다.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를 포착하는 작업인 만큼 빛의 조건과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것 같다.
먼저 어둠을 읽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인공조명이 없는 자연환경에서는 밤이 되면 칠흑같이 어두울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그런 경우는 드물다. 황혼에도 여러 단계가 있고 달의 위상과 날씨에 따라 어둠의 농도가 시시각각 변화한다. 반딧불이는 어둠의 미세한 농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개체다. 어떤 종은 해질 무렵에만, 어떤 종은 완전한 어둠 속에서만 빛을 낸다. 황혼의 푸른빛은 하루에 단 10분 동안 지속되는데, 원하는 색상을 포착하면서 섬광을 촬영하려면 셔터를 열어두는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해야 한다. 대단히 수학적 접근을 요구하는 작업이자 빛에 대한 연구인 셈이다.
반딧불이는 오랜 시간 유충으로 살다 성체가 되어 짧은 순간 빛을 낸 뒤 생을 마감한다. 이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며 시간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있었나?
생애 전체로 보면 아주 짧은 찰나에만 점멸하고 생을 마감하는 반딧불이처럼 대부분의 자연현상은 짧고 일시적이다. 사진은 이렇듯 덧없이 사라져버리는 순간을 붙잡아둘 수 있는 매체다. 우리는 시간을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흘러가는 선형적 개념으로 이해하곤 한다. 하지만 해마다 숲으로 돌아와 반딧불이의 생애를 지켜보다 보면 시간이 점점 원형적이고 층층이 쌓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계절이 순환하는 동안 한 세대의 반딧불이가 태어났다 저물고, 빛이 생겨났다 사라진다. 하나의 선율이 시간차를 두고 반복되고 중첩되는 푸가(Fugue) 곡조처럼, 숲에서의 시간도 그렇게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들에게 빛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신호이자, 일종의 언어 체계다.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며 인간의 소통 방식에 대해 떠올려보기도 했나?
간혹 서로 다른 종이 아주 짧은 찰나에 완벽히 동기화되어 함께 빛을 내는 장면을 목격할 때가 있다. 밤새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놀라운 순간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사람들이 합창을 하거나 함께 춤을 추며 리듬을 맞추는 모습이 떠올랐다. 서로 다른 존재와 조화를 이루려는 본능이 우리에게도 내재되어 있다는 걸 종종 실감한다.
프로젝트를 이어오며 종 자체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사실이나, 특별히 인상 깊은 특성이 있나?
모든 종이 흥미롭지만 올여름에 관찰한 ‘봄철 4점멸 반딧불이(Spring Four Flasher)’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수컷 개체가 두 가지 패턴으로 빛을 내며 구애 신호를 보내는데, 몇 날 며칠 같은 무리를 따라가다 보니 이들의 발광 속도가 주변 기온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발견했다. 기온이 낮아지면 속도가 느려지다가 일정한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아예 발광을 멈추기도 한다. 프로젝트를 거듭할수록 반딧불이들의 복잡한 신호 체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싶어진다. 밤새 한 개체만 따라가보거나, 생애 전체를 추적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이 거대한 생태계에 관해 우리가 모르는 것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 겸손해지곤 한다.
반딧불이의 개체수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고, 이 중 일부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작업 과정에서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기도 하나?
그렇다. 반딧불이에게 근본적인 위협은 서식지 파괴와 빛 공해다. 유충 단계에서 이들은 부드러운 절지동물을 먹고 성장하는데, 지속적인 가뭄으로 서식지가 건조해지거나 농약 같은 화학물질로 인해 오염되면 성체로 자라나기 어려워진다. 또한 도시를 중심으로 보급되는 인공조명이 이들의 빛 신호를 방해하면서 개체 번식에도 치명적 영향을 주고 있다. 반딧불이의 개체수 감소는 결국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해 이들이 성장하고 번식하기 위한 이상적 조건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작업을 지속하며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이나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나?
인간은 결국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깊이 실감하게 된다. 우리는 자연의 물리법칙과 생태적 제약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자연과 공존할 방법을 고민하기에 앞서 이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늘 곱씹게 되는 생물학자 E. O. 윌슨의 문장이 있다. “인간 존재의 궤적에서 진정한 위협은 인류의 멸망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인식을 갖게 되는 순간 생명이 스스로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을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모순이다.” 결국 우리가 무엇에 의미와 가치를 둘지, 그리고 얼마나 덜 개입하고 덜 소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데서 공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라져가는 빛을 담는 당신의 작업은 단지 생태적 위기뿐 아니라 인간 존재나 기억, 감정 등 모든 유한한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 작업이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
해마다 숲으로 돌아와 계절의 변화를 목격하고, 다시 태어나는 반딧불이를 마주할 때면 경외심이 밀려온다. 이들은 생애 대부분을 인간의 눈에 띄지 않는 토양 아래에서 살아가다가, 숱한 고난을 이겨내고 기적처럼 성체로 자라나 머지않아 생을 마감한다. 이들 모두가 자연의 정교하고도 험난한 조건 속에서 살아남은 존재인 셈이다. 이토록 오랜 시간 반딧불이와 그들이 속한 생태계와 가까이에서 교감하면서 이 존재들이 내 삶 전체에도 깊이 스며들었다. 매해 그들을 다시 마주할 때마다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그리고 문득 이렇게 되뇌곤 한다. 우리는 또 한 해를 살아냈구나,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