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주현

나는 박주현

“배우란 인간에 대해 알아가고 인간을 공부하는 일이에요.” 첫 드라마 <인간수업>으로 얼굴을 알린 배우 박주현이 날아오르기 위한 출발선에 섰다.

멀티컬러 스트라이프 셔츠 원피스와 펠트 뮬 모두 제이더블유 앤더슨(JW Anderson).
셔링 디테일 블랙 톱 아모멘토(Amomento).
그린 체크 카디건, 미니스커트, 블랙 레더 롱부츠 모두 미우미우(Miu Miu).

블랙 슬리브리스 점프수트 로우클래식(Low Classic).
레이스 칼라 포인트 재킷과 블랙 레더 롱부츠 모두 미우미우(Miu Miu).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인간수업>을 이끌어가는 신인 배우 4명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촬영 순서로 치자면 필모그래피를 채운 첫 작품이어서 더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정신없이 촬영 했다.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은 게 행복하고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일을 하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인 데, 결과까지 좋아서 스태프들과 감독님, 작가님에게 많이 감사하다. 사실 모두 그분들의 공이니까.

드라마가 공개된 후 들은 평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뭔가? ‘눈빛이 좋다’. 선과 악이 모두 있는 눈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는 내가 가진 이런 점을 좀더 똑똑하게 사용하고 싶어졌다. <인간수업>이 첫 작품이어서 나 때문에 피해를 입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 땀, 눈물이 들어가는지 아니까 그분들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았다. 촬영하는 동안에는 마음의 여유도 없고 잠도 잘 못 잤다. 한 번 뱉으면 다시는 뱉을 일 없는 대사를 내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쉽게 잠들 수 없었다.

‘규리’를 만들어가면서 가장 고민한 지점은 뭔가? 기능적인 인물에 그치진 않을까, 평면적인 인물로 보이지 않을까 두려웠다.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부풀리는 데 오래 걸렸고 힘들게 만들어갔다. 규리는 나이에 비해 자신을잘 컨트롤하지만 어쨌든 미성년자니까 철없는 마음도 담아야 했다. 하지만 규리를 연기하는 나는 성인이다 보니 계산적이지 않은 지점을 어떻게 표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범죄를 계획할 때는 계산적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올라오는 감정은 계산하지 않고 연기하고 싶었다. 대본으로 만난 규리는 쉽게 정의할 수 없었지만 그래서 더 자유롭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인간수업>을 만나기 이전의 배우 박주현이 궁금하다. 연극으로 먼저 데뷔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입학 후 2년 동안 외부 활동을 할 수 없고, 학교에서 만드는 영화나 학생끼리 만드는 영화를 통해 필모그래피를 쌓을수 있는데 그때 재미있는 작품을 많이 만났다. 호기심이 많아 내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작품을 해왔다. 이런 경험 덕분에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겪는 고충과 그분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게 됐다. 지금 내게 연기는 굉장히 복잡하고 큰 존재다. 원래는 음악을 좋아했던 터라 고등학생 때는 밴드부에서 보컬을 맡았었다. 그러다 연기를 하면 노래를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에 취미 삼아 연기를 시작했는데 빠져버렸다. 원래 하나에 꽂히면 주저하지 않고 깊이 파고드는 편이다. 그렇게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때마침 대학 입시 무렵이어서 진로를 연기로 정했다. 돌이켜보면 <인간수업>을 만나기까지 지나온 시간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연기는 해보니 처음 생각한 것과 어떤 지점에서 다르고 어떤 지점에서 기대 이상인가? 연기는 기대 이상으로 재밌고 더 깊고 더 어렵다. 하루하루 행복하고 감사하지만 배우는 연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좋은 작품과 인연을 만나야 하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 자체가 좋은 기운을 계속 뿜어야 한다.

<인간수업> 현장은 개인적으로 첫 상업 드라마 현장이었으니 많은 것이 낯설었겠다. 감독님이 신인 배우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드라마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고 재미있게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닌데, 누구 하나 지치지 않도록 감독님이 선장 역할을 했다.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 많았던 (김)동희와는 촬영 전에 따로 리딩 연습도 했다. 다들 경험이 많지 않아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고, 촬영이 무섭고 설레었을 것이 다. 그 감정에 깊이 공감하니까 현장에서 서로 챙길 여유는 없었지만, 존재 자체가 의지가 되고 만나면 반갑고 서로 응원하게 됐다. 감독님이 만들어준 묵묵하고 묵직한 현장에 잘 스며들었다.

언젠가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인간 수업>이라는 작품은 어떻게 기억될까? 우선 인간 박주현으로서 한층 성장했 다. 내가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라 성인 으로서 책임지고 살아가야 할 부분과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에 대해 깨닫게 해줬다. 배우 박주현에게는 상업적인 작품의 문을 열어준 작품이다. 데뷔작의 감독님은 아마 앞으로 아주 오랫동안 생각날 것 같다. 김진민 감독님은 아버지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했다. 어제도 통화했다.(웃음) 따듯한 츤데레 같은 분인데 힘들 때마다 감독님에게 연락하게 된다. 그렇다고 감독님이 위로를 잘해주는 사람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 점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 나를 믿어준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날 처음으로 뽑아준 김진민 감독님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잘 성장하고 싶다.

감독님한테 들은 얘기 중 제일 힘이 된 얘기는 뭔가? 항상 얼음 칼날 위에 서 있는 기분으로 연기하라는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현장이 편해지는 순간 떨어지거나 죽게 된다는 무서운 말인데, 앞으로 연기할 때 이 말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배우로 살아가다 보면 연기와 현장이 익숙해질 때가 올지 모른다. 그럴 때 감독님의 이 말을 계속 상기하려고 한다. 좀 더 섬세하게 연기하기 위해서 이 말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규리가 윤리적으로 옳은 인물은 아니다. 더불어 <인간수업>은 현재 특정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주제를 다루기도 했는데, 이런 작품을 하고 나면 배우 자신의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치는가? 규리의 가치관이 나에게 스며든 다기보다 규리의 가치관을 탐구하다 보면 견문이 넓어진다. 규리는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규리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그 주변의 것들도 함께 배우다 보니 <인간수업>이라는 작품을 하며 사회문제를 보는 내 시야가 조금이나마 더 넓어졌다. 나는 연기 공부가 진정한 인간 공부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부. 철학적인 관점일 수도 있고 정서적인 관점일 수도 있다. 연기를 공부한다는 건 인간에 대해 알아가고 또 다른 인간을 만나는 작업이다.

규리가 가장 멋있을 때는 지수(김동희) 아버지가 돈을 가지고 도망갈 때달려가 온몸으로 부딪히는 장면이었다. 몸을 잘 쓰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 쓰는 걸 좋아한다.(웃음) 꼭 해보고 싶은 장르 중 하나가 액션 스릴 러다. 체대를 나온 아버지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운동을 무척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테니스와 수영을 했다. 집에서 가만히 있기보다 밖에 나가 배드민턴을 치거나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한다. 술을 마시지 못해서 친구들을 만나도 볼링을 치거나 한강공원에 간다.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편인가? 주저하지 않는다. 여행도 출발 하루 전에 표를 사서 갈 때도 있다. 계획을 세우다 보면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할 때가 있더라. 그래서 여행은 마음이 움직이면 바로 떠난다.

다양한 경험이 연기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무조건.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하면, 특히 여행 갔을 때 영감을 많이 받아 그때의 감정을 일기로 기록한다. 여행지에서 느낀 낯선 감정이나 생각을 메모하듯 일기로 쓰는 거다. 일과를 적는 게 아니라 감정 위주의 일기다. <인간수업>에 출연하게 됐다고 했을때 황정민 선배가 연기할 캐릭터로서 일기를 써보라고 조언해줬다. 그래서 어떤 작품을 맡으면 내가 원래 쓰던 일기 대신 캐릭터의 일기를 쓴다. 감정을 섬세 하게 그려볼 수 있어 연기할 때 도움이 많이 된다. 감정을 텍스트로 기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그만큼 감정을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그래서 서러워서 울거나 화가 날 때 거울을 본다. 그렇게 내 표정을 들여다보면 어떤 감정일 때 이런 표정이 나오는지 알게 된다. 감정을 섬세하게 정리하면 배우의 재료가 되어준다.

차기작에서 박주현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 차기작에서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순수한 열정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 지금까지 안타까운 인물을 연기했다면 이번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렇게 순수하게 살아도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어’ 하고 깨닫게 할 수 있는. 좀 더 편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나길 기대한다. 그리고 내가 맡은 캐릭터를 글로 읽을 때보다 훨씬 다채롭고 입체적인 인물로 표현하고 싶다. 내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charm girl’인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떤 작품, 어떤 인물을 만나 더라도 매력적으로 만들려고 한다. 어쩌면 <인간수업>으로 크게 주목받은것 같은 일은 평생 한 번도 경험하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감이 가슴 한편에 있다. 하지만 앞으로 연기를 사랑하고 작품마다 새로운 시도를 하며 순수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연기하고 싶다. 매번 또 다른 출발점에 서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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