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EL

2020 F/W HAUTE COUTURE COLLECTION

지난 6월, 샤넬은 지중해를 향한 환상이 담긴 크루즈 컬렉션을 디지털 방식으로 훌륭히 풀어냈다. 배경이 된 카프리섬의 풍경은 비록 출력된 프린트물이지만 실제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자아냈고, 전 세계의 프레스를 불러 모으지 않고도 큰 화제를 이끌어냈다.

크루즈 컬렉션의 성공은 버지니 비아르에게 많은 의미를 지닌다. 칼 라거펠트 시절의 웅장한 쇼가 사라질 거라는 대대적인 선언에 따른 우려와 아쉬움의 목소리를 순식간에 잠재웠기 때문이다. 새롭게 공개된 오트 쿠튀르컬렉션은 이러한 그의 철학을 반영했다. 깨끗한 배경 앞에 선 모델들은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옷만을 강조한다. 긴 드레스와 아이코닉한 체크 패턴, 트위드 재킷 등 클래식한 요소를 총망라했지만 펑키한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자유분방한 몸짓 덕분에 고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새벽에 르 팔레스에서 펑크 공주가 걸어 나오는 장면을 떠올려봤어요. 태피터 드레스와 머리 장식, 깃털, 그리고 많은 보석으로 치장하고서 말이죠. 칼이 구축한 샤넬의 세계를 생각하며 디자인했습니다.” 버지니 비아르는 디지털 오트 쿠튀르 쇼를 통해 시대적 상황에 놀랍도록 의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증명했으며, 고전적인 동시에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하우스에서 가장 중시하는 고유성까지 완벽하게 지켜냈다.

 

 

BALMAIN

2020 F/W HAUTE COUTURE COLLECTION

디지털 런웨이라고 해서 꼭 화려한 기교와 스튜디오 촬영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7월 5일 공개된 발망의 오트 쿠튀르 쇼는 아날로그 런웨이와 디지털 경로의 개척이라는 이질적인 두 조건을 완벽하게 조합해냈다. 올리비에 루스텡은 먼저 파리의 센강을 횡단하는 크루즈를 섭외하고, 모델들의 워킹과 싱어송라이터 이술트(Yseult)의 미니 콘서트, 댄스 공연으로 컬렉션을 구성했다. 새로운 시도를 두고 루스텡은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모두의 앞에 놓인 상황의 변화와 진보를 향한 희망, 그리고 자신감을 담고 싶었습니다. 지금 세계에는 여러 가지 투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의와 평등에 대한 요구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반작용인 동시에 변화의 가능성을 불러일으킵니다. 오늘 선보인 공연은 진보를 향한 역동적인 갈망을 공유하자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쇼는 코로나19로 인한 파리 봉쇄령 종료를 기념하는 동시에 ‘예술과 패션의 도시인 파리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하자’라는 메시지를 통해 프랑스의 발망 마니아들을 열광시켰고, 틱톡 앱을 통해 생중계되며 쇼의 관객을 다양한 연령층으로 확대하는 데도 성공했다.

 

 

GIAMBATTISTA VALLI

2020 F/W HAUTE COUTURE COLLECTION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디지털 쿠튀르 위크 기간에 유튜브를 통해 12분에 달하는 쇼케이스 영상을 공개했다. 오트 쿠튀르 정신을 보수적인 방식으로 수호해 오던 이 하우스에게 디지털 방식으로의 전환은 버거운 과제가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하우스는 시대적인 변화를 자신만의 속도로 담담하게 수행했다.

신체의 비율을 왜곡하는 카메라 렌즈로 톱모델 조앤 스몰스의 감각적인 포즈를 담아내며 약간의 디지털 친화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 반면 풍성한 실루엣, 튈과 실크, 리본과 하이힐 등 하우스를 대표하는 요소의 조합으로 완성한 열여덟 벌의 드레스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전적인 우아함을 내뿜었다. 색다른 디지털 경로를 개척하거나 엄청난 영상적 기교를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불필요한 힘을 빼고 ‘오트 쿠튀르’라는 본질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만족할 만한 쇼였다.

 

 

WOOYOUNGMI

2021 S/S COLLECTION

우영미는 온라인으로 진행된 파리 맨즈 패션위크에서 여성복이 포함된 S/S 컬렉션을 공개했다. 이번 쇼는 우영미의 예술 세계와 시대를 바라보는 철학을 동시에 반영한다. 낡고 얼룩진 무대에서 모델들이 선보이는 춤은 비록 무대는 망가졌을지언정 그곳에서 새로운 희망과 창의성, 움직임과 진화가 피어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독일 무용가인 피나 바우슈에게 영감 받은 안무는 중성적이고 예술적인 분위기로 젠더리스 패션을 이어가는 우영미 하우스에 힘을 보탰다. 영상을 제외한 컬렉션 룩도 화제를 모았다. 베이지, 그레이, 샌드, 캐멀 등 지구적인 색감에 남성복을 기반으로 하는 탄탄한 테일러링이 더해져 한동안 파리 패션위크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굵직한 선의 여성 컬렉션이 탄생한 것. 파리 맨즈 패션위크의 첫날을 완벽하게 열었다는 현지 매체들의 찬사와 함께 우영미 쇼는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키며 막을 내렸다.

 

 

DIOR

2020 F/W HAUTE COUTURE COLLECTION

“영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자, 예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된다는 점에서 저를 매료시킵니다. 이번에는 그 특성을 활용해 오트 쿠튀르만의 환상적이고 독특한 분위기를 재해석하면 어떨지 생각해봤죠.”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오프라인 컬렉션의 중단이라는 위기를 단숨에 기회로 바꿔놓았다. 컬렉션 현장에서는 절대 구현할 수 없는 웅장함을 영화적인 필름에담아낸 것. 이탈리아 감독 마테오 가로네(Matteo Garrone)가 지휘한 이번 오트 쿠튀르 컬렉션 영상은 감독의 시선을 따라 쿠튀르의 마법이 시작되는 장소인 아틀리에를 살펴본 후, 장인들의 손에서 탄생한 컬렉션 피스들이 마네킹에 입혀지고, 마침내 동화 속 주인공 같은 쌍둥이의 트렁크에 담겨 숲의 생명체들에게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님프와 인어, 나르키소스 조각상과 사티로스에 이르기까지, 신화적인 모티프로 꾸민 이 영상은 그리스 로마 문학인 오비디우스의 <메타모르포세스>를 연상시켰으며 디올의 신비하고 환상적인 오트 쿠튀르 세계와 완벽하게 닿아 있었다.

 

 

PRADA

2021 S/S COLLECTION

프라다는 ‘멀티플 뷰’라는 컬렉션 주제에 부합하는 5명의 저명한 아티스트를 불러 모았다. 윌리 반데페르(Willy Vanderperre), 유르겐 텔러(Juergan Teller), 조아나 피오트로프스카(Joanna Piotrowska), 마틴 심스(Martine Syms), 테렌스 낸시(Terence Nance)가 챕터 1부터 챕터 5까지의 영상을 하나씩 맡아 촬영했으며, 각자의 개성과 예술성을 유감없이 녹여냈다.

미우치아 프라다가 이토록 커다란 프로젝트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새 시즌의 주제는 다름 아닌 ‘프라다의 정수’다. 그는 패션이 어떻게, 어디에서, 왜 입혀지는가에 대해 깊게 생각했고, 자신의 옷이 사람들의 삶 속에 오래도록 간직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길 원했다. 이런 고민은 쇼 곳곳에 포멀하거나 클래식한 요소, 퓨처리즘과 스포티즘으로 표현됐다. 옷이 지닌 즐거움과 에너지, 유쾌함이 몸을 넘어 마음까지 가볍게 만들며 이것이 바로 패션의 존재 이유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모든 챕터가 고유한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마틴 심스가 디렉팅한 챕터 4만큼은 꼭 감상해보길. 마틴 심스에 따르면 “소품들은 1960년대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 시대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영화 문화와 감시라는 코드를 말하려고 했다”라고 설명하는 이 짧은 영상에는 프라다가 수십 년간 지향해온 퓨처리즘과 클래식, 문화와 자유에 대한 이야기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VALENTINO

2020 F/W HAUTE COUTURE COLLECTION

발렌티노가 생중계한 오트 쿠튀르 컬렉션 영상은 현대미술 작품에 가까웠다. 오트 쿠튀르의 거장으로도 불리는 발렌티노 하우스의 피에르 파올로 피치올리가 현대 예술가인 닉 나이트(Nick Knight)와 협업해 만든 영상 속 모델들은 키의 2배에 달하는 드라마틱한 드레스를 입고 공중에서 포즈를 취한다.

정해진 규칙 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이들에 의해 옷에 장식된 깃털과 프린지가 정처 없이 휘날리고, 그 위로 빛과 그림이 반사되며 옷에 새로운 느낌을 더한다. 중간중간 영상에 삽입된 그래픽아트 역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쿠튀르의 전형과도 같은 열다섯 벌의 드레스는 라이브 퍼포먼스를 통해 대중에게 더 가까이 전달됐고, 마치 중세시대의 서커스를 보는 듯한 독특한 인상을 남겼다.

 

 

LEMAIRE

2021 S/S COLLECTION

르메르의 현장감 넘치는 디지털 런웨이는 마치 오프라인 쇼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쇼는 오래된 밀리터리 인형에서 받은 영감을 데님과 포플린 등의 소재로 나타낸 ‘사인 오브 더 타임스(시간의 흔적, Sign of the Times)’, 여러 겹의 레이어와 시각적인 효과를 통해 신체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모션(움직임, Motion)’, 부드러운 면으로 절제미와 여유를 그려낸 ‘리버티(자유, Liberty)’까지 총 세 가지 단막으로 구성됐고, 편안한 색감과 실루엣으로 완성된 여러 벌의 옷이 무리 짓거나 홀로 걸어 나오는 모델들의 걸음과 만나 지극히 르메르다운 무대가 펼쳐졌다.

유명 예술감독을 영입하지도, 현란한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지도 않은 탓에 ‘디지털 컬렉션’이라는 이름이 무색했지만, 고유의 색이 뚜렷하기에 오히려 더 감탄을 자아내는 쇼였다.

 

 

TOD’S

2021 PRE-SPRING COLLECTION

토즈는 디지털 관객을 이탈리아 마르케 지역에 위치한 토즈 본사로 초대했다. 새 컬렉션의 컨셉트를 정하는 단계부터 마지막 제작 과정인 ‘터치 업’에 이르기까지, 창의성에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