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그래퍼 스테파니에 젠고티(Stephanie Gengotti)는 2016년부터 서커스 러브(Circus Love)라는 이름으로 누보 시르크(Nouveau Cirque: 새로운 서커스라는 뜻으로, 동물 쇼나 묘기를 자제하고 어떤 이야기나 주제를 전통 서커스 기술로 풀어내는 공연 예술 장르)를 선보이는 극단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장기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카라반을 타고 유랑하며 사는 서커스단 가족들의 이야기는 보헤미안의 삶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이들은 비전통적인 서커스단이지만, 바넘 앤 베일리(Barnum & Bailey)가 기형적 외모의 사람들과 동물들을 데리고 만든 전통적 서커스 개념을 전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통을 재해석하고 확장하며 여러 분야의 예술을 결합해 서커스를 변모시킨다. 이 가족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거리 예술 축제에서 공연하고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즐길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쇼를 보여주며 살아간다. 그렇게 이들은 점점 사라져가는 서커스 세계의 마지막 계승자로서 쇼를 이어가고 있다.

기쁨과 절망이 어우러진 삶을 표현하는 이들은 국경도 민족도 없이 이곳저곳을 누비며 서커스 쇼를 선보인다. 계절의 순환 같은 원형 노선을 따라 유랑민의 삶을 사는 서커스단은 자유롭지만 한편으로 자유롭지 못하기도 하다. 경계와 제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표현하지만, 카라반을 파고 들어오는 혹독한 추위와 먼지투성이 길, 숨 막히는 햇볕을 피할 수는 없다.

서커스는 예술이고 창조일 뿐 아니라 신체적 훈련과 육체노동이기도 하다. 모든 쇼는 참신한 연구와 기획 못지않게 피와 땀, 오랜 시간을 들인 노력, 힘들고 기나긴 테스트를 거쳐야만 완성된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이 주머니 속에 고작 몇 달러만 가진 채, 찬장에는 먹을거리가 동난 데다 공연 무대가 슈퍼마켓 주차장일 수 있는 상황에 만족하면서 이루어진다.

서커스의 가장 큰 미덕은 또한 서커스의 가장 큰 한계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삶이 알고리즘에 의해 결정되는 이 하이퍼 기술 세계에 인간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확신. 포토그래퍼 스테파니에 젠고티는 유랑하는 서커스단의 삶을 들여다보며 공유 의식과 가족 의식, 몸을 사용해 일하는 숭고한 능력을 발견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소설가 파비오 스타시(Fabio Stassi)가 <샤를로의 마지막 춤(Charlot’s Last Dance)>에서 한 말에서 영감을 얻어 프로젝트의 이름을 ‘서커스 러브’라고 지었다. ‘우리 모두는 알아차릴 수도 없을 만큼 가느다란 줄 위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는 줄타기 곡예사다. 오로지 사랑이라고 불리는 무질서 속에서만 묘기가 가능하다.’

브루네테 브로스(The Brunette Bros)

이름부터 신성모독적이고 비인습적인 이 서커스단은 2명의 여성이 설립했다. 15년 전 코펜하겐에서 만난 리사(Lisa)와 마리아(Maria)는 1970년대 히피들이 불법 거주를 하면서 생겨난 지역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 외곽에서 자칭 ‘세계에서 가장 크고 두 번째로 작은 서커스’라는 특이한 서커스를 탄생시켰다. 이들의 서커스에는 자기 역설과 그들에게 영감을 준 예술가 알렉산더 콜더(Alexander Calder)에 대한 깊은 존경이 담겨 있다. 콜더는 조각가이자 공연 소품과 도구를 여행 가방 두 개에 담아 운반이 가능할 정도로 작은 마이크로 서커스를 창안한 사람이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을 피해 서커스단을 시작한 리사와 마리아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도, 장맛비에 흠뻑 젖어도 절대 멈추지 않았다. 망가진 트럭과 페인트칠한 카라반이 그들에게는 집이고 이동 수단이며 무대지만, 부족한 건 없다. “우리는 경제체제와 관료주의에 짓눌릴 생각이 없어요.” 무엇이든 자율적인 체계하에서 자급자족하기로 결심한 두 사람은 몇 개의 서커스 도구와 장치들로 공연을 하는 동시에 쇼를 홍보하고, 삶을 꾸려간다.

작은 규모에도 서커스단이 매년 성장할 수 있는 건 가족 덕분이다. 리사와 마리아는 둘 다 어머니이며 두 사람의 가족은 이미 브루네테 브로스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싱글 맘인 마리아의 아들 마리우스(Marius)는 타고난 배우인 반면, 마리우스보다 어린 리사의 아들 에르네스토(Ernesto)는 종종 앞줄에 앉아 열정적으로 음악을 지휘한다. 리사의 남편 마누(Manu) 역시 예술가로 브루네테 브로스의 일원이다.

이들이 예술적, 문화적으로 참고하는 대상은 배우 버스터 키턴, 찰리 채플린,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 그리고 심지어 1930년대 섹시 심벌로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 베티 부프와 1960년대 미국 TV 쇼에서 가장 유명했던 광대 보조 같은 가상의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이 모든 대상은 브루네테 브로스의 쇼에서 이들만의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다. 이건 음악부터 디자인, 영화 편집부터 전위극까지 다방면에 걸친 다양한 훈련이 낳은 결과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표현 수단은 보는 사람들에게 초현실적이고 신비한 경험을 선사한다. 쇼를 본 사랑들은 하나같이 이들의 고갈되지 않는 창조적 에너지에 놀라는데, 그건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방랑하는 것을 즐기는 삶의 전리품과 같다.

꿈의 낚시꾼(Les Pêcheurs de Rêves)

‘꿈의 낚시꾼’은 프랑스의 작은 가족 서커스단으로, 실제로 부부인 빈센트(Vincent)와 플로랑스(Florence)가 부부 광대인 가상의 인물 자(Za)와 크라포트(Krapotte)를 연기한다. 공연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삶과 결혼 생활을 패러디한다. 아내 크라포트는 플로랑스처럼 관계를 이끄는 강한 쪽인 반면 자(빈센트)는 그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뭐든 한다. 이 쇼에서는 실생활과 허구가 뒤섞이는데, 빈센트와 플로랑스는 자신들의 예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나머지 결혼도 자신들이 만든 ‘광대 체제(Clownesque Regime)’하에서 했다. 광대 체제는 그들이 탄생시키고 해석하고 계속해서 연기하는 캐릭터들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지은 이름이다. ‘사랑하는 코’라는 제목이 붙은 이들의 쇼는 포스터에 적혀 있듯 프랑스어 ‘humour(유머)’와 ‘amour(사랑)’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유희 속에서 펼쳐지는 유머 혹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이 가족이 사는 곳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지만, 다양한 축제에서 공연하기 위해 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여행하면서 보낸다. 쇼는 주로 여름 내내 열리는데 이 때문에 이들의 딸 지아(Zia)와 아들 조르탕(Zorthan)은 매년 여름 부모와 함께 여행하며 계절을 보낸다. 기술부를 맡고 있는 싱글 대디 마르코(Marco) 역시 공연 때마다 딸 루나(Luna)를 데리고 다닌다. 아이들은 정착보다 유랑하는 삶을 선택한 부모 때문에 학교보다 학교 밖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지만, 이 덕분에 자신들의 우주를 더 자유롭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꿈의 낚시꾼’이라는 이름처럼 매년 여름작은 서커스단 안의 두 가족은 각자의 꿈을 낚고 있다.

지로바고와 론델라(Girovago e Rondella)

온갖 신화적 이야기로 넘쳐나는 그리스 로도스섬에서 나고 자란 때문일까? 마르코(Marco)와 페데리카(Federica)는 어릴 때부터 낭만적이고 예술적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타고난 예술성을 기반으로 그리스의 섬 주민들을 놀라게 한 순회 서커스 듀오인 지로바고와 론델라가 되었다. 그리고 2세대인 루지아다(Rugiada), 티모테오(Timoteo), 토마소(Tommaso)가 탄생하면서 가족 극단으로 확장된 세계를 펼치는 중이다.

이들의 프로젝트는 정의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광범위하다. 현대 서커스를 여러 분야에 걸친 예술이라고 설명할 때, 그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시켜주는 완벽한 예가 지로바고와 론델라라고 말하면 그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이해가 갈 거다. 이들의 영역이 넓어지는 데는 두 사람의 아이들도 한몫한다. 이들의 딸 루지아다는 결혼하면서 남편 그리고 남자 형제인 티모테오, 토마소와 함께 드로모소피스타(Dromosofista)사를 설립했다. 배우, 뮤지션, 인형 조종사들로 이루어진 이 극단 기업은 계속해서 확장된 규모의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두 극단은 함께 여행하면서 버스 극장에서 쇼를 펼친다. 이들은 작은 버스 안에서 삶에 관한 시와 마법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대화는 없지만 말보다 강력한 소통과 환기의 힘을 가진 작은 인형극은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더 넓은 세계로 여행하고 있다.

비동 서커스(Cirque Bidon)

1970년대에 설립된 이 서커스단은 지난 40여 년 동안 말들이 끄는 카라반을 타고 시속 4킬로미터의 속도로 하루 25킬로미터씩 쉬지 않고 유럽을 돌아다녔다. 파리에서 평범한 대장장이로 살았던 프랑수아 롤린(François Rauline)이 서커스단을 만든 이유는 다른 삶, 더 역동적인 삶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내면을 성찰하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은 그는 시간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고, 여행을 하며 자신만의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느림의 욕구가 꿈과 시간에 대한 갈망과 함께 서서히 찾아왔다. 가진 돈이 얼마 없어서 자전거를 팔아 말 한 마리를 구입한 뒤 카라반을 만들었다. 그리고 몇몇 친구들, 공중곡예사가 되길 꿈꾸고 자신만의 시를 찾고 있던 고전 무용수 한 명과 함께 비동을 탄생시켰다. 비동의 무용수이자 내 아내인 그녀와 나는 서로의 길이 달라지기 전까지 엄청나게 많은 것을 함께했다.”

호기롭던 스무 살 청년이 하얀 턱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이 되는 동안 비동 서커스는 15명의 예술가들이 함께하는 극단이 되었고, 이들의 쇼는 어딜 가든 환영받는 존재가 되었다. 이제 어디든 그의 카라반이 도착하면 줄을 지어 따라다니는 열정적이고 호기심 어린 환영단이 넘쳐난다. 예술과 시가 어우러진 몽환적이고 섬세한 비동의 현대 서커스는 극, 라이브 음악, 광대들의 결합체로서 또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냈다.

기퍼드 서커스(Giffords Circus)

넬 기퍼드(Nell Gifford)는 런던 근교의 코츠월드 언덕에서 자란 남편 토티(Toti)와 함께 2000년에 기퍼드 서커스를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만의 광장 서커스를 시작하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펼치기 위해 고향인 옥스퍼드 뉴칼리지를 떠났고, 두 사람은 함께 꿈을 현실로 바꾸었다. 영국의 신문 <트레이드잇(Trade It)>을 보고 둥근 흰색 텐트를 구입하고, 안에서 생활할 쇼맨 마차를 만들고 밤색과 금색으로 칠했다. 주간 신문 <스테이지(TheStage)>에 공연자들을 구하는 광고를 내고 첼튼엄에 있는 먼지투성이 작은 극장에서 오디션을 열었다. 이렇게 첫 걸음마를 뗀 뒤 두 사람은 매년 여름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쇼를 선보였다.

기퍼드 서커스의 시그니처는 말이다. 넬과 토티는 어린 시절부터 타고 자란 말과 함께 하는 쇼를 만들어냈다. 이들의 서커스에서 볼 수 있는 말의 흥미진진한 모험은 한 번 경험하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말은 새로운 쇼에 영감을 주는 존재였고, 서커스단의 모든 쇼는 말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의 목표는 유랑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이 가득 들어찬 마을 광장에서 매일 관객에게 마법을 거는 공연에 몰두하는 작지만 소란스러운 공연단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목표는 이미 달성했다. 2000년에 서커스단을 시작한 이래 이들은 1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고, 쇼가 거듭될수록 더 많은 창의적인 예술가들과 함께 일했다. 이들은 탁월한 재능을 서커스에 담기 위해 기존 생활을 잠시 포기할 준비가 된 사람들을 찾아 파리, 모스크바, 헝가리, 루마니아 등지를 돌아다녔다.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탭댄서, 줄타기 곡예사, 공중곡예사, 스턴트 라이더, 오페라 가수, 마술사, 체조 선수 등이 기퍼드 서커스단에서 살면서 함께 여행하다가 마을 광장에 발길을 멈추고 쇼를 사랑하는 시골 가족, 농부, 주말 방문객, 관광객, 영화배우, 록 스타, 예술가, 학생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안타깝게도 지난해 9월, 히피 쇼인 ‘재너두(XANADU)’ 무대를 마지막으로 이 서커스단의 수장인 넬 기퍼드는 세상을 떠났다. 암 투병 중에도 쇼의 마지막 날까지 공연을 해낸 그녀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쇼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떠났지만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그녀의 서커스단, 기퍼드 서커스는 영원히 남을 불멸의 존재로 쇼를 이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