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헤리티지부터 아티잔 모더니즘, 인더스트리얼 쿠튀르, 네오브루탈리즘까지.
Industrial Couture





산업성과 공예, 기술성과 테일러링의 경계를 넘나들며 위트 있는 패션 흐름을 만들어낸 인더스트리얼 쿠튀르. 미우미우는 워크웨어 디테일과 유틸리티 포켓 등 노동과 생산 그리고 실용성에서 출발한 산업적 코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여기에 쿠튀르적 재단을 결합해 여성의 삶과 일상에 녹아들 수 있게 구현한 것. 한편 프라다는 워크웨어의 외형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기보다 절제된 실루엣으로 표현했다. 기능을 살리고 쿠튀르 요소를 가미한 룩이 쇼 전반에 녹아든 것을 볼 수 있다. 장 폴 고티에의 게스트 디자이너 듀란 랜팅크는 유니폼과 스포츠웨어를 업사이클링했다. 이를 바탕으로 실루엣을 재조합하거나 조형적으로 테일러링하고, 쿠튀르적 방식으로 풀어낸 것. 하우스의 유산인 코르셋과 해체적 실루엣 등을 인더스트리얼 쿠튀르의 방식으로 해석하며 자신의 재능을 증명해냈다. 니콜라스 디 펠리체의 꾸레쥬는 미래적인 패브릭과 보디 콘셔스 실루엣을 바탕으로 공업적 요소를 감각적으로 정제한 미니멀리즘을 제시했다. 데님을 다시금 산업적인 오브제로 다룬 디젤 또한 언급할 만하다. 워싱, 디스트로이드, 하드웨어적 디테일을 극대화하며 특유의 거칠고 에너지 넘치는 스트리트 쿠튀르를 완성한 것. 기술, 공업, 조형에 패션을 접목해 ‘인더스트리얼’이 더 이상 거친 것만을 대변하는 요소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쿠튀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냈다.
Neo-Heritage





헤리티지가 과거의 스타일을 반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지금, 패션은 각 하우스의 유산을 미래의 언어로 번역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는 2026S/S 컬력션 전반에서 포착된 네오헤리티지 흐름으로, 아카이브를 재현하기보다 그 정신과 구조, 기능을 오늘날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다. 그 중심에는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의 데뷔 쇼가 있었다. 샤넬에 합류한 마티유 블라지는 트위드와 리틀 블랙 드레스, 까멜리아 같은 브랜드 고유의 상징을 아이콘으로 소비하지 않았다. 그 대신 코코 샤넬이 추구한, 여성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숨 쉴 수 있는 ‘옷을 대하는 태도’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장식이 아닌 구조와 설계를 통해 자유의 언어를 다시 불러내며, 하우스의 헤리티지를 가장 동시대적인 방식으로 구현한 것. 조나단 앤더슨의 디올은 뉴룩의 형식을 답습하는 대신, 쿠튀르의 사고방식을 재해석한다. 여성성을 고정된 이미지로 보는 대신 하나의 태도로 확장했다. 그가 바라보는 디올의 네오헤리티지는 그저 뉴룩의 곡선적 실루엣이 아니라, 옷의 형태로 시대를 말해온 하우스의 사유 방식이다. 뎀나 바잘리아는 구찌의 헤리티지를 급진적으로 다뤘다. 그는 플로라와 홀스빗, 재키 백을 더 이상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장치로 두지 않고 디스토피아적 스트리트 감각과 결합했다. 해체와 재조합을 거친 구찌의 유산을 안전한 복고풍으로 추억하지 않고 지금의 현실과 맞닿은 불편한 아름다움으로 재탄생시킨 것. 다리오 비탈레는 베르사체를 위해 1990년대 풍의 글램 럭셔리를 정제된 커팅과 가벼운 구조로 재배치했다. 섹시함을 장식적 요소의 하나로 박제하는 대신 몸의 움직임과 태도로 전환하며, 하우스의 에너지를 동시대적 심박수로 뛰게 만들었다.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는 로마의 장인정신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이어간다. 가죽공예와 소프트 테일러링은 더욱 가볍고 유연한 형태로 진화하며, ‘생활하는 쿠튀르’라는 펜디의 철학을 담은 성숙한 네오헤리티지를 선보였다. 이처럼 각 디자이너가 선택한 방식은 다르지만, 이의 지향점은 분명하다. 네오헤리티지는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하우스의 유산을 다시 질문하고, 오늘의 감각으로 번역한 것. 헤리티지는 기억될 때가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질 때 살아남는다.
Artisan Modernism





장인정신을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아티잔 모더니즘’을 구현한 브랜드들도 눈에 띄었다. 아티잔 모더니즘이란 핸드크래프트, 소재와 제작 과정의 깊이 있는 이해에서 출발하지만 미니멀하고 조형적이며 현대적인 실루엣으로 제작하는 것. 루이스 트로터는 보테가 베네타에서 선보인 첫 쇼에서 하우스의 핵심인 인트레치아토와 가죽공예를 과시하지 않고 옷의 구조와 실루엣을 구성하는 기본으로 삼았다. 공예적 깊이를 유지하되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미니멀리즘이 공존하도록 한 것. 메종 마르지엘라는 글렌 마틴스를 선임하며 그의 장기인 패션을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과정에 공을 들였다. 메종 마르지엘라 특유의 러프한 마감과 노출 봉제, 불완전한 날것의 공예와 정제된 현대성을 공존시켜 아티잔 모더니즘의 핵심을 관통했다. 잭 맥콜로와 라자로 에르난데스는 로에베 하우스가 축적해온 크래프트 중심의 미학을 바탕으로, 절제된 실루엣 안에서 정교한 수공 디테일을 새롭게 풀어냈다. 공예를 단순한 장식에 머물게 하는 대신 극적인 실루엣과 공예적 텍스처로 다루며 장인정신을 모던하게 풀어냈다. 시모네 벨로티는 질샌더를 초창기로 되돌려놓았다. 우선 소재 선택과 패턴의 정밀한 완성도를 전면에 내세웠다. 밀도 높은 장인정신을 드러낸 절제된 형태 속에 ‘고요한 장인정신’이라는 질샌더 특유의 미학을 고조시켰다. 나데주 바니 시불스키가 이끄는 에르메스는 새들 스티치와 가죽공예를 가볍고 유연한 선으로 풀어내며, 전통적 아티잔 정신이 어떻게 오늘의 럭셔리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아티잔 모더니즘은 장인정신을 현대의 라이프스타일 안에서 적용할 수 있게 변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럭셔리는 얼마나 화려한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진화하고 있다.
Neo-Brutalism





거칠고 구조적이며 조형적 감각을 전면에 내세우는 네오브루탈리즘.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를 영입한 발렌시아가는 하우스의 건축적 테일러링과 볼륨을 기반으로, 과시적 브루탈리즘 대신 절제된 구조와 깊이 있는 실루엣을 통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디자인을 떠올리게 하는 단단한 윤곽과 미묘한 여백이 공존하는 디자인으로 보다 정제된 네오브루탈리즘을 제안한 것. 호다코바는 해체와 재조립의 방식을 극대화해 실루엣 자체를 조각처럼 다루며 패브릭의 원초적 질감을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 또 거칠게 가공한 가죽과 매트한 입체 텍스처, 무심하게 찢긴 듯한 레이스 레이어링 등으로 절제된 파격의 미학을 펼친 아크네 스튜디오부터 구조적 패턴과 하드 테크니컬 패브릭, 기하학적 조형미를 정교하게 구축하고 여기에 레드 힐, 포크, 옷걸이 등을 장식해 위트 있는 룩을 완성한 준야 와타나베까지. 이러한 기류 속에서 네오브루탈리즘은 더 이상 단순히 거친 조형미에 국한되지 않고 구조와 실루엣, 질감, 재료의 본질을 보다 유연하고 과감히 드러내며 새로운 럭셔리 코드로 자리 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