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은 지나가도 영화는 남아 시간을 증언한다. 어떤 영화, 그리고 어떤 배우는 그것을 마주하던 순간의 빛과 공기를 선명하게 되돌려놓는다.
이쯤 되니 배우 양조위를 떠올리는 일은 각자의 삶 속에 남은 장면들을 되짚는 일과 닿아 있다.
그것이 시네마의 힘이고, 우리가 그 안의 배우를 사랑하는 이유다. 그 힘은 결코 사라지거나 쉽게 약해지지 않는다.

영화 <침묵의 친구>는 자연의 신비와 질서를 드러내면서도,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을 단순한 위계로 나누지 않는다. 이 공명하는 서사를 통과하며 배우 양조위는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경험했다고 말한다. “꽤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특히 식물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식물을 존중하게 되면서 다른 생명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지구에서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인간이 너무 오만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죠. 종의 멸종이나 기후변화 역시 인간이 충분히 겸손하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는 선택이 다른 생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점을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양조위를 떠올리면 서로 다른 결의 얼굴들이 겹쳐 스쳐간다. 우리가 그를 사랑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1989)에서, 현대사의 참혹 아래 말없이 젖어 있던 얼굴을 마주한 순간부터일까. 혹은 <중경삼림>(1994) 속 제복 차림으로 패스트푸드점에 들어서며 모자를 벗던, 그 말간 고독의 표정을 마주한 때일까. 혹은 영화 <해피 투게더>(1997)에서 숨 쉬듯 떠나고, 매번 다시 돌아오는 연인을 받아들이던 체념과 연민의 그림자를 목도하던 순간이었을 수도 있고, <화양연화>(2000)의 어둠 속에서 더욱 또렷해지던 두 눈을 오래 바라보던 때일지도 모르겠다. 비애와 맑은 빛이 동시에 깃든 얼굴,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한 두 눈과 단단한 입매. 그 절제된 표정 안에서 그는 언제나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남겨왔다.

그가 지난 40여 년간 빚어낸 얼굴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시대를 관통한 홍콩 영화의 영화로운 계보 위에 오르게 된다. 수많은 배우가 그 흐름을 함께 만들어왔지만, 그중에서도 양조위는 ‘가장 홍콩 영화다운 얼굴’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동시에 그 계보 위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는 배우 역시 오직 그뿐이다.

배우 양조위가 그의 첫 유럽 영화 <침묵의 친구> 개봉을 앞두고 서울을 찾았다. 공식 일정으로는 7년 만의 서울 방문이다. 마침 4월의 서울은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늘 한국 관객들의 따뜻한 환호를 받는 건 큰 행복입니다. 이렇게 벚꽃을 보는 것도 기쁘고요.” 그는 크고 작은 기쁨에 대해 몇 번이고 되짚듯 말하다가 덧붙였다. “한국 음식을 먹는 것도 아주 즐겁습니다. 냉면과 보쌈을 좋아해요.” 세상의 풍파, 세파라는 것이 조금도 닿지 않은 듯한, 닳거나 탁해지지 않은 형형한 눈동자와 차분한 어조 때문이었을까. 인터뷰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의 입가와 눈가에 어린 선선한 미소를 마주하고 잠시 아득해졌다.

“처음 은행나무를 마주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캠퍼스에서 그 나무를 찾아내던 순간이요. 문득 그 장면이 떠오르네요.” <침묵의 친구>는 독일의 한 대학교 식물원에 1832년부터 뿌리내린 은행나무로부터 시작된다. 한 세기를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나무는 인간을 바라보며 같은 자리에 서 있다. 1908년 대학 최초의 여학생, 1972년 혁명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청년, 2020년 팬데믹 속에 학교에 홀로 남겨진 신경과학자, 이 세 인물은 은행나무를 둘러싸고 하나의 흐름 안에서 교차한다. 이 작품에서 양조위가 맡은 신경과학자 ‘토니’는 고향 홍콩을 떠나 이곳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지만, 팬데믹으로 휴교한 캠퍼스 안에 홀로 남아 수행하는 수도사처럼 자신의 연구를 이어가는 인물이다.

돌이켜보면 양조위는 영화 속에서 자주 혼자였다. 주고받는 대사보다 눈빛이라는 가장 미세한 창을 통해 서사를 전하는 그의 특별함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이러한 이유로 일디코 에네디(Ildikó Enyedi) 감독은 시나리오를 집필하던 초기부터 그를 염두에 두었다. 만약 그가 제안을 거절하면 각본을 다시 써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나무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라 이전에 접한 작품들과 결이 많이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이 작품을 선택하는 데는 일디코 에네디 감독님의 영향이 컸어요. 그의 이전 작품들을 아주 인상 깊게 봤거든요. 처음에는 시나리오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출연하기로 결정한 건 감독님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분명한 본인만의 생각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침묵의 친구> 속에서 양조위는 언어를 습득하기 이전 아기의 신경 감각을 연구하는 동시에 그 연구를 나무로까지 확장해간다. “처음에는 스스로 신경과학자라고 믿게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초기 인지 발달 관련 서적을 읽기 시작했고, 여러 대학을 찾아 실제 신경과학자들을 만나며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감독님이 전해준 책과 영상 자료도 큰 도움이 됐고요. 아이들의 뇌 발달뿐만 아니라 식물의 지능, 동서양 철학, 인간이 이 세계에서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조금씩 이 분야에 대한 이해를 쌓아가며 인물을 만들어갔습니다. 약 6개월 동안 준비를 이어가며 읽는 책의 양이 점점 늘어났고, 신경과학자들이 사고하는 방식에도 익숙해지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 안에 오래 머물다 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인물에 스며들게 되더군요.”

그는 감정보다 ‘직업’을 먼저 깊이 이해해야 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짚었다. “관련 지식이 없으면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장면이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확신은 결국 눈빛에서 드러나니까요. 인물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스스로 이해하고 있어야 했기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영화는 자연의 신비와 질서를 드러내면서도, 인간과 다른 생명체를 단순한 위계로 나누지 않는다. 이 공명하는 서사를 통과하며 그는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경험했다고 말한다. “꽤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특히 식물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위계, 이를테면 인간이 가장 위에 있고, 식물은 가장 낮은 자리에 있다는 식의 사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는데, 식물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런 서열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식물을 존중하면서 다른 생명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지구에서 다른 생명체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인간이 너무 오만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죠. 특정한 종의 멸종이나 기후변화 역시 인간이 겸손하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는 선택이 다른 생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점을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말과 행동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감정을 전달하는 연기 방식이 때로 버겁지는 않았을까. “아주 어렵지는 않아요. 배우로서 역할을 이해하는 방식은 우리가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경험과 감정, 기억을 바탕으로 하나의 성격, 그러니까 자아를 형성해가잖아요. 그런데 이 자아 역시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각자가 만들어낸 것에 가깝다고 봅니다. 어릴 때는 주변의 말들, 그러니까 친구나 부모가 ‘너는 이런 사람이다’ 라고 규정하는 말들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게 되죠. 이런 축적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 형성됩니다. 이렇듯 ‘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또 다른 역할을 만들어내는 일 역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캐릭터의 배경을 충분히 설정하고, 새로운 습관과 사고방식을 체화해가면 그 인물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결국 자신의 성격을 형성해가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지난 40여 년간 무수한 인물들을 지나온 그에게 ‘화양연화’는 언제라고 느끼는지 물었다. “배우로서 살아가는 삶 자체가 늘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순간이 있지만, 왕가위 감독과 함께 작업한 시간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서 인연이 20년 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고요. 같은 이상을 갖고 같은 방향을 향하는 사람들과 팀을 이룬다는 건 결코 쉽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닐 겁니다. 그래서 이번 영화 역시 제게 특별히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 <침묵의 친구>는 그에게 아름다운 풍경과 사운드, 그리고 또 하나의 각별한 시간으로 남아 있다. 어떤 매체로 접하든 의미는 남겠지만, 스크린을 통해 마주할 때 이 영화는 보다 입체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제게 영화관에 얽힌 기억은 여섯 살 때부터 이어져왔어요. 처음 본 영화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박쥐성의 무도회> 였는데, 그때 제 나이가 여섯 살이었죠. 어머니 쪽 형제자매가 8명 정도 있었는데, 각자 좋아하는 영화 취향이 달랐어요. 그분들이 저를 데리고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보러 다니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영화관은 저에게 놀이공원 같은 곳이었어요. 무엇보다 영화를 보는 일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90분, 1백20분 동안 현실을 떠나 다른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집에서는 영화를 잘 보지 않습니다. 집에 상영 시설이 있어도 굳이 영화관을 찾게 돼요. 여섯 살 때부터 이어진 습관이라 여전히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걸 가장 좋아합니다.”

영화 <침묵의 친구> 개봉에 맞춰 서울을 방문한 일디코 에네디 감독과 양조위 배우

시절은 지나가도 영화는 남아 시간을 증언한다. 어떤 영화, 그리고 어떤 배우는 그것을 마주하던 순간의 빛과 공기를 선명하게 되돌려놓는다. 이쯤 되니 배우 양조위를 떠올리는 일은 각자의 삶 속에 남은 장면들을 되짚는 일과 닿아 있다. 그것이 시네마의 힘이고, 우리가 그 안의 배우를 사랑하는 이유다. 그 힘은 결코 사라지거나 쉽게 약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