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도예가 박종진 작가가 2026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수상했습니다.


현대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공예 시상식으로 꼽히는 ‘로에베 재단 공예상’. 2016년 당시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이 설립한 로에베 재단은 1846년 공예 공방으로 시작한 로에베의 뿌리를 기리며 현대 장인 정신의 탁월함과 예술성을 조명하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단순히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 ‘전통의 혁신’을 핵심 가치로 삼는 이 재단이 매년 수여하는 공예상에는 전 세계 100여 개국 이상에서 수천 명의 작가가 지원하죠. 그 치열한 무대 속에서 2026년의 영예는 시간의 지층을 쌓아올리는 도예가, 한국의 박종진 작가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박종진 작가의 ‘착시의 층위’
박종진 작가가 이번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수상한 작품은 바로 ‘착시의 층위(Strata of Illusion)’입니다. 종이 위에 혼합한 안료로 색을 입힌 도자 슬립을 층층이 손으로 겹쳐 쌓고 압착해 응집시킨 이 작품은, 그 과정을 통해 밀도 높은 직사각형의 덩어리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소성의 과정에서 열과 중력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뒤틀리며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변모하죠. 중심부가 함몰된 최종 형태는 시간이 켜켜이 쌓인 지층 단면 같기도, 끝을 알 수 없는 깊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며 보는 이의 시선을 붙잡습니다. 소성이라는 불가역적인 과정 속에서 피어나는 우연의 조형을 섬세하게 포착해낸 이 작품은 로에베 재단은 물론 세계 각지의 컬렉터와 큐레이터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도예에 대한 독자적인 열정, 박종진 작가의 진심
국민대학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영국 카디프 메트로폴리탄 대학교에서 세라믹 분야 석사를 마친 박종진 작가는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도예과 조교수로 재직하며, 전통과 현대를 결합한 독보적인 조형 세계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서로 다른 두 재료가 만나 빚어내는 물성의 충돌과 융합을 출발점으로 삼아 전통 도예의 문법을 새로운 맥락으로 풀어내는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해왔죠. 이러한 그의 작업 방식은 ‘2024년 여주 경기도자비엔날레 국제 공모전’ 우수상을 비롯해 ‘PAD 런던 아트+디자인’ 전시와 ‘디자인 마이애미’ 등 권위 있는 국제 무대에서 꾸준히 그 가치를 인정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공예를 하나의 독립된 예술 언어로 끌어올린 그의 여정이 마침내 로에베라는 세계 최고 권위의 공예상으로부터 응답을 받았습니다.
공예 강국으로 거듭나는 대한민국
박종진 작가의 수상이 더욱 빛나는 이유는 그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후보 30인에는 박종진 작가를 비롯해 조수현, 이종인, 이소명, 박지은, 성코코까지 무려 6인의 한국 작가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전 세계 133개국에서 접수된 5,100여 점 가운데 선정된 30인이라는 점에서 후보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성취였는데요. 도자, 목공, 섬유, 금속, 유리, 가구 등 분야도 저마다 다른 이들의 작업은 기술적 완성도는 물론 새로운 시도와 예술적 메시지로 심사위원단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는 한국 공예가 세계 무대에서 하나의 뚜렷한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죠. 전통 위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를 탐색하는 한국 공예씬의 저력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기대됩니다.

박종진 작가의 로에베 재단 공예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지금, 한국 공예는 분명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한때 서양의 시선으로 ‘동양의 공예’라는 틀 안에서 소비되던 한국의 도예와 공예가 이제는 그 어떤 수식 없이도 세계 무대에서 독자적인 언어로 읽히고 있는 것이죠. 그 변화의 중심에 선 박종진 작가가 앞으로 어떤 새로운 층위를 쌓아올릴지, 그 모습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