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가면, 시간의 흔적이 묻은 표면이 공간을 채우고, 그 안에는 오래된 감각과 기억이 스며 있다. 폰다치오네 소짜니(Fondazione Sozzani)에 위치한 크리스 루스(Kris Ruhs)의 작업실에서 소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사진가이자 디자이너인 아르치 이프라흐(Artsi Ifrach)는 이 공간을 억지로 길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는 사물을 옮기고 나란히 두거나 밀어붙이며 원래 목적과 다른 방식으로 재료들을 활용한다. 튀어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사물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게 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다. 에디터이자 갤러리스트, 기업가인 카를라 소짜니(Carla Sozzani)는 포즈를 취하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할 뿐이다. 여기서 몸은 단순한 피사체가 아니라 타인과 관계를 맺는 장소가 된다. 초상은 무언가를 꾸며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부딪고 소통하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드러난다. 이 과정을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는 패션 아이콘이자 아티스트 캐스팅 디렉터인 사라 소짜니 마이노(Sara Sozzani Maino)는 세심한 배려로 이 흐름이 느슨해지지 않게, 그러면서도 뻔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게 균형을 잡는다. 그렇게 우리 앞에 하나의 초상이 형태를 갖춘다. 이것은 촬영일 수도, 혹은 퍼포먼스일 수도 있다. 질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도메니코 코스탄티니(DomenicoCostantini, 이하 DC): 창조적 활동이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 문화가 되는 건 언제일까요?

카를라 소짜니(Carla Sozzani, 이하 CS): 진짜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 때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사진을 볼 때 단지 눈앞의 장면을 보는 것을 넘어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이죠. 그때 이미지는 닫힌 결과물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열린 통로가 됩니다. 제게 문화란 바로 그런 거예요.

아르치 이프라흐(Artsi Ifrach, 이하 AI): 저에게 문화는 우리가 느끼는 것, 에너지와 관련이 있어요. 감정과 에너지가 충분히 머물 시간을 주고 인간적인 면이 드러날 때 창작은 훨씬 깊어지죠. 그 순간 작업은 더 이상 소비되는 상품이 아니라 사람의 기억과 생각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됩니다. 누군가 정해놓은 기준이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죠.

사라소짜니 마이노(Sara Sozzani Maino, 이하 SSM): 지나치게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질 때요. 순수하고 자유로운 창의성이 존재할 때 비로소 무언가가 일어납니다. 특히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복잡한 시대일수록 서로를 향한 신뢰와 표현의 자유가 더욱 필요해요.

DC: 이 작업에는 지시받는 대상도, 혼자 만드는 창작자도 없습니다. 오직 서로의 교류만 있죠. 만드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 그리고 보는 사람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CS: 이미지를 만든다는 건 결코 혼자 하는 일이 아니에요. 언제나 둘 이상의 존재가 함께합니다. 그 안에는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며 편안하게 느끼는 마음의 유대가 필요해
요. 그래야만 긴장을 내려놓고 진짜 무언가가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그 과정과 행위 자체를 믿는다면 보는 사람도 그 안에 담긴 즐거움과 가벼움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거예요. 모든 마음은 결국 관객에게 전달되기 마련이니까요.

DC: 예술과 패션의 경계를 나누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CS: 예술은 아주 넓은 개념이에요. 너무나 많은 것을 포함하죠. 자연에도, 동물에도,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모든 시도에도 존재해요. 꼭 회화나 조각만을 뜻하는 건 아니에요. 패션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둘 사이에 뚜렷한 경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이전에 없던 것을 만들려는 창의성 그 자체예요. 문제는 생각하기를 멈출 때 생겨요. 창작이 반복이나 단순한 생산이 되어버릴 때죠. 저는 종종 루이즈 달 울프(LouiseDahl-Wolfe)를 떠올려요. 한 아트 디렉터가 그에게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라고 했을 때, 그는 사진을 그만두며 “세상은 끝났어”라고 말했죠.

DC: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에 속도에 휘말리지 않고, 어떻게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할까요?

AI: 가치 있는 이미지라면 시간의 개념이 느껴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제 촬영한 사진인지 쉽게 알 수 없을 만큼, 역사적 시간이 아니라 감정 안에 머물러야 해요. 10년, 20년 뒤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면, 그때 비로소 진짜 이미지가 되는 거예요. 오늘날은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져요. 우리는 시간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늙어가고 있어요. 너무 빨리 모든 것을 가지려다 보니 모든게 순식간에 사라지는 거예요. 이미지를 만든다는 건 이미 지나간 순간을 붙잡아 오래 살아남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CS: 저는 서두르는 걸 높이 평가하지 않아요. 1976년에 사고를 겪은 후, 시간을 들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도, 혼자 있을 때도, 어떤 결정을 내릴 때도 충분히 머무는 시간이 필요해요. 인생의 한 단계를 마무리하기 전에 잠시 시간을 갖는 것 말이에요.

DC: 가면은 얼굴을 바꿀 뿐만 아니라 우리를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이끌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가면은 어떤 의미일까요?

CS: 가면은 숨기기 위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내가 표현하고 싶은 내 모습 속에서 진짜 나를 발견하는 일이죠. 타인에게 말을 더 잘 건넬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제2의 자아’를 갖는겁니다. 또 다른 형태의 소통 방식이죠.

AI: 사람들은 가면을 쓸 필요가 없어요. 이미 자신도 모르게 쓰고 있으니까요. 제 작업에서 가면은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강조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진실이 무엇인지 다시 보게 만드는 거죠. 가면은 상대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만 보게 함으로써 섣부른 판단을 멈추게 하기도 해요. 결국 가면을 쓰는 것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 중 하나예요. 진짜 내 모습과 세상 속 내 모습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맞춰가는 과정인 거죠.

SSM: 수세기,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가면은 인류 최초의 문화적 장치 중 하나였어요. 전통과 장인정신,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상징했죠. 얼굴을 가리는 도구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드러내는 수단이었어요. 물론 가면의 힘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역사 속에서는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 같은 극단주의 집단이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악행을 저지르는 어두운 방식으로 변질시키기도 했어요. 하지만 가면의 진짜 힘은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숨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정치적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즉, 우리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가시화하는 힘이죠. 오늘날의 가면은 타인과 거리를 두거나 스스로를 보호하고 분리하는 쪽으로 치우쳐 있기도 해요. 하지만 노출과 은폐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가면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단순히 익명 뒤로 숨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라, 우리가 공적인 공간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행동할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드는 비판적인 매개로서 말이죠.

DC: 재단은 과거의 것을 보관만 하는 장소가 아니라, 현재의 목소리를 내는 조직이어야 하죠. 오늘날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도전적인 실험과 대중을 하나로 잇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SSM: 결국 모든 것은 열정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서로 다른 재능과 언어들이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밀고 나갈 용기도 필요하죠. 재단은 누구나 환영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해요. 특히 다음 세대가 서로 문화를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장이 되어야 하고요. 그렇다고 우리가 지켜온 아카이브와 유산의 가
치를 잊어서는 안 되죠. 그 본질적 가치는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DC: 문화라는 건 참 복잡하고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 깊이를 해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I: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작가 스스로 한발 물러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원천이라기보다 하나의 에너지에 가까워요. 중요한 건 작가의 이름값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작업 그 자체여야 하는 거죠.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과 작품의 침묵을 분리해서 관객이 선입견 없이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면, 비로소 작업을 움직이는 진짜 힘이 만들어집니다. 결국 중요한 건 누가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이 남아 우리 마음을 울리느냐 하는 것이니까요. 그것이 예술이 가진 본질적인 힘이죠.

DC: 아름다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게 합니다. 당신에게 아름다움이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행동’인가요, 아니면 ‘위로’인가요? 세상을 바꾸는 ‘힘’인가요, 아니면 숨어들 수 있는 ‘피난처’인가요?

AI: 남들과 똑같아지기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그저 나답게 사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해요. 진짜 아름다움은 남들이 정해준 기준이 아니라 고유성에서 나오거든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아름다움이 시작되는 거죠. 하지만 세상은 자꾸 우리를 하나의 틀에 맞춰 통제하려고 해요. 그러면 겉모습은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알맹이 없는 가면처럼 변해버리고 말죠. 요즘은 땅, 몸, 정체성, 심지어 국가까지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잠시 빌려 썼다가 돌려주는 것뿐이죠. 물건을 사는 것도 그저 반납 기한을 조금 늦추는 일일 뿐이고요. 이런 현상은 패션에서도 나타나요. 우리는 옷에 담긴 의미나 메시지를 읽기보다 그저 돈과 관련된 브랜드 가치만 소비하곤 하죠. 돈은 무언가를 창조하는 본질과는 상관없는데도, 어느새 가장 힘 있는 상징이 되어버렸어요. 저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창작을 시작했어요. 결핍이 저를 발명하게 만들었죠. 창의성은 풍족할 때가 아니라, 절실하게 살아남아야할 때 터져 나오거든요. 돈이 많아질수록 절박한 상상력은 줄어들기 마련이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자유는 성공, 부, 행복 같은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들로부터 나 자신을 해방시키는 거예요.

CS: 저는 아름다움을 단순히 현실의 도피처로 쓰고 싶지 않아요. 진짜 아름다움은 겉을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나 자신과 세상을 깊이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와야 해요. 예쁜 것에만 갇혀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없거든요. 중요한 건 아름다움이 현실의 복잡한 갈등을 못 본 척 덮어버리는 게 아니라, 그 갈등 속에서도 어떻게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거예요. 요즘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지나가버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