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미술계의 시선이 일제히 서울로 향하는 시간, 바야흐로 거대한 아트 페어의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으로 변모하는 이 시기에는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부터 가장 트렌디한 동시대 미술까지 다채로운 전시들이 쏟아져 내리죠.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야심 차게 준비한 기획전을 찬찬히 둘러보는 것 역시 놓칠 수 없는 묘미입니다. 당신의 지적 호기심과 미감을 완벽하게 충족시켜 줄 특별한 전시를 소개할게요.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미디어 작가전 《김희천: 두더지들》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김희천, 〈레몬〉, 2026, 게임엔진(유니티)으로 제작된 자동 재생 게임, 60fps, 4K,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서울시립미술관 제작 지원

 인공지능과 게임 엔진이 직조한 근미래의 미학

서울 최초의 공공 뉴미디어 특화 미술관으로 문을 여는 서서울미술관의 첫 미디어 작가전이자, 한국 동시대 미디어 아트를 대표하는 김희천 작가의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이 진행 중입니다. 이번 전시는 고도화된 기술 환경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감각할 것인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데요. 가장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게임 엔진 유니티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자동 플레이되는 게임 작업과 이 작품 사이를 땅굴로 몰래 오가는 두더지 ‘버터’를 주인공으로 한 신작 비디오 〈레몬〉입니다. 기술에 포획된 환경에서 벗어나려는 염원을 상징하는 두더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아득해지는 짜릿함을 느끼게 됩 테죠. 여기에 생성형 AI로 근미래의 이미지 생태계를 다룬 다채널 영상 〈말린〉과 작가의 시선이 묻어나는 사진 작업 〈.dng〉까지 더해져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디지털적 상상력이 결합된 이 전시에서 기술 너머의 자아를 새롭게 발견해 보세요.

화이트 큐브 서울 《마리나 라인간츠: Míope(편린)》

Marina Rheingantz, Miope, 2026. Courtesy the artist. Photo: Eduardo Ortega
© Marina Rheingantz. Photo © White Cube (Jeon Byung Cheol)

브라질 대자연을 수놓은 몽환적 추상

퐁피두센터, 구겐하임 등 세계 최정상급 미술관들이 사랑한 브라질 출신 작가 마리나 라인간츠의 국내 첫 개인전이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열립니다. 대형 아트 페어 기간에 맞춰 개최되는 이번 전시 《Míope(편린)》은 작가가 지난 1년간 상파울루 스튜디오에서 완성한 따끈따끈한 신작들을 전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자리인데요. ‘근시안’을 뜻하는 전시 제목처럼 작가는 공중에서 내려다본 거시적인 풍경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듯한 미시적인 시점을 캔버스 위에서 자유롭게 오갑니다. 유화부터 수채화, 자수, 태피스트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매체를 활용해 브라질의 광활한 자연 생태계와 기억 속 파편들을 애틋하고 몽환적인 추상으로 빚어냈습니다. 시선의 움직임에 따라 형태가 부서지고 다시 떠오르는 듯한 신비로운 화면 앞에서 마치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유영하는 듯한 황홀한 시각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 마이애미 서울 2026

디자인 마이애미
Stack with integrated soundsystem, STACK by studio MOTO, 2026, Courtesy of STACK by Studio MOTO

세계적인 리더들이 논하는 컬렉터블 디자인의 현재와 미래

단순한 가구를 넘어 예술적 소장 가치를 지닌 컬렉터블 디자인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면 디자인 마이애미 서울 2026을 주목하세요. 디자인 시장과 산업의 거대한 흐름을 이끄는 글로벌 리더와 크리에이터들이 서울에 모여 ‘울림(Resonance)’을 주제로 심도 있는 지적 교류의 장을 엽니다. 이곳은 단순히 아름다운 오브제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디자인이 산업과 예술을 어떻게 매개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지 조망하는 자리인데요. 세계 주요 도시를 대표하는 6개의 갤러리가 동시대 컬렉터블 디자인의 정수를 선보이며, 삼성전자, 알로소 등 굴지의 브랜드들이 참여하는 파트너 프로그램도 눈길을 끕니다. 특히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전체로 시야를 넓혀 오랜 전통 미학과 최첨단 기술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동시대 디자인을 소개하는 ‘인 시추(In Situ)’ 프로그램은 디자인 애호가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하이라이트죠.

아트선재센터 《김무영 & 함양아》

김무영, 〈하늘빛II〉, 2026,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파스텔 채색, 19세기 프랑스 프레임, 액자 크기 가변. 작가 제공
함양아, 〈듣는 화자, 말하는 타자〉, 2026, 다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각 5–15분. 사진 남서원. 아트선재센터 제공

숨겨진 무대의 이면과 16년 만에 마주하는 현대 사회의 거대한 파노라마

아트선재센터는 공간의 성격을 완전히 뒤바꾼 묵직하고 파격적인 두 개의 개인전으로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먼저 지하 1층 아트홀에서 열리는 김무영의 미술관 첫 개인전 《Pig》는 실제 극장 공간 자체를 거대한 전시장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전시 제목 피그(Pig)는 무대 장치를 지탱하는 숨겨진 무게 추를 뜻하는 현장 용어로 환영을 만들어내지만 정작 관객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연극적 장치와 물질적 조건을 집요하게 파헤칩니다. 한편, 2010년 이후 무려 16년 만에 아트선재센터로 돌아온 함양아 작가의 개인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역시 놓칠 수 없습니다. 지난 8년간 전개해 온 장기 예술 연구 프로젝트의 완결판 격으로 신작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4.0〉 등을 통해 거대한 정치, 경제, 환경 구조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개인과 공동체의 서사를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조명합니다. 무대의 이면과 사회의 단면을 관통하는 짙은 사유의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