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티에르 페칼은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소외된 이들을 조명하는 2027 S/S 컬렉션을 공개했습니다.
- 이번 쇼는 펑크와 메탈 문화의 저항적인 분위기를 지나 날카로운 테일러링과 얇은 튤, 과장된 실루엣으로 이어졌습니다.
- 정교한 꾸뛰르 의상에 부유층 풍자와 기묘한 분장을 더해 아름다움과 불편함의 공존을 보여주었습니다.
파리를 사로잡은 마티에르 페칼의 불편한 아름다움.
파리 한복판으로 나온 아웃사이더들
지난 9월 28일(현지 시간), 파리 패션위크 첫날의 마지막 쇼를 장식한 마티에르 페칼(Matières Fécales)은 관객들을 파리 중심부의 레퓌블리크 광장(Place de la République)으로 불러냈습니다. 집회와 행진이 자주 열리는 이곳에서 파리 패션위크 공식 쇼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디자이너 한나 로즈 돌턴(Hannah Rose Dalton)과 스티븐 라지 바스카란(Steven Raj Bhaskaran)은 이 넓은 광장을 런웨이로 바꾸고 가족과 친구, 오랜 파트너들을 포함한 99명의 유색인종 모델들을 세웠습니다. 지난 2026 F/W 시즌 부와 권력을 풍자한 ‘더 원 퍼센트(The One Percent)’가 사회의 가장 위쪽을 바라봤다면, 이번 2027 S/S 컬렉션 ‘더 나인티 나인 퍼센트(The Ninety Nine Percent)’에서는 시선을 이민자와 아웃사이더로 돌렸습니다.







가족과의 기억으로 출발한 첫 번째 막
이번 쇼는 ‘FAMILY’, ‘TRIBE’, ‘GODS’라는 세 개의 챕터를 따라 흘러갔습니다. 그 시작인 ‘FAMILY’에서 바스카란이 꺼내 든 것은 가족과 어린 시절의 풍경.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자란 그는 힌두교, 기독교, 모르몬교, 이슬람 문화가 교차하는 일상 속에서 접한 옷과 종교적 상징을 이번 컬렉션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임신한 몸의 곡선을 과감하게 드러낸 드레스부터 아기를 품에 안은 모습까지 가장 ‘가족’적인 장면들이 이어졌죠.
눈이 시릴만큼 새하얀 룩들로 문을 연 런웨이는 짙은 블랙을 거쳐 한층 다채로운 빛을 끌어안았습니다. 풍성하게 부푼 스커트 위로 얇은 튤 블레이저가 겹쳐지며 관능적이고 유연한 실루엣을 보여주는가 하면, 바닥을 스칠 만큼 긴 코트와 의도적으로 균형을 흐트러뜨린 수트에는 마티에르 페칼 특유의 초현실적인 위트가 드러났죠. 발끝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과 손잡고 만든 플립플롭에 매끈하게 휘어진 힐을 붙여 기묘하고 우아한 오브제로 재탄생시켰으니까요.
익숙한 규칙을 비트는 바스카란의 태도는 얼굴 전체를 천으로 감싼 룩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여성에게 흔히 요구되어 온 ‘베일’을 도리어 남성에게 씌우며 강한 남성성을 요구하는 문화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던졌거든요. 첫 번째 챕터의 마무리는 바스카란이 직접 어머니, 여동생, 조카와 함께 장식하며 또 하나의 상징적인 장면을 그려냈습니다.





저항의 목소리가 모인 두 번째 막
첫 번째 챕터 ‘FAMILY’가 바스카란의 가장 사적인 기억을 꺼내 보였다면 두 번째 챕터 ‘TRIBE’에서는 광장과 거리, 공동체로 나아갔습니다. 몬트리올을 떠난 뒤 새롭게 접한 펑크와 메탈 문화가 컬렉션 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었죠. 번쩍이는 스트로브 조명과 짙은 드라이아이스 사이로 등장한 모델들은 시위 행렬을 이루듯 거침 없이 광장을 가로질렀습니다. 해진 니트와 낡은 가죽 케이프, 밀리터리의 긴장감을 머금은 튤과 트위드가 뒤섞이며 거칠고 불온한 기운이 감돌았고요. 여기에 얼굴에 뿔처럼 돋아난 날카로운 스파이크와 선명한 레드 네일, 과장된 실루엣이 더해지며 비현실적이고 낯선 존재감을 드러냈죠.
스티븐 라지 바스카란은 이 파트를 ‘프로테스트 섹션(Protest Section)’, 즉 ‘저항의 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도발적인 실루엣은 챕터의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과감해졌는데요. ‘RESIST(저항)’가 커다랗게 새겨진 프랑스 삼색기로 얼굴을 감싼 룩부터 화이트, 블루, 레드 드레이프 드레스를 입고 걸어 나온 세 명의 모델까지. 마티에르 페칼은 공동체의 권리가 위협받을 때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만들어내는 저항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름다움과 불편함이 공존한 세 번째 막
세 번째 막 ‘GODS’에 이르자 옷은 한층 극적인 형태로 변했습니다. 날카롭게 뻗은 테일러링과 몸의 윤곽이 드러나는 얇은 튤로 부드러움과 위압감을 동시에 만들어냈죠. 코트와 데님, 시어 드레스처럼 익숙한 옷들도 과장된 비율과 비틀린 드레이핑을 만나 낯선 모습으로 바뀌었고요. 여기에 피부를 뚫고 가시가 돋아난 듯한 특수 분장과 얼굴을 새하얗게 덮어 기묘함을 더한 메이크업도 시선을 사로잡았는데요. 마티에르 페칼은 익숙한 얼굴의 형태를 낯설고 섬뜩하게 바꿔놓으며 줄곧 질문해 온 미의 기준을 다시 살폈습니다. 데뷔 때부터 플러스 사이즈와 트랜스 모델, 친구와 가족 등 패션위크의 전형적인 캐스팅에서 벗어난 인물들을 꾸준히 런웨이에 세워온 태도 역시 그 연장선에 있고요.
마지막 챕터는 ‘신들’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리는 강렬한 피날레로 향했습니다. 금빛 드레스와 새하얀 수트 위로 검은 수트를 입은 피규어가 힘없이 늘어졌고, 모델들은 이를 어깨에 짊어진 채 레퓌블리크 동상 주변을 돌았죠. 지난 시즌 권력의 주체였던 ‘1%’의 부유층을 수동적인 존재로 바꿔 익숙한 위계에 재치 있는 균열을 낸 셈입니다. 화려하고 정교한 꾸뛰르 위에 부유층을 향한 풍자를 겹쳐 놓으며 아름다움과 불편함의 공존을 이야기한 마티에르 페칼. 이번에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답지만 그 속에 숨은 위화감로 익숙한 기준을 다시 묻게 만들었는데요. 이보다 더 마티에르 페칼다운 피날레가 또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