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에 가치를 낮게 보았던 토파즈가 사람의 손길을 거쳐 다채로운 푸른빛을 내는 과정에 깊은 의미를 느끼며 큼직한 블루 토파즈 링의 매력에 새롭게 매료되었습니다.
- 포멜라토, 프레드, 불가리, 제이콥앤코의 블루 토파즈 반지를 통해 고정관념을 깨고 개성 있는 디자인과 푸른빛의 스톤이 전달하는 다채로운 미학적 가치를 경험했습니다.
- 주변 사람들과의 인연을 통해 비로소 온전히 빛나게 되는 삶의 이치를 블루 토파즈에 비유하며 남편과 자신의 탄생석을 활용한 주얼리에 대한 새로운 애정을 고백합니다.
달라진 취향, 새롭게 발견한 토파즈

저는 결혼하기 전부터 저와 남편의 탄생석을 하나씩 세팅한 투아 에 무아(Toi et Moi) 반지를 갖는 것이 작은 로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탄생석인 진주는 어머니 세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다소 올드하게 느껴졌고, 남편의 탄생석인 토파즈는 당시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4대 보석 외에는 그 가치를 잘 알지 못했던 제게 그다지 귀한 보석으로 느껴지지 않았죠. 그 두 탄생석이 저에게 잘 어울리는가는 다음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결국 다른 의미를 담아 다이아몬드와 루비로 투아 에 무아 반지를 만들었지만, 원래 꿈꿨던 탄생석 반지에 대한 아쉬움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흔을 넘기면서 취향이라는 게 참 많이 달라지더군요. 진주는 어느새 제가 무척 좋아하는 보석이 되었고, 이제는 토파즈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한때는 커다랗고 비교적 저렴한 보석 정도로만 생각했던 토파즈에 황금빛 오렌지부터 분홍색, 붉은색, 초록색, 보라색까지 다양한 컬러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희귀한 임페리얼 토파즈(Imperial Topaz)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 마음을 움직인 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블루 토파즈였습니다.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블루 토파즈는 처음부터 푸른색이었던 보석이 아닙니다. 천연 무색 토파즈에 방사선을 조사하고 열처리를 거쳐 푸른빛을 만들어내곤 하죠. 이렇게 가공된 블루 토파즈는 맑고 연한 스카이 블루(Sky Blue), 선명하고 경쾌한 스위스 블루(Swiss Blue), 짙고 차분한 런던 블루(London Blue) 등 각각의 색을 구분하는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토파즈의 매력은 바로 이런 점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의 원석에 사람의 기술과 손길이 더해지면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물론 보석의 희소성과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빛을 찾아가는 과정에도 충분한 의미가 있습니다. 비록 그 과정이 보석의 경제적 가치를 높여주지 않더라도 말이죠. 내 눈에 예쁘면 한참을 들여다보고, 마음에 들면 찾아다니고, 그래서 여건이 된다면 하나쯤 소장하는 것. 그렇게 즐기는 것도 나를 위한 주얼리를 찾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요즘 그런 저의 눈길을 강하게 사로잡는 건 블루 토파즈가 대범하게 세팅된 반지들입니다. 사파이어나 아쿠아마린과는 또 다른 쨍하고 시원한 푸른빛이 손가락 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블루 토파즈 말이죠. 예전에는 그 커다란 크기 때문에 오히려 토파즈를 가볍게 봤는데, 이제는 그 점 때문에 토파즈가 아름다워 보이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제 오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있는 네 가지 블루 토파즈 링을 만나볼까요?
레이어링할수록 더욱 빛나는 포멜라토 누도 링


남편의 탄생석인 만큼, 블루 토파즈 반지를 고를 때는 함께 착용할 수 있는 디자인에 더 눈길이 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포멜라토의 누도(Nudo) 컬렉션입니다. 장방형의 스톤을 입체적인 패싯으로 다듬어 마치 손가락 위에 보석만 가볍게 얹힌 듯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빛이 닿는 각도에 따라 스톤 표면에서 빛이 잘게 부서지는데, 매장에서 직접 착용해 보니 사진으로 볼 때보다 훨씬 눈부셨죠.
투아 에 무아 스타일의 누도 링도 있지만, 제 마음을 흔든 건 크기가 다른 블루 토파즈 링 두 개입니다. 큰 런던 블루 토파즈와 작은 스위스 블루 토파즈를 같은 호수로 구입하면 남편은 새끼손가락에, 저는 중지에 하나씩 끼고 다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그의 평소 스타일을 생각하면 이런 반지를 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이 제가 두 개를 레이어드해서 끼면 되는 거죠.
슈가로프 컷의 대담한 볼륨, 프레드 빵 드 쉬크르 링


프레드의 빵 드 쉬크르(Pain de Sucre)는 조금 더 당당한 인상을 가진 반지입니다. 프랑스어로 ‘설탕 덩어리’를 뜻하는 이름처럼, 매끈하게 솟아오른 슈가로프 컷의 블루 토파즈가 반지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죠. 각면으로 빛을 잘게 쪼개는 누도 링과는 달리, 부드러운 곡면을 따라 푸른빛이 넓게 번지는 모습이 매력적입니다. 특히 두툼한 밴드와 큼직한 스톤이 어우러진 시그넷 링 스타일은 남성이 착용해도 충분히 멋있을 것 같았습니다.
스위스 블루 토파즈 빵 드 쉬크르 링을 한 번 껴본 적이 있는데 저 멀리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선명한 푸른빛의 존재감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청량하고 경쾌한 스위스 블루도, 깊고 차분한 런던 블루도 저마다 매력이 뚜렷해서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하기 어렵네요.
유려한 곡선이 감싸 안은 푸른빛, 불가리 카보숑 링


불가리의 카보숑(Cabochon) 링을 보면 불가리에는 비제로원과 세르펜티만 있는 게 아니라고 외치고 싶어집니다. 풍성한 볼륨의 옐로 골드 밴드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스톤을 감싸고, 그 위로 맑은 블루 토파즈 카보숑이 봉긋하게 솟아오른 관능적인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거든요. 링의 바디와 스톤이 따로 구분된 느낌 없이 하나의 유려한 형태로 이어지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그 사이를 따라 흐르는 다이아몬드 라인은 풍성한 골드의 볼륨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요.
스위스 블루 토파즈를 시트린과 투아 에 무아처럼 위아래로 세팅한 디자인도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푸른빛과 노란빛이 나란히 놓인 모습이 얼마나 싱그러운지, 보고만 있어도 한여름 풀사이드 바에서 시원한 칵테일 한 잔을 단숨에 비운 기분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아직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는데 벌써 기분이 좋아지는 반지입니다.
토파즈에 새긴 나비의 날갯짓, 제이콥앤코 빠삐용 링


마지막은 제이콥앤코의 빠삐용(Papillon) 링입니다. 평소라면 선명한 스위스 블루 토파즈에 먼저 눈길이 가겠지만, 이 반지만큼은 맑은 스카이 블루여야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비의 날개를 표현한 토파즈는 반짝이는 패싯 대신 표면을 매끄럽게 살리고, 날갯살을 따라 섬세하게 음각을 넣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움직임을 담아냈거든요. 자칫 단단하고 무거워 보일 수 있는 보석으로 나비의 가벼운 몸짓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감탄을 자아냈죠.
중앙의 핑크 사파이어와 스카이 블루 토파즈가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컬러의 조화도 아름답습니다. 봄날의 연분홍 꽃잎 사이에 잠시 내려앉은 나비처럼 화사하지만 요란하지 않고, 사랑스럽지만 마냥 귀엽지만은 않은 모습이 돋보입니다. 토파즈의 색이 조금만 더 짙었어도 이런 분위기는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늘 스위스 블루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반지를 보니 역시 보석은 컬러의 이름만 듣고 고를 일이 아닌가 봅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빛
네 가지 반지를 살펴보고 나니, 토파즈를 그저 ‘큼직한 파란 보석’이라고만 생각했던 지난날이 달리 느껴집니다. 누군가의 손에서 색을 얻고, 또 다른 누군가의 손에서 깎이고 다듬어져 마침내 자신만의 푸른빛을 내는 보석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생각하니, 아름다움이라는 게 꼭 처음 주어진 모습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요.
마흔을 넘기고 나니 사람도 이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릴 때는 혼자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제법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는데, 사회생활이 길어지고 가정이 생기면서 이제는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깨닫습니다. 회사에서는 나를 이끌어주는 선배와 제 몫을 다해주는 후배가, 가정에서는 서로의 자리를 지키며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 있기에 비로소 저도 온전히 빛날 수 있다는 것을요. 흔하다고 생각했던 토파즈가 여러 사람의 손길을 거쳐 자신만의 아름다운 푸른빛을 찾아가듯, 지금의 제 모습에도 참 많은 사람의 손길과 마음이 더해져 있었습니다. 앞으로 또 누구와 함께 어떤 빛을 만들어갈지도 내심 기대가 되고요.
그러고 보니 이제 남편과 제 탄생석으로 투아 에 무아 반지를 만들어도 되겠습니다. 진주도 좋아졌고, 토파즈도 이렇게 예뻐 보이기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결혼 전에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뭐 어떻습니까. 반지는 이미 하나 만들었지만, 하나 더 만들 이유가 생긴 건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