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발전에 발맞추어 화장품은 필연적으로 성장했다.

그 중심에는 맥스 팩터가 있었고,
그는 필름의 유형이 바뀔 때마다
그에 맞는 메이크업 제품을 선보였다.

새로운 색을 구현하기 위해 매일같이 실험했고
그 결과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 맥스 팩터의 초창기 비즈니스 매니저 두니 캐시언(Duny Cashion)

 

 

극장가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요즘, 영화를 볼 때 특히 집중해서 보게 되는 몇 가지가 있다. 배우들의 연기력과 황홀한 영상미, 미장센 등 영화 안의 큰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화의 설득력과 몰입도를 높이는 요소도 분명 존재한다. 영화 캐릭터에 꼭 맞는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이 그것이다. 캐릭터에 대한 고도의 분석과 고증을 거쳐 영화적 그림의 디테일을 살리는 이 작업은 매우 자연스러워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영화 산업에서 이런 부분을 논하는 것이 지극히 사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듯 크게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둘이지만, 의외로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며 친밀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영화와 뷰티의 만남은 영화가 탄생하던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배우들의 무대가 연극에서 영화로 넘어오던 1910년대, 초기 영화 제작자들은 색의 범위와 감도가 제한적인 필름을 사용했다. 이것은붉은 색소 침착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흰 피부를 까맣게 보이게 할 뿐 아니라, 붉은색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관계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빨간 립스틱과 검정 아이라이너를 더욱 짙게 발라 색상대비를 꾀했지만, 강렬한 조명 아래서 땀을 흘려 화장이 번지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문제는 이뿐 아니었다. 당시에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없었기 때문에 배우가 직접 화장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 화장은 영화 속 장면의 분위기와 잘 맞지 않았다. 클로즈업 기법이 보편화되면서 이 문제는 더욱 두드러졌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맥스 팩터(Max Factor)와 조지 웨스트모어(George Westmore)다. 맥스 팩터는 코스메틱 브랜드로도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사실 영화용 화장품을 최초로 개발하고, ‘메이크업’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뷰티업계의 전설적 존재다. 그는 영화 속 인물에적합한 화장품을 찾기 위해 여러 실험을 거쳐 발랐을 때 피부가 편안하면서 필름으로 촬영해 재생해도 화장이 들떠 보이지 않는 크림을 개발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 우리가 바르는 파운데이션의 근간이 된 크림 형태의 그리스페인트 (greasepaint)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조지 웨스트모어는 영화 분장 전담 부서를 최초로 설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머리 끈이 달린 가발을 만들어 착용하기 편하고, 배우의 헤어스타일이 보다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했다. 필름에 담겨 재생하는 인물에 적합한 형태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헤어와 메이크업의 기술적 부분이 함께 발전한 것이다. 영화의 기술적 부분과 화장품의 기술력이 함께 성장했다면, 영화의 히로인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뷰티 룩을
유행시키는 데 일조했다. 일종의 플랫폼 역할을 한 것인데, 1910~1920년대에는 무성영화 <뱀프> 속 테다 바라의 가는 일자 눈썹과 눈가의 음영이 짙은 메이크업이 큰 인기를 끌었고, 이를 위한 메이크업 강좌까지 생길 정도였다. 이 당시는 화장품의 선택지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산 합성염료를 활용하는 것이 전부였다. 비슷한 시기에 ‘베티 붑’ 캐릭터의 모티프가 된 영화배우 클라라 보의 하트 입술은 (앞서 언급한 맥스 팩터의 작품이다) 그녀의 아이코닉한 플래퍼 룩과 맞물려 사교계 여성들 사이에서 트렌드가 되기도 했다. 경기 침체라는 어두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한탕주의가 확산되던 1930년대는 가상의 영화 속 인물들에 대한 환상이 절정으로 치달았다. 보다 과장되고 대담한 터치를 시도한 배우들이 등장했는데, 대표적으로 조안 크로퍼드와 진 할로가 있다. 립라인을 매우 정교하게 그리고, 얼굴에 입체감을 주기 위해 어두운 컬러와 하이라이터를 조합하는 셰이딩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때이기도 하다. 이후 흑백영화에서 컬러 영화로 넘어오면서 마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 등 상징적인 뷰티 아이콘이 등장했다. 영화 속 대중 스타의 영향으로 화장품의 대량생산이 합법화되었으며 미용 클리닉과 성형수술 또한 성행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속 오드리 헵번

 

이렇듯 오랜 흐름을 면밀하게 펼쳐놓고 돌아보니, 뷰티와 영화의 만남이 필연적으로 느껴진다. 어떤 분야든 발전은 필요에 의해 이뤄지고 점점 가지를 치며 번성한다. 영화의 탄생으로 기술적 부분에 의한 뷰티의 기술력이 필연적이었다면, 그 이후의 흐름은 매우 사적인 형태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동안 미디어 중심의 역사에서 영화와 뷰티는 함께 성장했고, 어떤 형태를 띠든, 표면적으로 드러나든 그렇지 않든, 앞으로도 둘의 관계를 기대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