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의 인플루언서이자 모델인 헤일리 비버의 틱톡 영상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영상 전유 사이의 내용 자체는 브라운 립 펜슬로 입술 가장자리를 따라 선을 그린 뒤, 안쪽에는 립글로스만 바르는 단순한 옹브레 립 튜토리얼이었다. 본인이 론칭한 뷰티 브랜드 ‘로드(Rohde)’ 제품 홍보 목적의 영상이었는데, 뜻하지 않은 블랙피싱(Blackfishing) 논란에 휩싸였다. 가장자리 색이 짙은 흑인의 입술을 흉내 낸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문화 전유 논란을 일으킨 사건은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드레드 헤어를 하고 공식 석상에 등장한 킴 카다시안과 지나치게 밝은 색상의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쌍꺼풀 라인을 가리는 아이 메이크업을 한 아리아나 그란데가 각각 블랙피싱과 아시안피싱(Asianfishing)이라는 의심을 받으며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문화 전유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한 문화 집단이 다른 문화 집단의 전통문화를 자신들의 것인 양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여러 사례 중 특히 흑인 문화 전유가 논란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외모의 차이로 그들이 받아온 불합리한 차별과 아픔을 깊이 이해하지 않고, 그 특징만을 유행처럼 소비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사회의 일부 일터에서는 아프로 헤어, 브레이드 헤어 등 흑인이 악성 곱슬머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연출한 헤어스타일을 프로답지 못하다고 지적하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 BBC와 인터뷰한 뉴욕의 간호사 다라 터몬드는 단호하게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흑인 여성은 본인의 머리 스타일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가발을 쓰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이런 헤어스타일을 따라 하는 것은 우리의 기회를 뺏는 것이나 다름없죠.” 한편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이제오마 올루오(Ijeoma Oluo)는 본인의 책 <인종 토크>에서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우리의 부푼 머리카락이 그저 죽은 케라틴 덩어리라 해도, 백인 우월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머리와 몸이 비난받고 통제당하는 한 그것은 단순한 머리카락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흑인들이 머리 스타일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저 스타일과 취향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뉴욕에서 비주얼 디렉터로 활동하는 조엘 킴벡(JoelKimbeck)은 이 문제가 일부 SNS상에서만 국한되는 이슈라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사회에서는 인종 문제가 매우 중요한 이슈예요. 당연히 민감할 수밖에 없지만, 촬영할 때 그런 스타일을 연출하는 경우에도 동경이나 비하의 의도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 문제시된 적은 없는 만큼 반응이 크게 민감하지 않은 편이에요. 저뿐 아니라 케이트 모스의 스타일리스트와 어딕션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카나코 등 함께 일한 스태프들도 생각이 같더라고요.” 그가 본인의 경험담을 전하며 짚어준 미국 내 상황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는 또 다른 입장이다. 뜨겁게 논란이 되는 인종 피싱, 그리고 문화 전유. 각자의 입장이 분명한 만큼 이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하나의 의견으로 결론짓기에는 아직 사례가 그다지 많지 않고, 또 조심스럽다. 취향으로 치부하기에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고,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가기에는 극단적인 것이 문제. 정해진 정답은 없지만 계속되는 논란과 혐오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친밀감을 바탕으로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