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2일에 싱글 앨범 <Right Now> 를 발매했어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나요? 여름을 컨셉트로 듣기 편한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요즘 쇼트폼 콘텐츠에 맞춰 나온 곡이 많잖아요. 가끔은 짧고 굵게 치고 들어오는 음악이 자극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오래 들어도 귀가 아프지 않은 곡을 만들고 싶었어요. 칠(chill)하고 싶었달까요.(웃음)
꽤 오래전에 만들어둔 음악이라고 들었어요. 지난해 7월에 만든 곡이에요. 지난 4월에 발매한 EP 에 넣으려고 했는데, 그 앨범의 분위기보다는 연하고 덜 자극적인 느낌이라 같이 내지 않았어요. 또 이 곡은 반드시 크러쉬 형이 피처링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당시에 형이 전국 투어 때문에 바빠서 같이 작업하기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때마침 새 앨범을 듣고 좋다며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이때다 싶어서 피처링을 부탁했죠. 뮤직비디오에도 같이 출연했고요. 늦여름에라도 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한 인터뷰에서 가장 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로 크러쉬를 꼽았어요. 한 곡을 듣거나 부를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겠냐는 질문에도 그의 노래를 골랐고요. 크러쉬 형의 음악이 제 대학 생활, 20대 초반을 책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우상 중 한 명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고요. 앨범이 나오기 전 공연에서 부른 미공개 곡을 모두 마스터하고 있을 정도 였으니까요. ‘눈이 마주친 순간’ 같은 곡은 발매가 되기도 전에 다 외우고 있었죠.(웃음) 2019년부터 같이 작업할 수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함께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하죠.
협업 과정은 어땠어요? 형이 작업실에 초대해주셨어요. 곡 이야기를 하기 전에 도움이 되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음악을 만들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길 바란다는 제 말에 진심으로 조언해주시기도 했고요. 그러고 나서 노래를 들려드렸는데 “좋다. 바로 하자” 하셨죠. 그렇게 작업을 시작했어요. 즉석에서 형이 ‘워어어’라고 허밍을 했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게 그대로 음원에 들어갔고요. 작업하고 나선 바로 축구 하러 갔어요. 저희가 같은 축구 팀 소속이거든요.(웃음)
함께 작업하며 인상 깊었던 점도 있어요? 소스 자체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크러쉬의 목소리가 들어가면 노래가 업그레이드되는 것 같아요. 그저 놀라웠어요. 이게 경험치인가? 나도 어서 커야겠다 싶었죠.
두 사람의 목소리를 어우러지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크러쉬 형 부분은 화음이나 더블링이 많아 화려한 편이라 저는 오히려 담백하게 덜어내려고 했어요. 형 부분을 듣다가 제 부분을 들으면 성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게 제가 원했던 거예요. 대비되어 더 흥미롭게 들리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쉽게 꽂힐 만한 한 줄, 그 뒤에 가볍게 따라 할 수 있는 한 줄로 노래를 구성하는 게 제 스타일 이기도 하고요.
그간 다양한 협업을 해왔죠. 누군가와 함께 작업할 때 지키는 신념이나 태도도 있나요? 원하던 사람과 협업하지 못하면 대신할 사람을 찾아 노래를 만들기보다는 그냥 내지 않는 편이에요. 혼자서 채울 때도 있긴 한데 쉽지 않더라고요. 오리지널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봐요. 그렇게 했을 때 스스로 만족할지도 모르겠고요. 누군가를 떠올리며 만들거나, 만드는 중에 생각난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그분과 함께 하려고 해요.
음악을 만들 때 더 섬세해지는 편이에요? 곡 작업 중에 신경 쓰이는 지점이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해야 해요. 믹싱할 때도 최소 예닐곱 번은 수정하는 것 같아요. 이번에도 일곱 번이나 고쳤고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쿠기의 음악을 깔끔하다고 말하는 걸까요? 사운드 측면도 물론 있겠지만, 노래를 만들 때 이 곡이 공연에서 청중에게 어떻게 가닿을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크게 작용하는 듯해요. 사실 화려한 랩 스킬을 써서 청중이 따라 하지 못할 정도로 어렵게 가사를 쓸 수도 있어요. 그것도 물론 멋있지만 제 취향은 아니에요. 노래를 들으면서 함께 리듬을 타고 춤출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공연장에서 청중과 함께 즐길 수 있을 때 그 의미가 커진다고 보고요.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노래를 들었을 때 다음 부분이 예상돼야 더 즐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최소한 두 구절은 같은 흐름이 반복되도록 구성해요. 누군가는 이전과 비슷하고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된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이게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인 걸요.
공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뭐예요? 앞 순서보다는 잘해야지. 그리고 다음 순서가 되기 전에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어야지.(웃음) 실수하지 않는 건 기본이고요. 나만 신나면 안 된다고 계속 되뇌어요. 다 같이 재미있게, 하다못해 한 명이라도 따라 부를 수 있게 만들자고요. 무대 위에서 보면 청중과 저의 기운이 엉키고 부딪히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청중이 많을 때 그 압도감에 지지 말자고 되뇌죠.
음악을 만들고 난 후 자신의 음악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 편이에요? 노래를 만든 직후에는 그저 신나요. ‘이거 히트다! 멋있다!’ 이러면서요.(웃음) 이렇게 방방 떠 있다가 믹싱과 마스터링을 하는 마무리 단계가 되면 겸손해져요. ‘차트에 안 들어가도 오래도록 사랑받으면 되지’라고 점점 기대치를 낮춰요.
기대하면 실망할까 봐요? 네. 그래야 다치지 않더라고요. 감정의 낙폭이 덜하다고 할까요.
웃음이 많고 유쾌한 캐릭터로 알려졌지만, 걱정이나 징크스도 많다고 말해왔어요.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아주 소심하고 예민해요. 카톡 하나도 신중하게 보내는 편이에요.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일단 전화 가능하냐고 문자메시지를 남긴 뒤 다시 연락할 정도로요. 말실수한 것 같으면 하루 종일 신경 쓰고 잠도 못 자요. 노래가 나오기 전날 밤은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죠. 사실 촬영 때문에 어제도 제대로 못 잤어요.(웃음)
그럼 가장 나답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예요? 연애할 때 제일 나다운 것 같아요. 싸울 때 지질해지는 모습이요.(웃음) 누구나 가족이랑 있을 때, 친구들이랑 있을 때 모두 다르잖아요. 정말 가까운 사람이랑 있으면 본연의 성격이 나오는 것 같아요. 더 솔직해진달까요.
이번에 발매한 곡도 사랑 노래잖아요. 사랑과 관련된 음악을 만들 때 더 신경 쓰는 것도 있어요? 현실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가사를 쓰려 하는 편이에요. 제가 지금까지 쓴 가사가 모두 실화는 아니지만 30~40%는 실제로 겪은 일을 바탕으로 한 거예요. 군대 문제로 헤어진 일이나 대학생 때 미팅 나갔던 이야기도 썼어요. 꾸밈없고 솔직하게 가사를 쓰면 더 직관적으로 와닿고 위트 있게 나오더라고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네가 차 필요하면 내가 사줄 수 있어. 대신 다 할부로 해야 해’.(웃음)
가사를 쓰면서 어떤 고민을 해요? 저도 나이가 들잖아요. 시간이 지나니 예전과 지금의 감성이 다르더라고요. 어릴 땐 아주 지질하게 가사를 써도 괜찮았어요. 20대 중반이니까 나름대로 귀엽게 봐줬죠. 그런데 이젠 이렇게 써도 되나 싶어요. 새로운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생각하고 있죠. 그런데 사실 저는 변한 게 없거든요.(웃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쿠기의 음악에도 달라지는 면이 있겠죠? 맞아요. 무조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언제나 아이 같고 젊은 모습만 고수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와 반대로 음악 안에서 변하지 않았으면 싶은 것도 있나요? 꾸준히 음악을 내는 것. 그 성실함은 잃지 않고 싶어요. 공백기가 6개월은 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앨범 단위로 활동을 계속하고 싶고요. 싱글 앨범을 내거나 음원 차트에 오르는 것도 좋지만, 아티스트라면 앨범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꾸준한 행보를 보여줄 게 아니면 음악을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년에는 어떻게든 2집을 내려고요.
음악을 시작한 지 어느덧 5년이 지났어요. 이 시점에서 그간의 행보를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열심히 살았다.(웃음) 며칠 전에 제가 낸 앨범을 쭉 들어봤어요. 이런 가사를 어떻게 썼지, 이렇게 긴 앨범을 어떻게 만들었지 싶기도 했어요. 그래도 매년 앨범을 냈으니, 꾸준하고 부지런하게 음악을 해왔네 싶죠.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에요? 감사한 것이 참 많아요. 공연할 수 있고, 다양한 매체에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고, 이렇게 화보도 찍을 수 있잖아요.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건 음악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도 재미있고 즐거운 일을 많이 하기 위해서 꾸준히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저는 게임도 안 하고, 술도 안 먹고, 밤에 매일 놀러 다니지도 않아요. ‘뭐 할까, 뭐 하지, 할 게 없네’ 하다 보면 결국 음악을 하고 있더라고요. 노래를 만든 뒤 만족스러울 때 느껴지는 쾌감도 좋고요. 발매되기 전 혼자 음악을 들을 때 느껴지는 이유 모를 즐거움도 여전해요. 앞으로도 이렇게 음악을 하지 않을까요? 그저 꾸준히 재미있게요.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것도 있어요? 힙합 신 안에서 살펴보면 요즘처럼 장르가 다양한 적이 없었던 듯해요. 트랩이라는 장르가 나왔을 때는 다들 트랩만 했던 것 같은데, 지난 해에는 유독 레이지, 저지 클럽, 드릴 등 더 다양한 하위 장르의 작업물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새로운 걸 찾기보다 저만의 스타일을 재미있게 발전시키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쿠기가 만들고 싶은 재미있는 음악은 어떤 건가요? 예전에는 청각적 쾌감에 더 신경 썼다면, 요즘은 가사 한 줄이 기억에 남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가슴을 뚫는 가사가 한 줄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이번 싱글‘Right Now’에서 기억에 남는 한 줄은 무엇일까요? 널 만나면 더 낼 수 있어. 세금도?(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