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를 진행하기 전, 오마주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박신혜가 선택한 인물은 오드리 헵번이었다. 사실 그녀는 이미 과거의 인터뷰에서 오드리 헵번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히 밝혀왔었다. 모두가 인정하는 시대의 아이콘이자 위대한 배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름다운 배우인 동시에 아름다운 인간이었던 오드리 헵번은 자신의 말과 삶이 일치했기에 누구보다 아름다운 말년을 보냈다. 그리고 박신혜, 그녀도 아름다운 인간으로 살고 싶은 것 같았다.
“오드리 헵번의 모습은 지금 봐도 참 세련되잖아요. 거기에서 배어나는 사랑스러움이나 당당함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저절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고요. 그분은 자존감이 무척 강한 사람이었을 것 같아요.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남도 사랑하지 못하니까요. 그녀는 대단한 스타였지만 자신의 삶을 충실히, 열심히 살았잖아요. 그 점을 꼭 닮고 싶어요.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는 게 제 가장 큰 목표예요. 지금처럼 평소에 봉사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산다면 그만한 행복이 없을 것 같아요. 한 번 사는 인생이니까 나를 위해서 살고 싶어요.
나는 지난해 이맘때 박신혜를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이후 꼬박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에게는 멋진 일들만 벌어진 것 같다. 든든한 ‘오빠’들과 함께 한 영화 <7번방의 선물>은 놀라운 흥행 성적을 거두었고, 드라마 <상속자들>을 만나면서 박신혜는 또래 청춘 배우들과 함께 말 그대로 빛나는 ‘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박신혜는 영화 <상의원>(가제)의 크랭크인을 기다리고 있다. 조선시대 한복 장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번 사극에서 한석규, 고수, 유연석 등의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다. 늘 상대 배우 복이 많은 그녀다. 크랭크인까지 딱 2주 남았다.
“요즘은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녹초가 되어버릴 것 같아서 계속 움직이고 있어요. 한 작품이 끝나면 아무래도 같이 한 사람들도 생각하고 후유증이 남으니까. 이번에도 <상속자들>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다음 날 일어나니까 눈물이 맺혀 있는 거예요. 이제 새로운 영화도 해야 하는데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몸이 피곤해도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저만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럴 때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요즘에는 꽃을 만지고 있는데 참 기분 좋은 일이더라고요.”
전에 그녀를 만났을 때 가장 인상적인 것도 그녀가 무척 많은 취미를 가졌다는 점이었다. 나같이 게으른 사람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박신혜는 스노보드와 웨이크보드, 펜싱, 승마, 배드민턴, 수영, 골프까지 섭렵한 스포츠 마니아에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는 시간을 가장 사랑한다. 재작년부터는 몸의 균형 감각을 높이기 위해 현대무용도 배웠다. 그 외에도 도예, 요리, 배낭여행까지 그녀는 하고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나 많다. 이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안다. 취미가 많은 사람이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꽤 어른이 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예민해지기도 쉽고, 압박감도 많은 환경에서 일하면서 이 정도의 취미를 즐기려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누구보다 바쁘면 바빴지 결코 한가할 리 없는 박신혜는 필사적으로 본인이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이다. 언제 어디에서든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주위 시선 의식하지 말고 당당하게 하자, 생각하는 편이에요. 안 그러면 진짜 못 살 것 같아요. 얼마 전에 가족들하고 여행을 다녀왔는데, 사적인 시간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어요. 또 언제 이런 관심과 사랑을 느껴볼까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쉽지가 않구나, 생각하게 되죠. 근데 이번에 <상의원>을 하면서 만난 한석규 선배님이나 고수 선배님은 어떤 여유가 있고, 그 모습이 참 멋있는 분들이에요. 이야기를 나눠보면 한마디 한마디가 시 같고. 이번 작품을 하면서 그런 걸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화보에서 오드리 헵번이 사랑한 것들을 재현하려고 했을 때 굳이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여배우들이 힐을 신고 또각거리며 걸을 때 플랫 슈즈를 신고 촬영장과 촬영장 사이를 자전거를 타고 자유롭게 돌아다녔다는 헵번의 모습과 박신혜의 몇 가지 습관 사이에는 상당히 공통분모가 많다. 조건 없이 순수한 우정을 나누어주는 동물과 항상 함께있고, 튀튀를 입은 모습이 참 잘 어울리고, 자신을 웃게 만드는 일에서만큼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 여자들이다.
“일을 하다 상처 받거나 힘이 들 때면 일단 얼굴에 웃음이 없어지잖아요. 그렇게 웃지 않으면 마음의 여유도 사라지는 것 같아요. 내가 웃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웃고, 또 그 사람들이 웃는 걸 보면서 나도 진심으로 웃을 수 있고. 그래도 도저히 웃고 싶지 않은 날에는? 그럴 땐 그냥 솔직히 말해요. ‘죄송해요, 제가 상황이 너무 안 좋아요,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할게요. 다음에 만났을 때는 더 잘할게요.’ 이게 제 스타일 인 것 같아요.”
따뜻하다거나 사랑스럽다는 말이 칭찬인 시대는 지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래도 박신혜의 웃는 모습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모두가 무뚝뚝하고 시크한 시대에 긍정적이고 따뜻한 기운을 품은 배우가 있어서 좋다. 어쨌거나 박신혜는 잘 웃는 여자다. 앞으로도 그녀가 웃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고 싶다.
“예전에는 시청자나 관객과 같이 늙으며 말벗이 될 수 있는, 같이 걸어갈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목표였어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는데, 한 가지 더 추가된 게 있어요. 배우라는 게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직업이잖아요. 그게 엄청난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한 사람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큰일인 것 같아요. 이러다가도 이러다가도 또 무너질 것이고, 그래서 무섭기도 하지만, 이건 늘 가슴에 새기고 있으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