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리 드레스 앤디 앤 뎁 컬렉션 (Andy & Debb Collection), 아이보리 부티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아이보리 드레스 앤디 앤 뎁 컬렉션 (Andy & Debb Collection), 아이보리 부티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랙 쇼츠 앤디 앤 뎁 컬렉션 (Andy & Debb Collection), 블랙 라펠 화이트 턱시도 재킷 비오넷 바이 한스타일 (Vionnet by Hanstyle), 화이트 핀턱 셔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랙 비딩 원피스 쟈딕 앤 볼테르 (Zadig & Voltaire), 가죽 팔찌 필그림(Pilgrim).
블랙 원피스 앤디 앤 뎁 컬렉션 (Andy & Debb Collection), 블랙 슬링백 힐, 실버 링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랙 슬리브리스 점프수트 이로(Iro), 스터드 태슬 로퍼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드라마 홈페이지에는 ‘그 외’들이 있다. 주인공이 아니란 뜻이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 홈페이지에서 장희진의 ‘다미’는 그 외 주요 인물이다. 그만큼 애초에 드라마가 시작될 때 비중이 적은 역할이었던 거다. 꾸준히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라면, 의아한 일이다. 다미는 드라마 전개에 가장 중요한 복병이고, 그걸 떠나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물이다. 톱 여배우지만 알고 보면 소녀 가장이고, 톱 여배우인데도 사랑하는 남자한테 일방적으로 결별 선언을 듣는다. 소속사에 약점을 잡혀 마음대로 은퇴를 할 수도 없고, 주변에 속 털어놓을 사람 하나 없어서 연예 기자 붙들고 술기운 빌려 하소연하는 외톨이다. 현실에서는 쉽게 볼 수 없을 캐릭터일뿐더러, 결혼한 남자에게 막무가내 매달리고, 임신한 그의 아내를 고통스럽게 하는 악역인데 밉지 않다. 파격적이지만 현실감은 떨어지는 인물인 다미에게 숨을 불어넣은 것은 장희진이다. 사람들은 도덕도 양심도 없이 남의 꽃밭에 불 지르는 제멋대로 연예인이 아니라, 내려놓고 싶다고 내려놔지지 않는 욕망과 채울 방법 없는 결핍으로 고통받는 애처로운 인간에 연민을 느낀다. 비중이 작은 단역에도 그만의 스토리와 인생을 불어넣는 김수현 대본의 탁월함도 이유가 됐지만, 역시 박수를 받을 사람은 다시 처음부터 연기를 시작하는 사람처럼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장희진 자신이다.

아무래도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다미’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김수현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저마다 캐스팅 스토리가 하나씩 있더라.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원래는 다미가 10회 정도까지 나오고 안 나오는 인물이었다더라. 밝고, 나이도 어려서 귀엽고 통통 튀는 캐릭터였다고 한다. 연예인 같은. 내가 나이도 있고, 밝은 톤보다는 김수현 선생님이 원하시는 톤과 맞아서 다미 캐릭터가 단단하고 깊어졌다.

김수현 드라마에는 역할 비중을 떠나 작가가 특히 더 애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캐릭터들이 있다. 이번 작품에선 그게 다미인 것 같다. 내 캐릭터여서가 아니라 다미가 매력 있는 캐릭터인 건 분명하다. 드라마 속 캐릭터를 통틀어 가장 매력 있다. 여쭤보진 않았지만, 확실히 선생님이 처음 생각하신 것보다 다미 비중이 커진 건 사실이다. 선생님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시험처럼 뭘 하나씩 던져주시는데, 회식 자리에서 나한테 겨우 따 먹는다고 하시더라.(웃음) 아직 많이 부족하다. 이번 작품 하면서 초반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김해숙 선생님을 소개해주셨다. 선생님과 많이 얘기하고 상의하면서 다미를 만들어왔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나? 나는 리딩을 잘하는 배우가 아니었다. 앉아서 읽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김수현 선생님의 리딩은 모든 감정을 다 쏟아서 진짜로 연기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책 보고 앉아서 그러는 게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촬영장 가면 덜 힘들었다. 매주 대본 리딩 전에는 잠을 못 잤으니까. 다미 신이 매번 너무 센 것도 그랬다. 술 먹고, 울고, 화내고, 미쳐 있고.

극 중 준구와 다미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결혼을 했고, 기본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관계에서의 또 다른 사랑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나도 사랑을 해봤고, 연애도 해봤지만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게 나한테는 믿음이다.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 바라본다는 믿음이 깨지기 시작하면 사랑도 흔들릴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미한테는 정말 이 사람 하나밖에 없다. 결혼을 했던 애도 아니고, 다른 누구도, 아무것도 없으니까 나는 다미가 이해가 간다. 만약 다미가 결혼을 했고, 그런데도 준구를 원한다면 뭔가 잘못됐다고 느낄 것 같다.

장희진은 어떤 사랑을 믿나? 서로 믿는 책임감 있는 사랑. 사랑이 영원할 거라는 건 20대 때 이미 어느 정도 포기했다. 성향이 나랑 맞고, 서로 믿고, 내가 어느 정도 배우고 존경할 수 있는 부분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불타는 사랑? 그건 이미 지나간 것 같다. 결혼이 너무 하고 싶다. 자기 사람한테 충실한 사람이 좋다. 주변 사람에게는 잘하면서 그러니까 가족이나 친구, 애인에게는 못하는 사람은 싫다.

여배우가 여배우를 연기하고 있다. 다미는 성격도 나랑 많이 달라서 힘들긴 했다. 어떻게 보면 만들어진 부분도 있다. 사실 아무리 톱 배우라도 집에서 그렇게 드레시한 옷을 입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다미는 그런 캐릭터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연예인 같은 연예인. 술을 마시고, 수면제를 먹는 애. 정신적으로 불안한 캐릭터기 때문에 그걸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다미 같은 역할은 꼭 호불호가 갈린다. 작가님이 잘 써주시는구나 느끼는 게 난리 치는 장면 끝에 꼭 감정을 넣어주신다. 그게 다미의 의지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걸 표현해주시거나. 사람들이 다미를 보면서 그 아이가 불쌍하고 안쓰럽다고 생각하게 해주신다. 그런 신이 없었으면 소모되는 캐릭터였을 것이다. 나만 잘하면 다미는 매력 있는 캐릭터구나, 느끼면서 연기를 하니까 훨씬 좋다.

이제 적응은 끝났을 텐데. 적응은 아직 안 됐다.(웃음) 그런데 드라마 보면 예전 내 모습이랑은 참 다르다고 느낀다. 그 전에 작품할 때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안일하게 연기했구나, 하는 생각 진짜 많이 한다. 예전에는 모니터를 해도 내가 연기를 잘했는지 못했는지 잘 안 보였다. 나쁘지 않지 뭐, 예쁘게 잘 나왔네, 그랬지 디테일하게 안 봤다. 사실 이번 작품 하면서 외모는 전혀 신경을 안 썼다. 연기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까 깊이 들어가게 되더라. 부족한 점이 조금씩 채워져가는 느낌이 있다. 물론 아직 시행착오가 많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봐야 하는 시기다. 그래도 많이 다듬어지고 있어서 끝나면 많이 배우고 나아지는 작품이 되겠구나 생각한다.

배우라는 직업은 어떤가? 배우로 데뷔한 게 스물네 살 때다. 매력 있다. 그런데 참 힘든 직업이다. 슬럼프도 있었고, 그만둘까 생각도 많이 했는데 그만둬지지 않았다. 언제든지 아닌 것 같으면 그만 둘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내가 계속 잡고 있더라. 포기가 안 되는 거다. 그러면서 연기가 힘들어졌다. 깊이 파고들면 끝도 없이 해야 하고 복잡해진다. 그런데 쉽게 가려면 그냥 놀면서 할 수 있는 직업이 배우다. 그 사이에서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그걸 넘어가면서, 연기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내가 재능이 있나 없나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내가 이걸 해도 되는 건가 물음표가 생기니까 슬럼프가 확 왔다. 결론은, 지금 열심히 하고 있다.

이성적으로 캐릭터를 분석하는 배우인가, 감정적으로 다가가는 편인가? 본래 감정적인 배우였다. 대본 외우고 현장 가서 상대 배우 보면서 내가 그 감정에 충실해서 연기하면 된다는 주의였다. 그런데 지금은 연기를 했을 때 나만 느끼면 안 되고 보는 사람도 같이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슬퍼서 눈물을 흘린다고, 보는 사람은 보면서 슬프지 않고 눈물이 안 나도 상관없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런 부분을 예전에는 잘 몰랐다. 정말 슬퍼서 눈물을 흘렸으니내가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걸 시청자들이 봤을 때 마음에 와닿지 않고 울컥하지 않으면 잘못된 연기인데 그걸 몰랐던 거다. 그 디테일을 찾아가면 연기가 힘들어진다. 계산하는 건 아니지만 그걸 생각해야 하는 게 연기 같다.

장희진의 작품들을 찾아보니 지금까지 쉽게 온 배우는 아닌 것 같더라. 시작은 오히려 쉬웠다. 데뷔하고 1년까지 아주 쉽게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한편으로 독이 되기도 했고, 정체할 수밖에 없었다. 준비하는 동생들한테 고생도 하고, 초반에 이 일이 얼마나 어렵게 해야 할 수 있는 일인지 겪어보고 차곡차곡 올라와야 오래 잘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얘기 많이 한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역을 맡다 보니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서 지금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자책을 많이 했다.

극복하게 해준 힘은 뭐였을까? 이것밖에 없었던 것 같다. 연기 말고는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게 이 길을 가게 한 힘 같다. 요즘 장희진이 새삼스럽다. 장희진이란 배우를 처음부터 다시 알아가는 느낌이다. 내가 작품을 안 한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주인공도 해보고 그랬는데 사람들이 보는 장희진은 늘 같고, 기대치도 정해져 있고, 어느 순간 위기감이 느껴졌다. 내가 원하는데 못 하게 되는 날이 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수현 선생님은 나를 모르셨던 것 같다. 신인인 줄 아셨던 것 같다. 캐스팅 결정되고 내가 전에 이것저것 한 걸 찾아보시고는, 난 네가 하는 걸 본 적이 없으니, 그러면 널 확 바꿔보자. 사람들이 못 알아보게, 그러셨다. 헤어랑 메이크업도 나랑 안 맞는 것 같아서 당황하고 그랬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집이 있었나보다. 처음에 그게 힘들기도 했는데, 지금은 원래 해오던 머리인 양 뽀글머리가 아주 자연스럽고, 생머리 하면 이상하고 그런 걸 보면. 장희진인 줄 못 알아봤다는 분도 있고, 절반은 성공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