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롭트 톱 노케제이(Nohke J), 스트라이프 와이드 팬츠 럭키슈에뜨(Lucky Chouette), 그레이 스틸레토 힐 슈콤마보니(Suecomma Bonnie), 골드 메탈 뱅글, 실버 링 모두 엠주(mzuu).
도대체 이 드라마의 정체는 뭐지? 드라마 <킬미, 힐미>의 첫 회를 본 직후의 심정은 이랬다. 판타지인가? 코미디일까? 액션? 아님, 혹시 스릴러? 그러나 정체를 알기도 전에 정신없이 빠져드는 드라마임은 분명하다. 일곱 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와 그의 주치의가 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킬미, 힐미>가 방영된 후 SNS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반응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거다. “병신 같지만 멋있어.” 간지러운 인터넷 소설처럼 오그라드는데 웃기고, 이상하게 중독적인 이 드라마의 다음 회가 심히 기다려진다. 첫 회부터 명대사도 탄생했다. 극 중 신세기(지성)가 오리진(황정음)에게 말한다. “기억해. 오후 10시. 내가 너한테 반한 시간.” 어떤 느낌인지 대략 짐작이 가는가?
<킬미, 힐미>에는 배우 지성뿐 아니라 라이징 스타 박서준, <미생>의 강 대리 역할로 스타가 된 배우 오민석 등 멋진 남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들과 ‘케미’를 만들어내는 여자가 바로 황정음이다. 그녀는 드라마가 방영되는 한 시간 내내 끊임없이 괴성을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 저 호들갑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연기라니, 황정음이 아니면 살릴 수 없는 캐릭터인 것이다. “감독님이 센스가 있으신 것 같아요. 대한민국에 새로운 장르의 드라마가 탄생한 것 같아서, 방영 이후에는 감독님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촬영하면서는 의견 충돌도 좀 있었어요. 전 코믹 연기를 할 때 오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상황이 웃겨도 진지하게 연기할 때 웃긴 거지, 제가 오버해서 웃기려고 하면 웃기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이 드라마에선 오버를 해요.(웃음) 전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하이킥>)때의 연기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감독님은 <하이킥>처럼 하라고 하고. 근데 방송되는 거 보니까 알 것 같아요. 지금의 제가 아무리 <하이킥> 때처럼 연기한다고 해도, 이제 더 이상 그때의 황정음이 아니라는 걸 말이에요. 그동안 연기해온 시간들 때문에 오히려 갇혀 있던 부분들을 다시 꺼내게 된 것 같아요.”
박시한 실루엣의 실크 원피스 래비티(Rabbitti), 목걸이는 본인 소장품.
황정음과 지성이 함께 있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비밀> 이후 두 번째로 함께 호흡을 맞추는 그들이지만, 황정음으로서는 전혀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일곱 가지 버전의 지성(그는 일곱 개의 인격을 가진 다중인격자다)과 함께 연기를 하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온화하고 침착한 모범생 스타일의 차도현이지만, 섹시한 나쁜 남자 신세기,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페리 박 등 만화 같은 캐릭터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중에서도 지성은 페리 박 캐릭터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밝혔다. “전 무조건 신세기예요. 처음에는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다가 빠져들어버렸어요. 너무 매력 있지 않아요? 싸움도 잘하고.(웃음) 역시 여자에게는 나쁜 남자에 대한 판타지가 있나봐요.”
하지만 전 국민이 알다시피, 그녀는 착한 곰 같은 남자와 9년 동안이나 연애 중이다. “용준이요? 안 그래 보이는데 완전히 나빴어요. 진짜 이기적이고.(웃음) 저희도 처음 3년 동안은 미친 듯이 뜨거운 사랑을 했죠. 그렇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어떤 사람들은 여러 사람을 만나봐야 사랑을 알게 된다고 말해요. 하지만 전 한 남자를 9년이나 만나면서 무척 많은 걸 깨달았어요. 이 감정을 잘 설명하진 못하겠지만 어쨌든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가끔은 진짜 죽이고 싶을 만큼 싫지만(웃음), 그렇게 싸우고도 얼굴을 보면 ‘흥!’ 하고 웃게 되고. 오랫동안 서로의 모든 것을 봐왔어요. 제가 정말 일이 없어 집에서 놀면서 용준이만 기다리던 때도 있었고, <하이킥>을 하면서 갑자기 인기가 많아지기도 했고, 연기자로서 열심히 하는 모습도 지켜봤고. 함께 커온 느낌이에요. 둘이 같이하는 일상은 시트콤 같아요. 이를테면 제가 대본을 보는데 용준이가 TV를 켜요. ‘TV 꺼!’ ‘앙?’ ‘대본 봐야 되니까 TV 끄라고!’ 소리를 지르며 방에서 나가보면 이미 거실에 없어요. 제가 화내는 게 무서워서 자기 집으로 도망가버린 거예요.(웃음)”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의 화이트 셔츠, 누비 디테일의 랩스커트 모두 세린느(Celine), 로즈 골드 링 모두 디디에 두보(Didier Dubot).
언제나 티격태격하면서도 사이가 좋은 이 커플을 보면 이젠 웃음이 난다. 그리고 자신의 연애사를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한국 여배우는 정말이지 드물다. <킬미, 힐미>의 제작 발표회에서도 황정음은 그와 싸웠다며 “9년이나 만났으니 헤어질 때 됐지” 같은 말, 그러니까 다른 여배우라면 공식 석상에서 절대 하지 않을 말을 해서 인터넷상에 기사가 온통 도배되기도 했다. “그 기사가 나고 바로 웃으면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그래서 화해했어요. 이러다 결혼을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의리로 만나는 건 아니에요. 저, 의리 없어요.(웃음) 제가 싫으면 얄짤 없어요. 근데 용준이가 없으면 사실 제가 불안해요. 제 베스트 프렌드예요.”
우리는 이런 모습의 황정음을 가장 좋아한다. 솔직한 여배우. 연애뿐 아니라 거의 모든 면에서 그녀는 멋지게 포장할 생각도, 가식을 떨 생각도 없는 것 같다.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자신감이 없어서가 아닐까요? 전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어릴 적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마어마한 자신감이 있었죠.(웃음) 친구들이 그래요. 보통 연예인이 되면 성격이 나빠진다고 하는데 너는 오히려 착해진 것 같다고. 예전에 성격이 너무 나빴던 거죠.(웃음) 연기만 잘하면 되지. 그게 제 인생의 포인트인 것 같아요. 배우는 그거 하나면 다 용서가 되는 것 같아요. 그거 하나만 보려고 노력해왔어요. 연기도 잘해야 하고, 다른 것에도 다 신경 쓰면 너무 피곤할 것 같아서 싫어요.” 그리고 황정음은 어느새 드라마 흥행의 보증수표가 되었고, 로맨틱 코미디의 퀸이 되어 있다.
블랙 터틀넥 니트 스웨터, 슬림한 핏의 블랙 팬츠 모두 럭키슈에뜨(Lucky Chouette).
“행복은 별것 아닌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행복을 느껴요. 그런데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구나, 그게 참 어마어마한 거구나.(웃음) 이를테면 좋은 작품을 힘들게 잘해내고 나서 집에서 쉴 때, 행복해요. 그러니까 행복해지려면 우선 ‘좋은’ 작품을 만나 ‘잘’ 해내는 것이 중요하겠죠. 쉬고 싶은 시기에 어떤 작품이 들어와서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이렇게 생각해요. 이 세상에서 이 작품은 딱 한 명, 나만이 할 수 있는 거라고. 안 하면 내가 만들 수 있었던 캐릭터가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거잖아요. 그럼 해야겠다, 싶죠.”
마지막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느냐는 다소 식상한 질문으로 마무리를 하려고 하자 황정음은 “전지현!”을 외친다. “그게 끝이에요?” “부연 설명이 더 필요해요? 목표는 전지현입니다. 다시 태어나면 전지현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녀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자다. 드라마 밖에서도 그렇다.
구김이 있는 소재가 돋보이는 톱, 드라마틱한 러플 디테일의 스커트 모두 세린느(Celine), 주얼 장식 링 모두 엠주(mzuu), 에나멜 스틸레토 힐 마놀로 블라닉(Manolo Blahni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