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브뤼셀에 다녀오셨죠? 공연이 2회, 일정이 하나 있어서 벨기에에 한 10일간 머물렀어요. 브뤼셀과 안트베르펜라는 항구도시에 주로 있었고 겐트에도 하루 다녀왔어요. 예전에 같이 작업한 시오엔이라는 뮤지션의 공연이 겐트에서 있었거든요. 벨기에는 도시가 예쁘고 음식이 맛있었어요. 홍합찜이 유명하다고 해서 그거 먹고 술이 싸고 맛있어서 술도 많이 마셨어요. 와인이랑 맥주.
술 좋아해요? 요즘은 조금 줄였어요. 그곳에 다녀오니까 새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들어서 집도 열심히 치우고 밥도 제대로 챙겨 먹으려고 해요. 왜 그런 ‘뽕’이 들 때가 있잖아요, 가끔씩. 새사람 돼야지. 결심이 흐려지면 또 술 마시겠죠.
이번에 발표한 앨범 <7102>에 대해 ‘너무 좋아서 라이브 앨범이라는 점이 아쉽다’는 의견이 많더라고요. 굳이 라이브 앨범으로 발표한 이유가 있나요? 그러게요. 저도 다시 생각해봐야겠어요. 저는 2집을 꼭 내고 싶거든요. 2집에 들어갈 곡들이 이미 준비돼 있어요. 근데 그 전에 1집과 2집 사이에 뭔가를 내면 마음이 편할 것 같고 편해지고 싶었어요. 제가 지난해 초까지 라이브를 어려워하고 긴장을 많이 했거든요. 지금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인데, 그런 상태로 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불러서 흘려보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1집을 내고 지금까지 내가 너무 쉬고 있나,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좀 지우고 싶었나요? 그런 점도 있어요. 1집 낸 뒤 너무 좋으면서도 너
무 힘들더라고요. 활동하는 것도 그렇고 저는 집에서 인터넷에 제 이름을 자주 검색해보거든요. 좋은 말도 있고 악플도 있더군요. 저처럼 미물인 인간도 그런 부분이 참 힘들었어요. 근데 2집도 1집 정도로 내고 싶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이 라이브 앨범은 “이거 그냥 지금만 하는 얘긴데…” 하고 흘리고 싶었던 이야기들이에요.
신곡도 있고 전에 불렀던 곡도 있어요. 흘린다고 했는데 왜 그 순간들을, 그 곡들을 선택했는지 궁금해요. 2집에 넣지 않을 노래들, 근데 언제 다시 낼 수 있을지 모르
는 시기의 노래들을 모았어요. 특히 지난해 초에 쓴 노래를 많이 포함했어요.
그 곡들은 왜 2집에 넣지 않기로 했나요? 2집은 아주 발랄하게 만들고 싶어요.(웃음) 1집 때 약간 우울하면서도 희미하게 뭔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담은 것 같아요. 라이브 앨범을 되게 우울하게 내고 2집은 좀 산뜻하게 내고 싶은 거예요.
제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월 씨는 산뜻하고 사랑스러운데요. 물론 내면에 자리한 생각들은 차치하고요. 제가 젊음을 바라보는 태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거든요. 이전에는 이 시기 지나면 난 꺾인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었어요. 젊은 여자로 사는 시기가 아직 지난 건 아니지만 요즘은 굳이 안 그래도 되고 지금도 충분히 산뜻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언젠가는 꼭 음악으로 표현해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젊음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이 달라진 것에 대해서요? 네, 그리고 사랑이나 관계에서도 저는 완전히 안으로 향하는 인간인데 이번 앨범의 수록곡 ‘달아’의 ‘모든 것이 가능하다 믿고 싶어’라는 마지막 구절처럼 좀 성숙한 모습을 남기고 싶은 것이 2집이에요. 그 전에 약간 땅 파는 곡들을 라이브 앨범에 넣어야 겠다. 하하.
나는 이제 다시 태어나겠다? 다시 태어나겠다! 언제나 그랬어요. 1집 <수잔> 때도 ‘다시 태어날 거야’ 하면서 내고 2집도…. 계속 다시 태어나야 하나 봐요.
<7102> 앨범은 전체적으로 멜랑콜리하고 염세적인, 사랑을 갈망하고 쓸쓸해하는 정서가 느껴져요. 음악으로 김사월이라는 사람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전부이
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해요. 무척 민망하네요. <수잔>은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예요 하는 컨셉트였는데 사실은 부끄러워서 제 얘긴데 남의 얘기라고 했거든요. 음악은 저를 내비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저인데, 그게 저냐고 하면 또 그렇지는 않은 상태예요.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너무 불량하게 음악을 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음악은 신성한 건데.
자주 만나는 사람이라도 음악적인 고민은 나누지 않죠? 곡을 둘러싼 것들은 얘기를 은근히 많이 하게 돼요. 저는 (김)해원 씨랑 제일 가까워서 곡 이야기를 많이 하고 천미지라는 친구도 음악 하는 친구인데 제가 공연 때 입을 옷을 봐달라고 사진을 보내기도 해요. 곡에 대해서 아주 상세하게 친구와 얘기하기도 하고요.
의외로 외향적이네요. 워낙 적은 사람하고 그렇게 지내는 거라서.
소수 정예. 네! 하하. 저는 외향적이고 싶기도 해요. 근데 방법을 잘 모르니까 실수하지 않으려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죠.
대부분 사람이 그렇게 지내지 않나 싶어요. 대체로 어떤 감정에 기대어 사나요? 최근에 저는 좀 무감해요. 무감한 걸 느끼는 것 같아요. 무감한 걸 느낀다는 건 결국 어떤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하는데 안 되는 거죠. 그 감정이 뭐냐 하면 사람이 태어나면서 아기 때 이미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인지 그렇지 않은 곳인지 알게 된다고 하잖아요. 저는 살 만하지 않은 곳인데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어떤 감정을 원한다고 느낄 땐 그런 생각에 가까운 것 같아요. 잘 지내고 싶은데 사실 다 부정하고 싶고.
이번 앨범에 유난히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요. 사랑과 연애는 다르죠. 김사월에게 연애란 뭘까요? 연애, 사랑. 아, 잘 얘기하고 싶다. 조금 생각해볼게요. 사실 저는 모르겠어요. 사랑 노래를 많이 쓴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사랑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하지만 전 사람을 결과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가져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옳은지 자주 생각해요. 전 아주 중요해요.(웃음) 사랑이라기보다는 좀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제가 받아들여지는 느낌을 원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사랑이나 연애를 자꾸 기웃거리면서 여기라면 나를 받아들여줄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데 그런 방식으로는 연애나 사랑을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망하는 케이스입니다.(웃음)
부정당한다는 느낌에 예민한가요? 본질적으로는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고 저 스스로 그걸 알고 있어서 안 그러고 싶은, 그래서 새로 태어나고 있는 중입니다.(웃음)
김사월에게 사랑은 뭔가요? 지금까지는 저만을 위한 것이었던 것 같아요. 갑자기 슬퍼지네요.
다들 어느 정도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랑을 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근데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아니야, 전 잘 모르겠네요. 찾고 있어요. 사랑에 성공과 실패가 어디
있을까 싶지만 내가 어떤 사람한테 줄 수 있는 만큼 사랑을 주는지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다 실패했거든요. 제가 너무 받고 싶어 해서요. 사랑을 너무 원해서 지금까지는 실패했어요. 좀 더 지혜로워지고 싶어요.
앨범에 ‘아주 추운 곳에 가서야만 쉴 수 있는 사람’이라는 트랙이 있죠. 보통 혼자 쓰는 글에는 어떤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하루 일과에 대해 많이 쓰고요. 특별한 사
건이 있었으면 그 사건을 보며 느낀 기분을 써요. 갑자기 누군가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다면 그걸 쓰고 꼭 제게 귀결되는 글을 쓰진 않아요. 요즘은 무감에 대한 감각에 대해 생각해요.
무감하다는 데 죄책감을 느껴요? 예전에는 심하게 그랬어요. 막 뭐라도 느끼고 싶어 했는데 지금은 너무 잘 지내고 싶고요. 저는 음악을 해서 지금 무척 행복하지만 꼭 음악을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음악을 해서 안 되면 털고 딴것 해도 되지 않을까요?
너무 좋은데요? 그럴 생각은 전혀 없어요. 맨날 노력하지만 수틀리면 털고 떠나야지 하고 생각해요. 근데 할 건 없어요. 제가 능력이 없어서.
시대정신이 짙게 배어 있는 말이네요. 욜로 욜로!
언젠가 트윗에 ‘해보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도망가야지’ 하는 뉘앙스의 글을 썼었죠. 근데 또 내가 노력하는 기준이 모호해서, 언제든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
고 있으면서도 계속 갉아먹히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린 요즘.
이런 말로 위안을 삼는 거죠. 얼마 전엔 아이유 콘서트에 다녀왔죠? 아, 정말 제 위인이에요. 이번에 콘서트를 가게 돼서 너무 기뻤어요. 기획이나 연출 같은 면에서 아
주 많이 배웠죠. 내한하는 뮤지션의 공연을 많이 보지, 국내 대중 가수의 콘서트에 갈 기회가 별로 없었거든요. 텔링하는 방식이나 지금 아이유 님이 갖고 있는 캐릭터로 보여줄 수 있는 스펙트럼을 대하는 자세 같은 게 참 좋았어요. 이 다음은 다 제 덕심 얘기입니다.
또 좋아하는 뮤지션 있어요? 제가 마음의 방이 많아서 좋아하는 가수가 많은데 대부분은 싱어송라이터예요. 요즘 엔 엔젤 올슨이요. 꺅! 제 사랑입니다.
정말 사랑이 많네요. 아이유 님이 사랑이 많은 건 좋은 거라고 했죠.
새해의 김사월은 어땠으면 좋겠어요? 소소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다시 태어날 일 있으면 계속 다시 태어나면서. 요즘 곡을 만들어서 사클(사운드 클라우드)에 업로드하고 있는데 이게 저한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행동은 아니지만 그냥 하트 수와 재생 수 확인하면서 기분 좋아지려고 하는 일이거든요. 그다지 매력 없는 곡이든 좋은 곡이든 사클에 많이 업로드하면서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먹고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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