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애 재킷 블러썸(Blossom). 예수정 재킷 렉토(Recto), 이어링 일레 란느(Ille lan).
코트 렉토(Recto).
재킷 와이씨에이치(YCH), 이너 웨어 카이(KYE).

69세의 ‘효정’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도중, 29세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 후 증거를 챙겨 경찰에 신고하지만, 모두가 효정을 치매 환자로 의심할 뿐이다. 법원 역시 노인 여성을 ‘무성적’ 존재로 여기고 젊은 남자가 그런 일을 저지를 개연성이 부족하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한다. 하지만 영화 <69세>는 단순히 노인 여성의 성폭력 사건에만 무게를 두지 않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노년의 삶을 세밀히 들여다보고, 더 나아가 노년 세대에 갖는 사회의 편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바로 서기 위해, 스스로를 억압에서 구원하고 해방시키기 위해, 효정은 어둠뿐인 현실에서도 옷을 단정히 차려입고 고발문을 손에 쥔 채 부당함에 맞서 싸운다. 계단을 모두 오른 뒤에 그곳에 빛이 있을지 다시 어둠이 내려앉을지 모르지만 주저하지 않고 그저 나아갈 뿐이다. 이러한 주체적인 여성 효정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배우 예수정이 연기했다. 그의 담담하고 힘 있는 연기와 오랜 시간 동안 스토리보드 작가로 활동하며 장편영화를 준비해온 임선애 감독의 열정이 만나 영화 <69세>가 완성됐다. 이들이 빚어낸 시너지가 없다면 이 영화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됐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영화 <69세>가 8월 말 개봉했습니다. 임선애 감독님은 첫 장편 데뷔작에서 ‘노인’과 ‘여성’, 성폭력’이라는 소재를 다루게 된 계기가 있나요? 임선애 감독(이하 임) 2013년에 우연히 노인 성폭력 칼럼을 읽은 뒤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쭉 써온 건 아니고,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쓰게 됐죠. 가장 중점에 둔 것은 하나의 개별적 사건을 재현하는 사건 중심의 영화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어요. 한 사람의 불행을 영화로 만든다는 건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이건 나와 별개의 먼 이야기인가?’ 하는 점을 고민해봤는데 그건 또 아니었어요. 주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모두가 크고 작게 성폭력에 노출된 경험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다들 여전히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어쩌면 모두가 ‘예비 피해자’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내가 만약 69세에 효정과 같은 일을 당한다면? 지금의 제가 느끼는 감정과 똑같이 느낄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나와 가까운 이야기가 아닐까 해서 용기를 냈죠.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어요. 유럽에는 장년층 여성 배우가 포스터에 나오는 작품이 많잖아요. 이자벨 위페르, 샬롯 램플링, 메릴 스트립 같은 배우가 대표적이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왜 이런 작품이 많이 없을까 아쉬웠어요.

<69세>는 단단함에서 비롯되는 예수정 배우님의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다른 배우가 효정을 연기하는 걸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요. 선생님이 어느 인터뷰에서 “아무래도 보이스 피싱을 당한 것 같다”고 이야기하셨어요.(웃음) 그건 너무 겸손한 말씀이고요. 사실 비슷한 선생님 연배의 배우들을 보면 작품에서 메인 인물인 것 같지만 서브 역할로 그려지거나, 누군가의 어머니, 할머니 역할로 등장해 모성애만 강조되는 일이 많잖아요. 아, 당연히 그건 배우님들 잘못은 아니고요. 그런데 선생님의 작품에서는 다양한 여성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녀들의 방>이나 <행복의 나라> 같은 영화나 여러 드라마에서도 신스틸러 역할을 하셨고요. 분명히 선생님의 스펙트럼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69세>는 60대 여성이 주인공이고, 지금까지 한 적 없던 이야기이니 뭔가 막연히 선생님께서 관심을 가져주실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예수정 배우(이하 예) 역시 예상대로 움직였군.(웃음) 하하. ‘69세’를 제목으로 쓴 얘는 누구야?’ 하면서 궁금해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을 뵙기로 하고 마냥 좋아서 신나게 나갔는데 그 자리에서 시나리오 컨펌을 당했죠.(웃음) 그런데 그게 너무 좋고 다행이었어요. 처음부터 예수정 선생님과 하고 싶었는데 그 꿈이 이뤄진 셈이에요. 아주 순조롭게 기주봉 선생님까지 함께했고.(웃음) 그러니까요. 저는 운이 아주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님과 대화하며 시나리오의 어떤 점이 변했나요? 40대인 감독님이 바라본 효정과 배우님이 생각한 효정은 다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효정이 취하는 주체적인 삶의 태도에 대한 생각은 같았어요. 대신 결말과 60대 여성을 그리는 디테일한 표현들이 달라졌죠. 영화 안의 효정은 다림질을 하는 등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어요. 그런 일을 당해도 일상을 지켜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죠. 19세에 이런 일을 당했다면 당장 세상이 무너진 듯 누워만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69세인 효정은 어떤 일이 있어도 삶은 계속된다는 걸 몸으로 체험한 사람으로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다못해 마늘이라도 까고 있어야지.

이야기의 결말은 처음과 어떻게 달라졌나요? 선생님을 만나기 이전에 이 이야기의 중심은 가해자가 감옥에서 5년을 살든, 10년을 살든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