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거짓을 일삼는 사람들, 그 안에서 유일하게 결‘ 백’한 인물이 있다. 농약 막걸리 살인 사건의 용의자인 화‘ 자’(배종옥)의 아들 ‘정수’(홍경)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정수는 이 사건의 목격자일 수도, 공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 <결백>은 장애를 가진 정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억을 잃은 화자와 엄마의 결백을 밝히려는 변호사 딸(신혜선)의 사투를 그린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가장 좋았던 건, 그동안 이런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없었다는 점이에요. 모녀가 중심이 되어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작품이라는 게 흥미로웠어요. 게다가 정수는 여성 중심의 서사에서 새로운 남성상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평소 거울같은 영화를 좋아하는데, 마음에 와닿는 감정이 많은 작품이었죠.” 자폐성 장애를 가진 인물을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도 많았다.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대로 인물을 표현하는 게 무척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전에 특수학교나 복지관을 찾아가 세세하게 묻고 알아가면서 정수로 살아갈 준비를 했다. “다른 배우가 기존에 한 연기를 그대로 하는 것은 철저히 배제했어요. 그래서 자폐성 장애를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은 일부러 보지 않았죠. 대신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많이 던졌어요. 정수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 등을 분석해서 인물을 완성했죠.”
홍경의 시작은 영화다. 처음부터 배우를 꿈꾼 건 아니지만 그의 학창 시절은 온통 영화로 채워져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학교 수업이 끝나면 영화관으로 향하는 게 일상이었고 영화를 볼 때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마치 다른 세계에 다녀오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한 무렵, 셀프 영상을 찍어 단편영화나 독립영화의 오디션을 보러 다녔어요. 배우가 된 지금, 아직까지 어려움이 너무 많지만 한 가지 깨달은 건, 나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래야 배역에 공감할 수 있고 관객의 공감도 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작품을 위해 준비하고 연기하는 매 순간, 그는 거울을 본다고 생각한다. 정수를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듯, 홍경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 그것이 배우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라 믿는다. “저는 인물과 관계에 호기심이 많아요. 인물화 그리는 걸 좋아하고, 만나는 사람들을 찍고 싶어서 늘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죠. 앞으로는 인물의 상황이나 관계에 집중하는 인물 중심의 영화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내년 1~2월에는 그가 등장하는 새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한강에게>의 박근영 감독과 함께 한 <정말 먼 곳>이다. 이 작품에서 홍경은 시인이자 동성애자인 ‘현민’을 연기한다. “카멜레온 같은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다만 제가 살면서 10~20대에 겪은 경험과 감정들을 작품에 잘 녹여가고 싶어요. 생각보다 어릴 때 겪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그 외 세대의 이야기보다 많지 않은 것 같거든요. 앞으로 우리 세대를 대변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해 나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