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내 드라마 촬영을 했습니다. 지금 촬영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나요? 유재명(이하 재명) 총 12부작인데 8회 정도 촬영했어요.
전해 듣기로는 정작 세 분이 한 장면에 등장하는 신이 없다고요? 한예리(이하 예리) 드라마를 시작하고 엄태구 배우와 오늘 화보 촬영한 게 세 번째 만나는 거예요. 그중 한 번은 드라마 포스터 촬영이었고요.(웃음). 재명 나도 태구 씨랑 다 합해서 서너 번째 보는 것 같은데. 예리 씨도 한 네 번 봤나? 엄태구(이하 태구) 맞습니다. 2회 차 찍었습니다.
8회 분량을 촬영 했는데요.(웃음) 예리 되게 미스터리하죠?(웃음) 그래서 오늘처럼 만나면 서로 안부를 물으면서 ‘어때, 잘돼가고 있니? 많이 찍었니?’ 하는 인사를 주로 나눠요. 재명 이 작품이 가진 재미있고 독특한 지점이기도 한데요. 세 인물이 작품을 끌고 가지만 마주치지는 않아요. 비유하자면 수학에서 교집합을 표현할 때 각각 원을 그리잖아요. 서로 각자의 세계관을 가진 3개의 원이 만나는 접점이 이 작품의 핵심인데, 그게 참 매력적이에요. 세상을 공유하는 그 지점이.
극 후반에는 3개의 원이 만나게 되는 거겠죠? 재명 맞아요. 지금 만나기 시작했죠.
드라마 <홈타운>은 연이어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쫓는 형사 ‘최형인’(유재명)과 납치된 조카를 찾아 헤매는 ‘조정현’(한예리), 사상 최악의 테러범 ‘조경’(엄태구) 이 세 인물이 주축이 돼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작품과 인물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요? 그 첫 느낌이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된 동력이기도 한가요? 재명 늘 새로운 작품을 만난다는 건 배우라는 직업이 지닌 매력이자 고통의 근원이기도 한데요. 새로웠어요. 그간 형사 역할을 종종 했지만 이전과 다른 느낌을 받았고 궁금했어요. ‘어, 이작품은 다르다’ 하는 느낌이 결국 작품을 하게 만들었죠. 그 다름이 만드는 에너지를 더 들여다보고 느끼고 싶었고, 얼른 만나고 싶었어요. 막상 만나 보니 예상과는 또 다른, 알 수 없는 새로운 세계더라고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최형인이라는 인물은 훨씬 더 복잡하고 깊고 슬프고 뜨거운 사람이라는 걸 알아가고 있어요. 예리 선배님 말처럼 <홈타운>은 계속 궁금해지는 이야기예요. 지금도 이후 대본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하며 촬영하고 있어요. 일단 대본이 재미있었어요.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를 지금껏 해보지 않아서 궁금하기도 했고요. 제가 맡은 조정현이라는 인물은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죄인의 마음으로 평생 살아온 사람이에요. 배우로서 인물을 대변하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조정현이라는 사람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동정하게끔 연기로 설득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시도도 흥미롭게 느껴졌고요. 태구 연출을 맡은 박현석 감독님과 이전에 단막극 여러 편을 함께 작업한 적이 있어서 오랜만에 다시 만난다는 사실이 즐거웠고, 유재명 선배님, 예리 씨와 작품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어요. 무엇보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미스터리한 느낌이 있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극단적 전사를 지닌 인물들을 이해하는 데 따른 어려움도 있었나요? 혹은 의외의 인물에게서 자신을 발견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나요? 재명 아무래도 극단적인 삶을 겪어내는 사람들이다 보니 공감하기 힘들 때가 있죠. 배우로서 어떤 이야기에 공감할 수는 있지만 일상에서 그런 경험을 하기는 어려우니까요. 비슷한 점을 알아가기보다 이 작품은 인간 본성을 건드리는 어떤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인간이 본래 지닌 폭력성이 드러날 때가 있는데 대본의 날카로운 부분에 다시금 감탄하게 되고요.
지금까지 촬영한 부분 중 좋아하는 장면을 꼽는다면요? 예리 좋아하는 장면이라기보다는 시작부터 끝까지 비와 함께하는 이야기예요. 그 점이 작품 안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해요. 영화는 두세 시간 동안 내내 비가 쏟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드라마에서 매회 비가 내리고, 축축한 느낌을 가져가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재명 그래서 현장에서 동료 형사를 연기하는 친구에게 우리 작품에 부제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비의 계절: 홈타운’이라고.(웃음)
독특한 지점이네요. 예리 여름에 촬영 했기 때문에 한낮에도 비가 막 쏟아져요. 분위기가 어떨지 궁금해요.
미스터리 스릴러는 장르 특성상 마니아를 낳기도 하잖아요. 세 분은 미스터리 스릴러의 어떤 점을 좋아하나요? 예리 미스터리 스릴러는 다른 스릴러와 다르게 초자연적인 일이 벌어지는데, 그게 과연 초자연적인 일인지, 아니면 인간에서 비롯된 것인지 근원에 대해 다 알려주지 않잖아요. 그래서 결국 끝까지 볼 수밖에 없고요. 그런 부분이 매력이 아닐까요? 태구 하나 하나 찾아가는 과정? 장르 특성상 인물의 행동이나 대사 하나하나에 보는 사람들이 ‘어? 그래서 이런 행동을 한 건가?’ 하고 추측할 수 있다는 점이 재미를 주는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독특한 이야기와 전개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홈타운>은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연기 잘하는 세 배우가 동시에 출연할까 기대되는데요. 그간 세 분은 서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궁금합니다. 예리 두 분의 캐스팅 소식을 듣고 참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대본을 처음 보면 최형인이라는 사람이 삶을 잘 살아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근데 그 느낌이 어쩐지 선배님의 서늘한 얼굴과 잘 어울릴 것 같은 거예요. ‘아, 이거 재명 선배님이 하면 너무 멋있겠다’ 싶었죠. 동시에 극 전체적으로는 조경호라는 인물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이 캐릭터를 누가 맡는지에 따라 내가 할 수 있고, 할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요. 그래서 힘 있는 배우가 함께하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는데, (엄태구 배우라는 소식에) 다행이라고 생각했고요. 태구 저는 두 분을 알게 된…. (잠시 웃는다) 예리 그렇죠. 되게 쑥스럽긴 해요.(웃음) 태구 두 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저만의 이미지가 있는데 (말하기가) 조금 민망합니다. 음, 따뜻하고 연기 잘하는 분이라는 점이 두 분의 공통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작품에서 꼭 만나고 싶었고, 이번에는 함께하는 신이 많지 않아 아쉽지만, 다음에는 많이 마주치는 작품으로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재명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표현 같은데요. 두 사람 하면 ‘저 배우 뭐지?’ 하는 느낌을 가장 먼저 받았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배우이기 때문에 다른 배우에게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가 (대중과) 조금 다를 수 있거든요. 배우가 보기에 궁금한 배우들인 거죠.
세 배우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작품과 역할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오래 그리고 꾸준히 연기해온 분들이에요. 세 사람을 끝내 배우로 살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기인할까요? 재명 제가 생각할 때 연기의 화두는 외로움이거든요. 누가 내 옆에 있어서 혹은 없어서 느끼는 외로움은 아니고요. 연기의 본질은 욕망이고,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배우의 일 같아요. 존재의 외로움, 세상과 작품을 향한 갈증이 계속 연기하게 하죠. 그래서 새로운 작품을 만나면 흥분되고, 즐기는 것 같고요. 예리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게 아니면 잘 못하기도 하고 안 했어요. 왜 그런지 모르지만 연기는 저에게 즐거운 일이에요. 재미있고 즐거운 이 일이 다른 이유로 싫어지지 않게끔 유지하는 방법이 뭘지 평소에도 고민을 많이해요. 싫어하는 걸 얼마나 견디면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를 저울질하면서 그 힘으로 계속 연기해온 것 같아요. 태구 두 분 말씀을 듣다 보니 유재명선배님의 연기의 화두는 외로움이라는 말이 와닿고, 위로받는 느낌이 듭니다. 저보다 이 일을 더 많이 한 선배님이 외로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음, 저는 배우가 직업이니까,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자, 열심히 하자 하고 임하고 있습니다.
배우로 살아가면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 혹은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예리 앞서 대화 중에 언급한 ‘따뜻한데 연기 잘하는 사람’에 엄태구 배우도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일을 하면서 인격적으로 잘 갖춰진, 좋은 배우와 호흡하며 함께 연기할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인 것 같아요. 결과도 중요하지만 배우에게는 과정도 중요하거든요. 촬영하는 동안 지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는 건 결국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좋은 배우와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이번 작품이 더 좋고요. 태구 현장에서도 그렇지만 촬영 들어가기 전에도 큰 힘이 됩니다. 예리 어떨 땐 그게 전부일 때도 있어요. 태구 저는 연기가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도 있고, 매번 어렵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 이 한 가지 생각만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재명 최근에 가족이 생기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변화가 많았어요. 지금은 그 가운데서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리하는 시점인 것 같아요. 이전에는 배우는 늘 변해야 한다, 더 새로운 것을 추구하자 하고 힘이 바깥으로 넘쳤다면 지금은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되짚어보고 있어요.
이 작품이 대중과 어떻게 만나길 기대하나요? 예리 이제는 무엇을 봐야할지 모를 정도로 채널이 많잖아요. 한 해만 지나도 잊히는 작품도 많고요. 작품을 시작할 때 ‘올 한 해 기억에 남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자’ 하고 다짐해요. ‘이번 가을에 이 드라마 진짜 재미있게 봤어’ 하는 이야기만 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재명 우리 작품에 시청자들이 다소 낯설어할 지점이 있는데 오히려 그게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낼 거라 생각해요. 충분히 즐길 만한 새로움이 있는 작품입니다. 태구 제가 대본을 처음 봤을 때 느낀 신선함과 재미가 고스란히 전해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