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교환 D.P. 킹덤 모가디슈 부산국제영화제

코트 로에베(Loewe), 팬츠 디올 맨(Dior Men), 슈즈 반스(Vans).

구교환 D.P. 킹덤 모가디슈 부산국제영화제

레더 재킷 토니웩(Tonywack), 터틀넥 프라다(Prada).

구교환 D.P. 킹덤 모가디슈 부산국제영화제

재킷 뉴인(NEU_IN).

 

올해 연이어 선보인 <킹덤: 아신전> <모가디슈> <D.P.>가 크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별개로 우주의 기운이 구교환 배우에게로 모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우주의 기운…, 감사한 표현이지만 설사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먼저 차단하려는 편이에요. 보다 많은 관객들과 만나는 건 흥분되는 일이지만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며 만든 과제들에도 지금과 동일한 무게와 흥분, 스트레스를 안고 다가갔기 때문에 만약 그런 현상이 있다면(웃음), 존재한다 해도 제게 큰 변화를 만들 것 같지는 않아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구교환이라는 사람의 맥락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아요.

최근 ‘구교환 역주행’을 시작한 이들도 많습니다. 근데 이 여정이 굉장히 지난하잖아요. 대학 때 작품까지 보시려면 도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OTT에 없는 작품들도 많아서 찾기가 굉장히 힘드실 텐데….

어느 작품을 먼저 봐줬으면 싶나요? 공개는 했지만 주목받지 못한 애정 어린 수많은 단편과 무대들이 있어요. 보여드릴 방법이 없네. 일단 지금은 <죽기직전 그들>(2008)과 <희야>(2014)가 생각나네요. <죽기직전 그들>은 졸업 작품인데 기회가 된다면 공개하고 싶어요. 아? 마리끌레르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해주실래요? 그럼 일단 감독님한테 전화를 해야겠다. ‘응, 감독님? 마리끌레르에서 독점 공개를 하자, 지금 빨리, 그래 얼마를 받을까?’(좌중 폭소)

작품 안에 자유롭게 머무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꾸며지지 않은 것 같고, 연기가 아닌 것처럼 ‘보이고, 느껴지게’ 하기 위해 어떤 시도들을 하나요? 내가 관객이고, 시청자라고 생각하고 그 장면을 시뮬레이션 해요. 하지만 그보다 선행하는 것은 거짓말하지 말자, (연기를) 전시하거나 과시하지 말자고 생각해요. 이야기 속 상황과 역할이 저에게 설득이 되면 이후 레퍼런스들은 지금껏 제가 열광했던 대중문화에서 찾아오는 것 같아요. 반드시 영상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공연, 노래, 미술 혹은 살면서 봐왔던 사람들, 풍경들에서요. 좋아하는 것들을 한 장면에 모아놓는 거죠. 그래서 만약 제 연기에서 재미를 느끼셨다면 아마도 저와 코드가 맞는 분들이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 <아이들>의 ‘진욱’부터 <반도>의 ‘서 대위’까지 호오를 판단하기 어려운 캐릭터에도 한 스푼씩 미묘한 사랑스러움을 더하고야 맙니다. 이는 배우의 장기라고밖에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맡은 인물에 최대한 궁금해하며 다가가요. 다 알아버릴 것 같은 인물이 아니라 궁금한 사람에게 관심이 생기잖아요. 저 사람 궁금하다, 누구지? 할 때 신경 쓰이기 시작하거든요. 제가 인물에게 다가가는 태도도 그런 것 같아요. 스스로 쉽게 정의 내리거나 의도를 보이려 하지 않도록 경계하고요. 우리는 다 알고 있잖아요. 어떤 사람의 의도가 뻔히 보일 때, 어떻게 보이고 싶어서 하는 행동인지 파악이 빨리 돼요. 근데 그게 영화 프레임 안에서는 더 잘 드러나요. 관객들이 집중하고 몰입해서 보니까. 최대한 시나리오의 첫 느낌을 유지하면서 감정적으로는 확장하되 표현에 있어서는 과시하지 않으려 해요. 그것이 사랑스럽다라는 피드백으로 돌아오면 큰 힘이 돼요.

 

 

구교환 D.P. 킹덤 모가디슈 부산국제영화제

레더 재킷 토니웩(Tonywack), 터틀넥 프라다(Prada), 안경 디올 아이웨어 바이 디앤티 패션(Dior eyewear by DNTFashion).

구교환 D.P. 킹덤 모가디슈 부산국제영화제

코트 에스티유(STU), 니트 풀오버 로에베(Loewe), 레더 팬츠 51퍼센트(51percent), 슈즈 프라다(Prada).

구교환 D.P. 킹덤 모가디슈 부산국제영화제

터틀넥 프라다(Prada).

 

자신의 인물 해석에 대해서는 얼마나 확신을 갖는 편인가요? 확신은 있죠. 그래야 연기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감상을 명확하게 만들지는 않으려고 해요. 왜 사람들은 보통 자기 감정을 잘 안 들키려고 하잖아요. ‘너 화났지?’ 하고 물으면 누가 자기가 화났다고 답하나요. ‘아니, 화 안 났는데?’ 하잖아요. 근데 저는 그게 더 화난 것 같거든요.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 같아요. 내 쪽에서 이미 닫아놓고 표현하기보다는 범위를 크게 잡고 줄여가는 편이에요. 때때로 첫 테이크는 마음대로 해보기도 해요. 그럼 이제 온갖 민원이 들어와요.(웃음) ‘그게 뭐냐, 아니다, 왜 카메라 앵글을 벗어났느냐’ 하고. 곧바로 아니구나 깨닫고 점점 좁혀가요. 그리고 도중에 감독님이 정확하게 어떤 포인트를 보여달라고 하기도 하고요. 뭔가 발견하듯이 혹은 발견 당하듯이 연기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완성한 <D.P.>의 ‘한호열’은 첫 등장부터 강렬해요. 배우의 얼굴이 아닌, 엉덩이로 먼저 시작되는. 등장과 함께 극의 공기를 완전히 전환하잖아요. 어딘가 가볍고 심드렁한 등장이지만 정작 본인은 첫 촬영이었으니 큰 긴장을 감당해야 했을 것 같은데요? 현장마다, 장면마다 다르겠지만 긴장을 많이 해요. 방법을 계속 찾는 것 같아요. 한호열을 처음 소개하는 장면이잖아요. 제 이름을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이름이 적혀 있는) 팬티가 구겨져 있으니까 그걸 펴면서 한호열을 보여주는 거죠. 하필 그 부위가 엉덩이여서 제가 봐도 힘든데(웃음) 잠깐이지만 뒷모습으로 궁금증을 주겠다는 감독님의 의견을 들었고, 그 디렉션이 제게 힌트였어요. 이 인물이 2부에 등장할 때 어떤 관객은 숨을 좀 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감독님의 디렉션에 충실한 배우입니다.

애드리브에 능한 배우가 아닐까 짐작했어요. 신의 목적은 명확히 하되 거기서 나오는 어떤 표현은 자유롭게 하고 싶어 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그 또한 감독님과 상의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요. 현장에서 배우로서는 감독의 의도, 작가의 시나리오를 잘 옮기는 것이 우선이라고 봐요. 반대로 연출자로서 참여할 때는 잘 만들자, 그리고 배우들에게 잘 기대자.(웃음) ‘우리 배우들, 내 허술함을 채워주세요’ 하고, 배우 할 때는 ‘제 부족한 연기를 시나리오로 채워주세요’ 하고.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맡고 장건재 감독이 연출하는 오컬트 시리즈물 <괴이>를 촬영하고 있습니다. 맡은 역할이 괴짜 고고학자라는 설명이 있던데요. 괴짜는 아니에요. 괴짜라고 명명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요. 이 정도인 것 같아요. 작가주의 학자. 아무도 연구하지 않던 것에 파고든 학자. 근데 그의 그런 면을 괴짜라는 프레임에 가두는 건 그 사람이 그 시간을 보낸 데에 대한 존중이 없는 설명인 거 같아요. 아주 특별한 것을 연구한 훌륭한 사람이에요. 왜 흔히 세속적인 태도로 보면 한 학문 안에서도 되는 거 하는 사람이 있고, 안 되는 거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이 사람은 주목받고 잘될 기회가 있었지만 소위 안 되는 것을 선택한 거예요. 우리 주변에 있는 한 사람일 뿐이죠.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며 삶을 보는 시선도 변화하는 것을 느끼나요? 작품을 접하면 접할수록 삶이 영화보다 더 영화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는 삶을 이길 수 없어요. 작품 속 제 모습은 실제 인간보다 더 입체적이지 못하고요. 만약 그 입체성을 옮길 수 있다면 저는 이 일을 그만해도 될 거예요. 지금의 저는 정보를 주는 데 애쓰는 배우 같고요. 하지만 노력하죠. 정보를 주되 어떤 마음을 전달하고자 하는데 늘 어려워요. 제가 바라봤던 한 순간을 영화에 옮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걸 향해 계속 가고 있는 거 같아요. 그 순간이 1초라도 제대로 옮겨질 수 있다면 성공일 것 같아요.

 

 

구교환 D.P. 킹덤 모가디슈 부산국제영화제

코트 로에베(Loewe), 링 쿼르코어×아몬즈(Quarqor×Amondz), 슬리브리스 톱과 체인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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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 셋업 뉴인(NEU_IN), 네크리스 플랑(Flan).

구교환 D.P. 킹덤 모가디슈 부산국제영화제

니트 풀오버 디올 맨(Dior Men).

 

어떤 순간을 볼 때 영화로 옮기고 싶어요? 제가 오해했던 순간이요. 내가 다 알고 있다고 확신했거나 함부로 판단했는데 그게 오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내 생각과 빗나가는 순간들이 저에게는 흥미롭게 다가와요.

영화 안에서 호랑이 열정이 솟을 때는 언제예요? 편집할 때요. 작업을 마치고 돌아와 편집할 때 ‘아, 잘못 찍었다’(좌중 폭소) 빨리 극복하자 어떻게든,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한다. 호랑이 열정! 편집할 때 가장 즐겁기도 해요. 현장에서 시끌벅적하게 사람들과 한바탕 놀 때도 즐겁지만 돌아와 혼자 모니터 앞에 앉아 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아해요. 왜 그랬을까 반성도 하지만 동시에 그 시간을 돌파하는 게 즐겁더라고요. 의도에서 벗어난 것들은 어떻게든 의도대로 될 수 있게 추가로 뭘 해봐야겠다 고민도 해보고요. 한 번 더 창의적이 되는 순간 같아요. 한데 이 또한 고마운 현장의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요.

20대 초반에 영화를 대하는 태도와 지금 영화를 바라보고 취하는 태도에 변화를 느끼나요? 그 태도가 변화하면 아마 영화를 안 할 거 같아요. 이야기 안에서 보탬이 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에요. 그래서 배우도, 연출도, 편집도 하고 싶은 거겠죠. 그만큼 이야기라는 것에 매력을 크게 느껴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태도는 20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오고 있고요. 만약 그 태도가 바뀐다면 다른 일을 하게 될 거 같아요.

영화를 빼면 배우 구교환에게 무엇이 남나요? 아주 많은 것들이 남죠. 영화로 저라는 사람이 이야기되는 건 축복이지만 때때로 ‘내가 그만큼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그렇게 ‘영화, 영화’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지금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 사실 너 그만큼 안 좋아해.’(웃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애정을 두고 있는 다양한 것들이 있어요. 어떤 한 가지에 함몰되지 않으려고 해요. 그것이 영화라고 할지라도. 예전에 어떤 어르신이 해주신 말이 있어요. ‘너를, 네 인생을 영화와 교환하지 말라.’ 그 말을 들은 순간 지금의 태도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영화 외에 지금 가장 큰 화두는 뭐예요? 지금 중요한 게 무어냐고 묻는다면 ‘지금’이에요. 쓰고 있는 시나리오도 큰 화두지만 그보다 우선은 ‘저녁은 뭘 먹을까’겠죠. 저녁을 맛있게 먹어야 시나리오 쓸 기분이 나니까요. 그거 안 먹고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모두가 지금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지금을 살기가 어려워요. 자꾸 어제와 내일이 끼어드니까요. 어차피 내 계획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돼요. 연기도 그렇고 늘 계획하고 준비했던 것들은 무너지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계획은 무너진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니까 제가 되게 유리해지더라고요. 물론 늘 준비는 하지만, 준비한 계획들이 빗나가고 어그러진다고 인지할 때 더 유연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꽉 차게 준비하지 않아요. 만약에 준비했다면 더 경직될 거 같거든요. 오늘 우리 영상 인터뷰 질문이 ‘나의 영화로운 순간’이잖아요. 나에게 영화적인 순간이 뭘까 하고 어제부터 고민했다면 아마 스스로를 포장하려고 했을 거예요. 아까도 포장을 좀 한 것 같긴 한데.(웃음) 갑자기 딱 생각난 대답이었거든요. 근데 그게 진짜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