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전에 행사장에서 선미 씨를 몇 번 본 적 있는데, 언제가 마지막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코로나19가 번지기 시작한 이후 행사장에 얼굴을 비칠 일이 거의 없었어요. 팬데믹 상황이 3년째 이어지니까 너무 지쳐요. 너어무! 코로나19만 아니면 오늘 해외의 멋진 곳에서 화보를 찍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현실은 논현동의 스튜디오군요.(웃음) 그래도 화보의 분위기 덕분에 따스한 계절을 미리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화보를 본 독자들도 ‘이제 봄이 오는구나’ 하고 실감할 것 같아요.
휴양지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이번 화보에 담기죠. 선미 씨가 입은 막스 마라 2022 S/S 컬렉션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슬픔이여 안녕>의 배경이 된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풍광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해요. 프로방스와 그라스를 비롯한 프랑스 남부 지역에 꼭 가보고 싶어요. 여행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곳에 대한 로망이 있거든요. 한적하면서도 로맨틱 한 분위기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져요.
그곳을 찾아갈 날이 머지않아 오기를 바랍니다. 서울에서 봄을 맞는 지금, 선미씨는 무엇을 할 때 제일 즐거운가요? 운동이요. 일하는 현장이나 작업실에 갈 때가 아니면 집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편인데, 1년 전쯤 제 동선에 헬스장이 추가되었어요. 운동하면 생기를 얻을 수 있더라고요. 운동에 빠진 저를 본 원더걸스 멤버들이 “네가 운동을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라며 무척 놀라워했어요.
원더걸스 리더였던 선예 씨와 예능 프로 <엄마는 아이돌>에서 함께 선보인 무대가 화젯거리였어요. 오랜만에 같이 무대를 완성한 만큼 여운이 짙게 남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요. 2009년 이후로 선예 언니랑 함께 무대에 선 적이 없었어요. 13년 만에, 어느덧 30대가 된 우리 둘이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이 연습할 때도 믿기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음악도 제 솔로 곡 ‘가시나’였잖아요. 중학생이던 동생이 자라서 혼자 선보인 음악으로 합동 무대를 꾸민 언니의 마음이 뿌듯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도 육아에 집중하던 언니가 다시 무대를 향한 꿈을 가졌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했고요. 선예 언니는 무대에 올라야 할 사람이라는 걸 잘 알거든요.
최근 데뷔한 아이돌들을 보면서 나이가 참 어리다고 느꼈는데, 원더걸스로 활동을 시작할 때 선미 씨의 나이도 그들과 비슷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여러 선후배 아티스트들을 만나면서 얻는 것이 있을 듯해요. 이젠 후배들이 “저 힘들어요” 하면 조언해줄 수 있는 선배가 되었어요. 그 시기를 거쳐온 저에게도 서로 편하게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좋은 선배가 많고요. 선후배들과 교류하면서 저와 연령대가 다른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죠.
얼마 전 데뷔 15주년을 맞았어요. 지나온 여정을 종종 돌아보기도 하나요? 과거에 연연하는 편은 아니지만, 제가 어떻게 음악을 해왔는지는 살펴보게 돼요. 그 시간들이 지금 제 음악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요. 현재의 선미는 과거 어느 시점의 선미보다 풍부한 감정을 지니고 있을 테고, 그만큼 음악을 통한 표현에도 변화가 생겼을 거예요. 그게 제가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해나가야 할지 힌트가 되어주기도 하고요.
그 힌트는 구체적으로 무엇이에요? 16년 차 가수가 되었는데도 아직 음악적으로 시도해보지 않은 것이 아주 많더라고요. 요즘 ‘고인다’는 표현을 흔히 쓰잖아요. 몇 년 전엔 고일 뻔했는데, 이제는 그 경계를 깨나가는 기분이 들어요. 스스로 진부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지난해 마리끌레르와 한 인터뷰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여성이 많아지는 현상을 접하는 게 즐겁다”라고 말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음악을 통해 이야기하는 여성으로서 선미 씨가 가진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명확해요. 무대에 서 있는 약 4분 동안 수많은 카메라가 저만 잡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깊이 몰입할 수 있는 무대를 선보이려고 해요. 한편 곡 작업을 할 때는 음악으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노력해요. 누구나 각자 마음속에 약한 지점이 있잖아요. 무대 위 화려한 선미뿐 아니라 (가면 우울증을 다룬) ‘Black Pearl’을 만든 선미를 사랑해주는 대중도 있기에 더 열심히 작업하게 돼요.
앨범마다 작사와 작곡에 참여하고, 전반적인 컨셉트도 직접 잡는다고 들었어요. 선미 씨의 음악을 일컫는 ‘선미 팝’이라는 용어도 생겨났고요. 제 이름을 내건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저에게 힘이 돼요. 자부심과 함께 부담감도 들고요. 이 장르를 스스로 정의할 수 있도록 부단히 개척해나가야겠죠.
선미 팝이 지닌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면요? 마냥 기쁘거나 슬프거나 즐겁기보다는 복합적인 감정을 담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 보라빛 밤’은 트랙을 처음 들었을 땐 설레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떠올렸는데, 가사는 결국 짝사랑에 관한 슬픈 이야기예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제 음악 안에서는 이런 식으로 대립적인 감정이나 분위기가 서로 충돌해요.
선미 씨가 앞으로 선보일 음악에도 이런 충돌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사람은 생각과 감정이 단순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음악과 뮤직비디오, 무대를 통해 그 감정들을 최대한 표현해내고 싶어요.
음악 안에 여러 감정을 표현할 때면 마치 연기하는 기분이 들 것 같기도 해요. 맞아요. 배우가 작품마다 새로운 연기를 하듯, 가수는 음악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죠. 제‘ 꼬리’ 무대를 보고 있으면 인간 혹은 다른 동물의 살기가 느껴져 조금 무섭기도 해요. 그런데 전 무대에서 내려오면 차갑지 않고 오히려 상냥한 편이거든요. 그래서 무대에 서 있을 때면 저 자신이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같아요. 무대가 참 자유로운 공간이라고 느끼고요.
선미 씨가 무대에서 연기하는 인물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곱게 미친 사람’ 같아요.(웃음)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저의 첫 온라인 콘서트 제목이기도 한 ‘Good Girl Gone Mad’라는 문구를 적어놓았어요. 리 한나의 ‘Good Girl Gone Bad’를 본뜬 문구인데, 제 성격상 나쁜 사람이 되진 못해도 무대에서 미친 듯이 표현할 순 있겠더라고요. ‘선미는 저 연차 에도 무대를 아주 열정적으로 한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 게 그 덕분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걸스플래닛999>의 마스터, <싱어게인 2>의 심사위원으로 무대를 향한 갈망을 품은 이들을 많이 만났죠. 무대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는 시간이었겠어요. 소중함의 무게가 더 무겁게 다가왔어요. 지금의 저는 무대에 서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에요. 언젠가 이 무대가 당연하지 않은 날이 올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무대 위의 순간순간이 귀하게 느껴지고, 제가 아주 큰 복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올해도 열심히 무대에 오를게요. 진짜로요.
기대하고 응원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질문할게요. 3월 8 일이 세계 여성의 날이잖아요. 선미 씨가 가장 좋아하는 여성은 누구인가요? 음…, 자기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을 보면 참 멋있잖아요. 어떤 작품에서든 본인이 맡은 역할을 훌륭히 연기하는 샤를리즈 테론이 그런 사람 중 한 명인 것 같아요. 그리고 올리비아 로드리고도 귀엽더라고요. ‘너 걔랑 잘 되고 있더라! 잘됐네, 굿 포 유’ 하는 식의 솔직한 감정이 담긴 가사가 참 예뻐요. 또 신민아 언니, 김혜수 선배님…어떡하죠? 너무 많네요. 다 좋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