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성취와 영광을 툭툭 털어내고 내일로 가는 것. 오늘의 보아가 가장 잘하는 일.

아우터 Givenchy.
드레스 Blumarine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지난밤(인터뷰일 기준) 최고 시청률 15.6%를 기록함과 동시 에 ‘강지원’의 새로운 고난, 최후 빌런 ‘오유라’가 등장했다. 강렬한 첫 등장, 어떻게 봤나?
상황적으로는 본방 사수를 할 수도 있었는데, 볼 자신이 없어 VOD로 빠르게 돌리면서 봤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메시지가 오더라.(웃음) 회사 후배는 “언니, 저리 가요. 일본으로 다시 가세요” 하고, 초등학교 동창들은 “내가 너 진짜 욕 좀 해도 되니?” 하고.

화제작이 가진 파급력과 무게를 짊어지게 됐다. 극적인 전개가 많은 작품이니만큼 현장에서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땠나?
촬영하면서는 ‘지혁(배우 나인우의 극중 이름)아, 나에게 한 번이라도 웃어줄 수 있겠니. 외롭다, 이 촬영장’ 하고 생각했을 정도로 외로웠다. 내 편이 아무도 없으니까.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심한 말을 내뱉거나, 듣는 일이 많아서 그런 감정이 내 안에 계속 쌓였다. 촬영하면서는 동료들과 “진짜 못되지 않았냐, 어떻게 인간이 저래?” 하는 상황도 많았지만, 한편으로 오유라가 참 외롭겠다 생각했다. 욕심과 자격지심이 나쁜 방향으로 발달한 사람이지 않나.

한 인물에 몰입하다 보면 오유라를 그저 악역으로만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들 것 같다.
오유라라는 친구는 왜 이렇게 집착이 강해졌을까 생각해보면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갖고 싶은 건 당연히 손에 넣던 사람이다. 소유욕이 잘못된 집착으로 변한 거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이건 너의 것이 아니야’라는 말을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다. 점점 더 못돼진다. (일동 웃음) 그래도 지금은 그나마 착한 척하고 있는 거다.

배우뿐 아니라 프로듀서로서의 도전도 진행 중이다. NCT WISH의 프로듀싱을 맡아 프로듀서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NCT WISH와 함께 어떤 비전을 그리고 있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같이 선발한 친구들이라 애정이 많이 간다. 2002년생부터 2007년생까지 모여 있는 극MZ 팀이라 처음에는 ‘내가 어떻게 감당해야 하지?’ 싶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내가 해온 방식으로 조언할 수밖에 없는데 다행히 귀 기울여줘서 굉장히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비전이라 하면 NCT WISH만의 청량한 기운을 보여주고 싶다. 그동안 NCT가 선보인 음악보다는 더 이지 리스닝 쪽으로 가져가면서 퍼포먼스는 퍼포먼스대로 보여주려 한다.

여정을 시작하며 무엇을 기대하나?
NCT WISH의 가장 큰 차별점은 한일 동시 데뷔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K-팝이 한국에서 먼저 성공한 이후 세계로 뻗어나갔다면 이 친구들은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출발하기 때문에 두 나라에서 얻는 반응을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뮤직비디오도 한국어 곡과 일본어 곡을 동시에 찍었는데, 스토리를 조금씩 바꿔 버전을 달리할 예정이다. 다행히 일본 팬들이 프로듀서 보아가 선보이는 팀은 과연 어떤 팀일지 기대를 많이 해주신다. NCT WISH에 대한 기대도 많이 높은 상태다. 데뷔 무대를 선배들과 함께 에스엠타운라이브도쿄 돔에서 선보이는 만큼 이 공연을 통해 이 친구들이 많은 걸 배웠으면 좋겠다.

도쿄에서 데뷔 무대라니… 일찍이 보아가 닦아놓은 길 아닌가. 뿌듯한 마음은 들지 않나?
뭐… 알아서 잘하겠지.(웃음) 확실히 그건 있다. 뿌듯하기보다는 이 친구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보인다. 그간 SM에서 잘하는 그룹이 많이 나왔지만, 유난히 애정이 간다. ‘요 녀석들 잘해야 돼’ 하고.

아우터 Givenchy.
드레스 Self-Portrait.
드레스 Pinkong Bride.
드레스 Blumarine, 헤어피스 Alien Plant Artist Hai Ihwa.

‘한국인 최초 오리콘 1위’를 시작으로 최초의 기록을 적다가 너무 많아 포기했다.
최연소, 최초, 최다.(웃음)

이 타이틀들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자문하게 되는 순간은 없었나? 안정적인 위치에 도달했을 때 도전하지 않을 수만 가지 이유들을 뛰어넘은 동력은 무엇이었나?
일을 즐기는 사람이라… 글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 정도면 됐어’ 같은 말은 안이한 자기 합리화가 아닐까. 물론 그런 태도가 틀렸다는 건 아니다. 한데 세상의 변화가 어느 때보다 빠르지 않나. 이전의 내 기록이나 성취를 기억하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있다. 그때 일은 그때 일이고, 지금의 나는 이 일이 즐거우니까 지금 이 순간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해나가고 싶다.

과거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태도가 보아의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자유롭게 할 것 같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나라는 사람, 성격이나 추구하는 이상으로 미뤄 보면 과거의 성취는 내게 그저 과거일 뿐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전국에서 몇 등을 했지’, ‘그때 좀 잘나갔어’ 하며 그걸 가슴속에 끌어안고 평생 그 영광으로 사는 사람은 없지 않나. 당장 출근하기 바쁘고, 오늘 해야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는데 과거를 곱씹으며 사는 일이 가능한가. 거기에 매달린다고 해서 내 미래가 달라지나.

MBTI가 T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맞다. INTJ다.(웃음)

최초를 계속 일궈온 삶이 인간 보아에겐 무얼 남긴 것 같나?
이왕 이렇게 된 거 그 기록들이 깨지지 않으면 좋겠다.(웃음) ‘한 만큼 돌아온다’라는 말을 내내 경험하며 살아왔다. 결과의 성패를 떠나 해나가는 과정에서 ‘적어도 내가 후회할 일은 하지 말자’, ‘최소한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은 하자’라고 되뇐다. 음악 관계자들이 “쟤네는 지금 동요를 내도 1위 해”라는 말을 종종 한다. 잘될 때는 뭘 해도 잘된다는 의미일 거다. 하지만 그걸 얼마나 지속하느냐가 관건이겠지. 나처럼 오래 활동한 사람들은 매번 좋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으니까. 후회할 만한 과정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뭐든 설렁설렁 하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왜 연인들도 그렇지 않나. 내가 다 해준 사람에게는 미련이 없지만 내가 충분히 잘해주지 못한 것 같고, 받기만 한 것 같을 때는 헤어진 후에도 미련이 덕지덕지 쌓여 몇 달씩 구차한 삶을 살지 않나.

요즘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음악계에서 보아처럼 지구력 있는 아티스트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는 지구력 하나는 있다. 그리고 내 지구력을 받쳐주는 회사가 있고, 스마트한 직원들이 있다. 올해 일하면서 각자 자기 위치에서 자기 일에 재능 있는 직원들이 있다는 걸 크게 느꼈다. 이런 사람들과 새로운 걸 하면 재미있겠다, 지금까지 선보인 음악과는 또 다른 무언가가 나올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누구에게나 성장은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요즘 아티스트 보아는 어느 부분에서 성장하고 싶나?
올해는 연초부터 심사를 받고 있는 느낌이 든다.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NCT WISH 데뷔로 프로듀서 보아로 심판대에 오를 것 같다. 새 앨범도 곧 공개되니 그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겠지. 어떤 말을 들어도 의연할 수 있게 마음이 단단해지면 좋겠다.

24년 동안 심사를 받아왔음에도 심사라는 건 익숙해지는 일은 아닌가 보다.
그런 것 같다. 근데 회사원도 그렇지 않나? ‘아, 이거 반려당하면 어떡하지?’ 하는 식으로. 모두가 결국 각자의 위치에서 누군가의 심사를 받으며 사는 것 같다. 하다못해 부모 자식 간에도. 단지 그 심사와 평가가 매스컴에 노출되는 직업인가 아닌가의 차이인 것 같다. 더군다나 올해는 한 가지 영역에서만 평가받는 게 아니다 보니… 맷집을 키우고 있다.

오랜 시간 동시대 대중에게 어떤 존재로 각인되고 싶은가? 이상향은 계속 달라지겠지만 지금 이 순간 보아는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나?

거창한 생각은 없다. 그저 누군가의 인생 한 페이지에 있는 친구였으면 좋겠다.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은 ‘No.1’을 들으면 2002년 월드컵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Only One’이라는 노래로 이별을 떠올리고, 또 누군가는 ‘Better’를 들으며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떠올리지 않을까. 이처럼 각자의 삶에서 음악을 통해 한순간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오랫동안 나를 좋아해주는 팬들에게 “인생을 같이 걸어가는 친구 같은 존재였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면 굉장히 행복한 인생을 살아온 아티스트이지 않을까.

드레스 Self-Portra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