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불확실하잖아요. 그러니까 그 불확실함을 즐겨야만 해요.” 로운이 확신을 갖게 된 순간.
한창 새 드라마 촬영 중이잖아요. 이번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도 전작을 봤어요?
<혼례대첩>도 보고, <이 연애는 불가항력>도 봤죠. 그런데 이번에는 닿아 있는 게 없어서 어렵더라고요. 조금 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자, 더 내려놓고. 이런 생각만 했어요. 공부하듯이 하지 말고 어떤 감을 한 번 믿어보자 싶고요.
공부하듯이 분석하는 편인가요?
그랬어요. 대본을 아주 많이 읽고, 상대방의 대사까지 외울 정도로 공부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그렇게 해도 어떤 분위기만 느껴지고, 뭔가 선명히 그려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감독님, 상대 배우 믿고 가보자 했는데, 너무 편하더라고요. 저로선 새로운 접근인데 되게 재미있고 매일의 현장이 기대되는 거죠.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해도 무방하겠는데요.
그렇게까지 말하면 너무 거창하고요.(웃음) 그냥 나한테 좋은 자극이 일어나고, 좋은 인연이 왔다는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좀 전에 얘기한 재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려준다면요?
모니터를 보면서 감독님이 “어땠어?” 하고 물어보세요. 그럼 “저는 이랬는데, 어떠셨어요?” 하고 “나도 그랬어” 하시면 “그런데 이게 맞을까요? 저 한 번만 다시 해볼게요” 해요. 그러면 감독님이 “이것도 괜찮다” 하시고. 이런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요. 상대 배우와도 대본에는 없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것을 주고받을 때, 그게 각자의 캐릭터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오는 거잖아요. 그때의 희열이 있더라고요.
정답이 없는 세계에서 나의 좋음과 너의 좋음이 통하는 순간 말이죠?
네. 모든 게 불확실하잖아요. 아무리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하고, 유명한 감독이나 배우가 한다고 해서 결과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까 그 불확실함을 즐겨야만 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현장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또 그 사람들을 보며 자격지심을 느끼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내 연기를 준비해서 하는 것, 그것밖에 없어요. 순간적으로 발현되는 에너지를 기대하면서요.
지난 작품 중에서 그 에너지가 발현된 순간이나 장면을 떠올려본다면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어요.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 22화에 죽기 전에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고 싶다는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단오’(김혜윤)를 위해 ‘하루’(로운)가 별 모양으로 빛이 들어오는 커튼으로 밤하늘과 같은 공간을 만들어 선물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 신을 연기하면서 어쩐지 슬픈 마음을 품고 있지만, 단오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하루라면 그랬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결국 그렇게 연기한 게 엔딩으로 쓰였어요. 어떤 캐릭터로서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감정이 이런 거구나 하고 경험한 순간이었어요.
저는 반대로 엉엉 우는 신들이 떠오르는데요.(웃음) <어쩌다 발견한 하루>를 비롯해 <내일> <이 연애는 불가항력> 등에서 유난히 우는 장면이 많은 배우잖아요.
많이 울었죠. 아무래도 감독님들이 저를 울리고 싶은가 봐요. 왜 그러시는지는 모르겠는데(웃음) 어쩐지 앞으로도 울 일이 아주 많을 것 같아요, 하하.
연기 밖에서는 어떤 에너지를 발현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영화와 드라마 밖도 정답이 없는 세계잖아요. 그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싶어요?
연기할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저에 대한 확신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앞으로 되고자 하는 지향점에 대한 확신은 있어요. 내가 배부른 것보다 네가 배부른 게 더 좋고, 내 마음을 다 주어도 아쉽지 않은, 아낌없이 나누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고 싶어요. 진심으로 포용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요. 좀 뻔하고 모호한 말일 수도 있는데, 저는 이게 잘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 고백을 자주 하는 건가요? 함께한 배우, 스태프에게 애정 표현을 많이 하기로 유명하잖아요.
많이 하죠. 좋아하는 동료, 친구, 가족들에게 쉴 틈 없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를 외치는 것 같아요.(웃음) 자주 한다고 돈 드는 것도 아닌데요. 너무 자주 해서 이 말이 가볍게 들리진 않을까, 혹은 부담스럽게 느껴지진 않을까, 이런 고민은 안 해요. 누군가는 제 진심을 그대로 받아들일 거고, 또 누구는 진심이라 생각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리액션을 신경 쓰면 그 말의 순수성이 퇴색하는 것 같아요. ‘사랑해’가 어디로 가서 어떻게 해석되더라도 ‘그냥 난 해!’ 이런 마인드입니다.(웃음)
자신에게도요?
네, 다만 굉장히 엄격한 과정을 거쳐서 필요하다 싶을 때만요.(웃음) 아주 아주 아주 가끔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