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서 그리고 영화 안에서, 온 힘을 다해 응시하는 한 인간. 배우 안도 사쿠라.

안도사쿠라 SakuraAndo 마리끌레르영화제 MCFF 0.5mm MarieClaireFilmFestival
에크루 컬러 코튼 재킷과 톱, 미디스커트, 카프스킨 레이스업 로퍼 모두 Chanel.

오늘 촬영장에 오는 길에 힘을 내려고 영화 <백엔의 사랑>을 다시 봤습니다. 이 영화의 72분 전후 구간을 특히 좋아하는데요. 주인공 ‘이치코’(안도 사쿠라)가 훈련에 매진하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없던 용기도 생기고 마음의 바닥에 뭔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어요.

저도 같은 마음이에요. 다만 일부러 찾아서 보는 편은 아니고요. 영화는 기회가 있으면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보고 싶지만, TV로 다시 보는 일은 거의 없어서요. 그래서 오랜만에 상영 기회가 생기면 한번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이번 마리끌레르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0.5㎜>도 그런 이유로 보고 싶었고요. 이 작품에 제가 출연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영화’라는 형태 안에서 같은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요.

오는 4월 25일, 마리끌레르 영화제(MCFF) 앰배서더 특별전에서 상영하게 될 영화 <0.5㎜>는 한국에서 정식 개봉되지 않은 작품이죠. 안도 사쿠라 배우 덕분에 한국 극장에서 여러 관객과 함께 볼 수 있어 올해 영화제가 더욱 뜻깊습니다.

저도 기쁩니다. 영화는 국경과 시대를 넘어 사람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아주 멋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시간을 직접 체험하고,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감각과 정서로 그 안에 스며들게 되니까요. 그 순간을 살아가는 존재들-꼭 사람이 아니더라도-이 담겨 있을 때, 그 시간은 더욱 선명해지고, 그래서 더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안도사쿠라 SakuraAndo 마리끌레르영화제 MCFF 0.5mm MarieClaireFilmFestival
안도사쿠라 SakuraAndo 마리끌레르영화제 MCFF 0.5mm MarieClaireFilmFestival

여러 작품 중 <0.5㎜>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배우에게 이 작품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요?

영화관에서 이 작품을 다시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는 생각에 한국 관객에게 꼭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제 언니가 감독을 맡은 작품이라 개인적으로도 각별하고요. 그렇다고 사적인 감정에 치우치기보다 뉴트럴하다고 할까요. 담담하게 ‘아, 참 좋은 영화다’라는 감각으로 남아 있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사랑스럽고 강하며 자유롭습니다. 다소 거칠고 울퉁불퉁하지만 쉽게 미워할 수 없는 영화예요. 한편으로는 판타지처럼 느껴지고, 어딘가 펑크적 기운도 있으면서 동시에 엄숙한 결을 함께 품고 있습니다. 그 순간에만 존재했던 제가 꾸밈없는 ‘사와’의 모습으로 생기 있게 담겨 있고요. 저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이유 없이 눈물이 납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선배님들과 함께 연기할 수 있었던 시간 역시 제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영화 <0.5㎜>를 보는 내내 2013년에 만든 작품이지만, 영화에 담긴 정서와 시선은 2026년 동시대 한국 관객에게 여전히 유효하게 닿을 것이라 느꼈습니다. 시간과 장소를 넘어 살아 있는 영화는 무엇을 붙들고 있기에 이렇게 우리에게 도달하는 걸까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을 떠나 한 명의 관객으로서 생각한다면, 결국 영화에는 누군가가 살아낸 시간이 담겨 있고, 우리는 그것을 함께 나누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이야기 자체보다도 어떤 온도나 호흡, 혹은 한 장의 이미지 같은 것이 더 오래 남는 편인데요.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모여 영화 속 인물들이 살아가는 시간을 공유한다는 건 역시 영화이기에 가능한 경험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영화가 시대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하나의 소통 방식으로 느껴지기도 하고요. 설령 이야기가 또렷하게 남지 않더라도, 각자의 마음에는 분명 무언가가 새겨진다고 생각합니다.

안도사쿠라 SakuraAndo 마리끌레르영화제 MCFF 0.5mm MarieClaireFilmFestival
안도사쿠라 SakuraAndo 마리끌레르영화제 MCFF 0.5mm MarieClaireFilmFestival
트위드 재킷 Chanel.
안도사쿠라 SakuraAndo 마리끌레르영화제 MCFF 0.5mm MarieClaireFilmFestival
트위드 재킷과 스커트, 울 실크 브리프 모두 Chanel.
안도사쿠라 SakuraAndo 마리끌레르영화제 MCFF 0.5mm MarieClaireFilmFestival

배우 안도 사쿠라의 대단함은 ‘열연’을 열연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데 있다고들 말합니다. 영화 <0.5㎜>에서 그 부분이 유독 잘 느껴지고요. 이는 배우가 추구하는 연기의 어떤 태도이자 방향성과도 연결되는 것일까요?

저는 연기의 방향이나 기술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좋은 연기’에 대해 어떤 정답을 갖고 있지도 않고, (그것이 혹여 있다고 해도) 오히려 알고 싶지 않은 쪽에 가까워요. 영화를 만드는 시간, 그리고 제 삶 안에서 역할을 연기하는 시간을 두고, ‘좋은 연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크게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 시간을 어떻게 좋은 경험으로 만들어갈지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저에게도, 그리고 그 역할에도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 있는지, 그 안에서 무엇을 쌓아갈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조금 덧붙이자면, ‘좋은 연기’라는 말에는 어떤 목표나 한계가 전제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반면 멋진 경험에는 정답도 한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도,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도, 상상을 넘어서는 순간을 만날 수 있다면, 그 시간은 보는 이들과도 자연 스럽게 나누게 될 거라 믿습니다. 물론 제 쪽에서 그만큼의 훈련과 준비도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진심으로 즐길 수 없거든요. 어설픈 마음으로는 절대로 즐길 수 없습니 다. 힘들긴 하지만, ‘만만하게 보지 말라’는 마음으로 영혼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일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든 순간과의 만남이 제 인생에서 무척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나 목표보다 그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지요?

물론이죠. 그래서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억지로 맞추는 조화가 아니라, 어긋나는 것까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맞지 않는 조각도 그대로 즐기는 것도 조화의 한 모습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는 어쩌면 다분히 일본적인 감각일지도 모릅니다. 작품 안에서의 조화, 촬영 현장에서의 조화, 나아가 조화되지 않은, 거친 요소까지도 창작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연기가 좋다’거나 ‘이런 상태가 이상적이다’라는 답을 찾으려 하다 보면 오히려 중요한 것이 보이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도달해야 하는 무언가가 있거나 답이 있다면 거기에 닿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열심히 고민합니다. 다만 제가 내린 답을 맹목적으로 신뢰하기보다는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순간과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안도사쿠라 SakuraAndo 마리끌레르영화제 MCFF 0.5mm MarieClaireFilmFestival
안도사쿠라 SakuraAndo 마리끌레르영화제 MCFF 0.5mm MarieClaireFilmFestival
로고 패턴 포인트 실크 톱, 네크리스는 본인 소장품 모두 Chanel.

결국 어떻게 연기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관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배우라는 존재이기 이전에 한 생명으로 살아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기 역시 제 인생의 일부이기에 어설픈 마음으로 하고 있지 않아요. 인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삶을 걸고 제대로 마주하면서 하고 있거든요. 반대로 생각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를 만드는 시간 역시 제 삶 안에서 기적 같은 시간입니다. 그것은 배우라는 일이나, 누군가에게 영화를 전한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제 안에서 아주 큰 자리를 차지하는 시간입니다. 다만 이런 것들이 인터뷰에서 말로 표현되는 순간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그려지곤 하는데, 그건 제가 바라는 바가 아니에요. 뭐라고 해야 할지… 태어날 때부터 계속 같은 뜻을 가지고 살아왔고, 지금도 그 뜻에 따라 전력을 다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배우로 살아오며 스스로 넓어지거나 혹은 좁아지고 있다고 느끼기도 하는지요?

저에게 배우로 있는 시간은 하나하나가 굉장히 진하지만, 동시에 짧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일찍 결혼했고 아내이자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시간, 또 엄마로 살아가는 시간이 훨씬 더 길게 이어집니다. 그 안에서 제 생각도, 저 자신도 계속 바뀌어갑니다. 아주 근본적인 부분은 변하지 않지만, 일상을 살아가며 이전에는 알지 못하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변하지 않는 일상을 반복해서 살아가죠. 그 시간이 일종의 수행 같은 시간이어서 저 자신을 크게 바꾸고 있다고 느낍니다. 한편으로는 그러느라 배우로서 2~3년씩 공백이 생기기도 합니다. 자주 생기죠. 그 시간 속에서 얻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자기 안에 쌓이는 큰 경험 같은 건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결코 얻기 어렵다는 것이죠. 반대로 촬영은 짧은 시간 안에, 제 인생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을 한순간에 마주하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두 시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제 삶을 채워줍니다.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모두 소중하고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도사쿠라 SakuraAndo 마리끌레르영화제 MCFF 0.5mm MarieClaireFilm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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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울 드레스, 카프스킨 레이스업 로퍼 모두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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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한 트위드 재킷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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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한 트위드 재킷과 미디스커트, 톱과 울 실크 브리프 모두 Chanel.

마무리할까요. 이 질문의 답은 매 순간 달라질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 영화의 아름다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영화를 특정한 메시지를 얻기 위해 보는 편은 아닙니다. 만들 때도 무엇을 전달해야겠다는 의도로 접근한 적은 없어요. 그럼에도 그 안에는 반드시 ‘담기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의도적으로 담으려 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담기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죠. 이는 제가 영화를 볼 때도 느끼고, 만들 때도 그 순간을 기대하며 참여해요. 그 점이 영화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사람이 만드는 것이지만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연과 잘 공존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영화 안에 반드시 있거든요. 말이나 기술로 치환되지 않는, 거기에 담기는 무언가가 있어요. 그 무언가를 발견할 때 참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안도사쿠라 SakuraAndo 마리끌레르영화제 MCFF 0.5mm MarieClaireFilm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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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 톱 Chan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