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인간과 동물, 나아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일. 제11회 마리끌레르 영화제 ‘마리끌레르 초이스’ 부문 상영작인 <애니멀 킹덤>에는 정상성과 차별, 환경과 생태 위기를 아우르는 다층적 사유와 질문이 담겨 있다. 대안적 시공간을 상상하는 판타지 장르의 문법을 통해 공명하는 메시지를 던진 토마스 카일리 감독에게 <애니멀 킹덤>을 보고 떠오른 질문 몇 가지를 건넸다.

<애니멀 킹덤>의 시나리오를 팬데믹 기간 동안 집필했다고 들었다. 원인 모를 변이로 사람이 동물로 변해가는 역병이 프랑스 전역을 뒤덮는 설정은 예기치 못한 바이러스로 인류가 뉴 노멀을 경험한 지난 팬데믹 상황과 유사한 지점이 있다. 이 시기의 경험이 영화 제작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시나리오를 준비하던 2년간 팬데믹을 겪으며 느낀 지점들이 대본 전반에 흔적처럼 남아 있다. 우리는 팬데믹을 겪으며 사회를 지탱하던 기존의 규율이 얼마나 빠르게 뒤바뀔 수 있는지를 두 눈으로 목격하지 않았나. <애니멀 킹덤>에 내가 담아내고자 한 것 역시 이런 모습이다. 영화에서도 바이러스로 단 몇 주 만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등장인물들은 변해버린 이들을 위협적인 존재로 낙인찍고 배척할 것인지 혹은 이러한 미지의 존재에게 손을 뻗어 함께 살아갈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 같은 설정이 팬데믹 때 우리가 경험한 일들에서 영향을 받은 지점이 있다.

한편 변이가 발생한 계기나 이유를 파헤치기보다 이미 일반화된 사회를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점이 이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이와 같은 시점 설정은 당신이 작품을 통해 하고자 했던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되나?

영화의 타임라인을 돌연변이가 발생한 첫날로 설정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럴 경우 급변하는 상황에 대한 묘사가 이외의 모든 서사를 압도할 거라 생각했다. 그보다는 변이가 발생한 지 몇 년이 지난 시점, 사회에서 이들의 존재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갈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시 기라 가정할 때 두 주인공 프랑수아(로망 뒤리스)와 에밀(폴 키르셰) 부자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전례 없는 상황에서 이 가족은 어떻게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하며 나아갈까? 누군가가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들을 배척하고 소외시킬 권리가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구체화해나갔다. 돌연변이가 나타난 배경이나 히스토리보다도 이 질문들이 내겐 더 흥미롭게 다가왔고, 영화에는 이미 바뀌어버린 세상에서 어떻게 다 함께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사회의 면면을 담고자 했다.

<애니멀 킹덤>은 지난해 제29회 뤼미에르 영화제 감독상과 제49회 세자르 영화제 5관왕을 거머쥐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당신이 스크린 위에 펼쳐낸 서사와 장면이 지금의 영화계, 나아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이 영화의 세계관은 ‘인간이 동물로 변한다면?’이라는 독특한 가설을 전제로 하지만, 결국 한 가족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조명하고 있기에 모두가 공감할 만한 지점이 있다고 본다. 더불어 기후 위기나 생물 다양성 감소 등 총체적 생태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요즘, 인류는 지구상에서 혼자 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다른 동물들과 이 땅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많은 이들이 공감한 게 아닐까 싶다.

전작 <싸우는 사람들> 역시 현실 상황에서 출발해 판타지의 영역으로 세계관이 점차 확장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펼쳐지는 일들을 꾸준히 조명하는 것은 감독으로서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나?

나는 현실에 단단히 뿌리내린 상황에서 시작해 서사가 진행될수록 엄격한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판타지가 가미된 우화의 형태로 나아가는 영화적 구조에 매력을 느낀다. 또 공상을 전제로 한 메타포는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현재 처한 상황에 따라 자유로운 해석을 더할 수 있다. 어떤 관객은 <애니멀 킹덤>을 보고 이주 위기를 떠올릴 수도, 어떤 이는 자연과 다시금 연결될 필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허구와 상상의 영역을 탐구해 새로운 내러티브와 이미지를 창조해내게 하는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힘을 믿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생명체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영화 속 세계관에 한층 설득력을 더해준 것 같다. 인간과 동물의 모습이 섞인 반인반수 캐릭터의 외형을 구체화하며 영감을 얻은 이미지나 서적, 혹은 인물이 있나?

캐릭터 디자인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가상의 존재보다도 실제 동물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며 자연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 촬영에 돌입하기 2년 전부터 반년간 스위스의 그래픽 노블 작가 프레데리크 페테르스(Frédérik Peeters)와 함께 작업하며 포유류부터 조류, 갑각류 등 영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의 뼈대가 될 동물종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발전시켰다. 그와 구상한 디자인을 토대로 추후 형태학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캐릭터 디자이너 파비앙 오브라르(Fabien Ouvrard)와 작업을 이어가며 최종적으로 외관을 결정했다. 이 밖에도 동물과 식물, 인간 과 자연, 인위적인 것과 자연스러운 것 사이의 경계에 질문을 던지는 퍼트리샤 피치니니(Patricia Piccinini)나 극사실주의 조각 작품을 선보이는 론 뮤익(Ron Mueck) 같은 현대 예술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

같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공간 역시 CG를 최소화하고 실재하는 장소를 활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이 역시 서사에 현실감을 더하려는 노력이었나?

긴 시간에 걸쳐 제작진이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작중 설정을 하나씩 구축해가며 극이 사실성을 갖도록 하는 게 이 영화의 중요한 과제였다. 이 때문에 단 한 장면도 블루스크린을 활용하지 않았고, 프랑수아 가족이 머무는 울창한 숲도 실제 프랑스 남서부에 있는 국립공원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애니멀 킹덤>은 인물들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명력을 되찾고,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 숨 쉬는 세상으로 변모해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공원 안쪽에 원시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울창한 숲이 있는데, 이곳을 배경으로 삼는 것만으로도 이 서사에 현실감을 더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프랑수아와 그의 아들 에밀이 공유하는 부자간의 유대감이 서사의 중심이 되는 작품이다. 위기 상황을 함께 헤쳐가는 두 세대의 내밀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중점을 둔 부분이 있나?

개인적으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의 전승이란 주제를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다. 에밀은 서서히 동물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다 점차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법을 배우고, 자신 안에 내재하는 갈망과 자유, 그리고 힘에 눈 뜨게 된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프랑수아는 중요한 버팀목이 되어줄 뿐 아니라 그전까지 변이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버리고 아들을 존재 자체로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혈연으로 맺어진 둘 사이의 유대가 영화 전반에 걸쳐 서서히 깊어지고, 이 유대를 통해 두 캐릭터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

영화를 완성하고 난 뒤, 다음 세대에 어떤 세상을 물려주어야 할지 해답을 찾았는지 궁금하다. 또한 인간이 동물, 나아가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은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보나?

<애니멀 킹덤>을 열린 결말로 마무리 지은 이유는 ‘앞으로 인류가 살아갈 터전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우리 몫’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배타성이 주는 안정감을 좇을 것인지, 혹은 타인과 미지의 세계에 마음을 열고 우리를 둘러싼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다시 배울 것인지를 우리 세대가 결정해야 한다는 거다. 나는 이 영화에 담긴 프랑수아와 에밀 부자의 이야기를 통해 서로 다른 세대가 함께 조화를 이루며 미래를 그려갈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봤고, 이 희망이 관객에게도 가닿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애니멀 킹덤>의 세계관 속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동물로 변하고 싶은가?(웃음)

영화를 준비하며 숲속에 있는 늪 주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거기에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늪을 지켜주는 수호자 역할을 하는 왜가리들이 있었는데, 내게도 변이가 나타난다면 왜가리로 변신해 그들처럼 느리고 우아한 모습으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싶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