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주년을 맞아 더욱 알찬 라인업으로 꾸린 올해의 마리끌레르 영화제에는
15편의 근사한 영화들이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세 명의 필자가 이 중 7편을 선정해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꺼내 보여주었다. 영화제를 앞둔 설렘을 더하는 추천의 글과 함께.

WRITER
이화정
저널리스트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

감독 빔 벤더스
출연 야쿠쇼 코지

자, 지금부터 설명할 <퍼펙트 데이즈> 속 중년 남성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이 영화의 전편에 걸쳐 힌트를 주듯 설명된다. 재미있는 건 등판에 ‘The Tokyo Toilet’ 이라고 쓰인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지금껏 영화에 등장 하는 화장실 청소 인부 캐릭터에 흔히 주어지지 않던 이 남자를 꼬치꼬치 알아가는 시간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그는 차 안에서 카세트테이프로 루 리드나, 니나 시몬, 패티 스미스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 밤에는 다다미방의 깔끔하게 편 이불 위에서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를 펼쳐 들고 읽다가 잠들고, 헌책방에 가서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책을 착착 골라 든다. 점심시간에는 벤치에서 자연의 소리와 이미지를 즐기며, 올림푸스 똑딱이 카메라로 흔들리는 나뭇잎을 찍는다. 영락없는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형 인간상인데, 이런 그의 행위는 꼭 힙하게 보이려고 한다기보다 아마도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이 취향을 고수해 몸에 밴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도쿄의 시모키타자와에 있는 중고 레코드 숍에서 1만2천 엔에 거래되는 루 리드의 테이프를 그는 오래전에 싸게 샀을 것이고, 요즘 값이 좀 많이 뛰었다고 굳이 그걸 되팔아 수익을 얻을 생각도 없는 유형의 남자.

히라야마의 이러한 취향의 세계는 반복되는 그의 일상을 통해 드러난다. 말했듯이 이 영화는 시작부터 히라야마가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출근 준비를 하고 일하고 점심 먹고, 퇴근 후엔 목욕탕에 가고, 단골 술집에 가서 술 한잔 하고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눕는 근 일주일간의 일상 루틴을 참으로 침착하고, 찬찬하고, 끈질기게 기록한다. 마치 1백23분에 달하는 이 영화의 러닝타임쯤, 히라야마의 일상을 따라가는 데 흔쾌히 다 내어주겠다 작정한 것 같은 감독의 결심이 읽히는 전개다. 물론 브이로그는 아니다. 아마도 이변이 없는 한 계속될 그의 루틴을 깨는 일도 더러 생기는데, 이를테면 불쑥 남자의 조카 니코(나카노 아리사)가 삼촌 집으로 가출을 해 엄마가 찾으러 오는 일이다.

“내가 사는 세상과 니코 엄마가 사는 세상은 달라.” 히라야마의 한마디, 잘 차려입고 운전기사까지 대동한 니코 엄마의 등장 등으로 짐작할 때, 그가 아마도 ‘다른 세상’ 에서 온 것으로 짐작된다. 별다른 대사도 없다. 사실 히라야마는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표정을 보여주긴 하지만, 대개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 손수 도구까지 챙겨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히라야마를 보면서 꾀를 부리는 어린 동료가 “뭘 그렇게까지 하세요? 어차피 더러워질 텐데.”라고 할 때도, 헌책방 주인이 히라야마가 골라 온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책을 보고 ‘공포와 불안의 차이’를 언급할 때도, 단골 술집 주인이 “히라야마 씨는 참 지적이야”라고 평가해줄 때도, 그는 미세한 표정으로 웅변하거나, 수긍하거나, 멋쩍어할 뿐이다. 아마도 지금의 또 다른 세상에 평온하게 안착하기까지, 그가 변한 세상을 받아들일 때까지 어떤 풍파가 있었을지 우리는 영화에 흩뿌려진 작은 힌트들을 통해 짐작해볼 뿐이다.

분명 이런 전개가 조급증이 날 만도 한데, 보다 보면 한편으로는 이 ‘무언의’ 설명이 주는 효과가 꽤 경제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빔 벤더스는 혼자 히라야마의 과거를 애써 보여주거나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에게 그의 과거를 더 많이 유추하게 해주는 효과를 불러온다. 사실 누구나 남들에게는 일일이 설명하지 못하지만 힘들었던 시절, 아픈 속내가 존재한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그럼에도 그걸 극복하고 마음의 평정을 찾고 하루하루의 일상을 찾아가는 데 매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걸 이 영화는 법석 떨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루틴을 따라가는 히라야마의 일상을 보여주며 설파한다. 그러고 보면 도쿄타워를 보며 매일 도쿄의 화장실을 청소해 번 약간의 돈으로 살아가는 중년의 히라야마나 미국 뉴저지주에서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며 시를 쓰는 짐 자무시 영화 속 패터슨(<패터슨>)이나 참 용케도 자신들 삶의 밸런스를 찾아 가며 살아가고 있구나, 이건 좀 우리 삶에 적용해볼 만한 캐릭터인데,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히라야마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가질 법한 과묵한 언어와
씁쓸한 표정을 모두 가지고
발산해내는 야쿠쇼 코지의 연기가
주는 감흥이 크다.”

다분히 인생 철학의 묘미를 담은 이 영화의 시작은 조금 싱겁다. 지금부터는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사실 지금의 <퍼펙트 데이즈>가 나온 건 기적 같아 보인다. 이 영화는 완벽하게 의뢰를 받아 만들어진 작품이다. 도쿄의 시부야구 공중화장실을 수리하는 ‘THE TOKYO TOILET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뭔가 영상을 만들 계획을 세운 것이다. 주최 측에서 빔 벤더스 감독에게 이 프로젝트의 뜻을 살릴 단편영화라도 만들어달라고 초대하면서 시작된 영화다. 이런 경우 대개 감독의 전작에 대한 리스펙으로 의뢰하는 경우가 많아 기획물이 타이트하게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결과물도 느슨해지는 경우를 여럿 봤다. 시도는 좋지만, 그저 기획 의도만 간신히 건져 올린 작품이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말이다. 아니면 그저 곧이곧대로 도쿄의 공중화장실이 소개되거나, 혹은 화장실 청소를 하는 인물들의 증언이 수록된 다큐멘터리가 나올 수도 있었겠다 상상해본다. 그런 면에서 <퍼펙트 데이즈>는 그렇게 간단하게 기획물의 카테고리로 밀어 넣기에는 아까운 구석이 많은 영화다. 특히 히라야마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가질 법한 과묵한 언어와 씁쓸한 표정을 모두 가지고 발산해내는 야쿠쇼 코지의 연기가 주는 감흥이 크다. 부디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 가 흐르는 가운데, 도쿄타워를 보며 운전하는 히라야마의 마지막 클로즈업 컷을 극장에서 꼭 확인하기를. 칸 영화제는 인생을 통달한 것 같은 이 사연 많은 남자의 일상 연기에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그러고 보면 왜 빔 벤더스가 이 프로젝트에 초청됐는지 짐작되는 구석이 많다. 여행자의 스타일로 볼 때 특히 도시 탐구에 뚜렷한 취향이 있는 데다, 오즈 야스지로의 팬으로도 잘 알려진 그는 오래전 16mm 카메라를 들고 도쿄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속 공간을 열심히 찾아다닌 사람이기도 하다. 그 결과물이 다큐멘터리 <도쿄가>다. 히라야마라는 주인공의 이름도 짐작한 이들이 많겠지만, 그는 오즈 야스지로의 페르소나인 류 치슈가 <동경이야기> <꽁치의 맛>에서 가졌던 캐릭터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다시금 오즈 야스지로에게 헌사를 바친다. 히라야마는 비록 도쿄의 한 구역, 매일 같은 길로 출퇴근을 반복하지만, 확실히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밀리언 달러 호텔> <돈 컴 노킹> 등 기억할 수 있는 무수한 영화에서 길 위를 떠돌던 이들에게서 본 그 고독, 소외, 번민 같은 것을 품은 남자임에 틀림없다. 어떤 면에서는 빔 벤더스 본인의 취향을 캐릭터에 이식한 게 아닐 까 짐작되는 부분도 많다. (똑딱이 카메라를 든 히라야마의 취향! 빔 벤더스는 사진집 <한번은: 빔 벤더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도 출간했다. 히라야마의 선곡 리스트나 도서 목록도 눈여겨봐야 할 이 영화의 텍스트다.)

영화의 말미에 ‘고모레비(木漏れ日)’라는 단어가 나온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뜻하는 말인데, 고모레비는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고 한다. 결국 우리가 무심결에 지나치는 한순간, 한순간이 유일하고 소중하다는 뜻이 된다. 히라야마가 평범한 도쿄 변두리에서 올림푸스 카메라로 담아내는 컷이야말로 이 순간의 소중함, 고모레비다. 살아가는 동안 어떤 풍파가 지나가더라도, 이제는 삶의 밸런스를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감독의 철학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아 적어도 이 영화를 빔 벤더스의 최고작에 올리지는 않더라도 마음에 간직할 관객이 많을 것은 확실해 보인다.

파묘 Exhuma

감독 장재현
출연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연상호 감독이 <부산행>으로 한국 좀비물의 포문을 열며 기원이 되었다면,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은 <곡성>의 나홍진 감독과 함께 한국 관객에게 오컬트물을 친숙하게 만든 주역이다. 기억을 되돌려보면 <부산행>은 개봉 당시 좀비물이라는 장르를 언급하면 홍보 마케팅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을 우려해 영화 공개 전 ‘좀비의 등장’을 가리려 했고, <검은 사제들> 역시 홍보 단계에서 오컬트물로 규정을 자제하는 것을 기피하는 것이 홍보 전략 중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좀비물이나 오컬트물은 상위개념인 공포 장르의 하위 장르로, 이 장르가 시작된 할리우드 기준으로 볼 때는 대중에게 선택받기보다는 소수의 마니아층이 환호하는 ‘B급’ 혹은 ‘마이너’ 영화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어, 영화를 작아 보이게 만들 우려가 없지 않았다. 게다가 낯선 장르라 관객이 보기도 전 호기심을 차단할 우려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한국에서는 이 장르가 할리우드와는 조금 다른 접근, 다른 제작 규모로 출발했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 <올드보이>가 스릴러물 중 ‘한국형 스릴러’ 라는 특징으로 대중 영화로 자리매김했듯이, 한국에서 좀비물과 오컬트물은 ‘장르를 잘 다룰 줄 아는’ 연상호, 나홍진, 장재현 감독의 브랜드와 스타 캐스팅, 제작 규모 면에서 분명 ‘대중 영화’ 선상에서 출발한다. 알다시피, <부산행>은 제작비 90억원 규모의 대작으로 공유, 정유미, 마동석, 김의성 등 스타급 배우의 멀티 캐스팅으로 1천1백57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곡성> 역시 황정민, 곽도원 등 흥행성과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 파워와 집요한 연출로 6백8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를 모 은 작품이다. <검은 사제들>은 김윤석, 강동원 같은 톱 배우들의 출연으로 엑소시즘을 한국 대중 장르물에 녹여내 흥행에 성공한 사례로 손꼽힌다.

오컬트물인 <파묘>가 밟고 있는 제작 기반은 이렇듯 한국 대중 영화의 범주 안에서 탄탄하게 출발한다. 할리우드 공포물 장르에서 출발한 감독이 이 장르를 어떻게 점점 ‘한국적으로’ 접목하고 변용해 한국 관객뿐 아니라, 해외 관객들에게까지 어필할 수 있는 독창성을 획득해왔는지 지켜보는 일이 자못 흥미롭다. <검은 사제들>이 소녀의 몸에 들어간 악마를 내쫓는 사제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판 <엑소시스트>’로 규정할 수 있다면, <사바하>에 와서는 장르의 틀을 가져오되 사이비 종교와 기독교 문제를 가져옴으로써 철저하게 한국의 현재를 가늠할 수 있는 한국적 소재로 장재현 감독의 시선과 특징을 확장해간다. <파묘>는 이렇게 한국의 토양에서 출발해 소재와 장르를 결합하는 감독 특유의 감식안이 한 단계 더 나아갔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장재현의 마크가 단단하게 부착된, 한국형 오컬트물의 성공 사례다.

그가 장르의 토대 위에 불러온 재료들은 이른바, 한국의 장례 문화에 기반을 둔 이장, 미신, 무속, 풍속 같은 토착 신앙이다. 디지털 문화가 자리 잡고, AI가 우리의 역할을 대신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한국인의 뿌리에 깊이 각인된 DNA의 힘은 면면히 끈질기게 이어져온다. 그렇게 땅에서, 무덤에서, 과거에서, 나아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만든 스토리라인은 흥미로운 이야기에 목마른 관객의 촉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야기는 이렇다.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부호에게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이 의뢰인에게 묫자리 이장을 권한다. 이에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의뢰받은 일에 착수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마치 귀신 잡으러 가는 ‘고스트 버스터즈’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파묘>에는 이 익숙한 이야기가 어떻게 관객에게 흥분을 주고 새롭게 다가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면밀하고 영민한 시도가 많이 담겨 있다.

“땅에서, 무덤에서, 과거에서,
나아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만든 스토리라인은 흥미로운
이야기에 목마른 관객의
촉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장재현 감독은 실제로 2~3년간 이 분야에 통달한 지관, 장의사, 무속인 등을 취재하며 리얼리티를 확보했다고 하는데, 이 지점은 플롯에 반영되었을 뿐 아니라, 극의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나의 묫자리지만 땅을 파 보니, 관 아래 또 하나의 관이 포개진 ‘첩장’의 개념을 활용해 이야기의 구조를 쌓아 올리고, 이야기의 미스터리를 풀어줄 존재인 ‘험한 것’으로 나아가는 뼈대의 신박함이 있다. 즉, 마치 ‘여우가 뱀의 허리를 끊은’ 영화의 펀치 라인 같이 영화를 구성한 데서 이 영화의 첫 번째 시도가 읽힌다. 1막과 2막처럼 구성된 이야기에서, 1막이 오컬트 장르에 충실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2막은 현재에서 거슬러 올라가 일제강점기를 소환하는 역사적 지점까지 닿는다. 이 전개에는 분명 관객의 호불호, 찬반이 뒤따르는데 장르적인 면에서 볼 때 장르의 법칙을 깨버리는 시도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과거사를 소환한 주제 의식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참신한 전개로도 읽힌다.

<파묘>가 새롭게 읽히는 또 하나의 지점은 등장인물의 구성이다. 플롯을 보면 짐작할 수 있는 의뢰인을 필두로 무당과 풍수사, 장의사 같은 캐릭터가 소환되어 사건을 해결할 ‘유닛’, 하나의 팀이 조직된다. <파묘>의 묘미와 재미가 시작되는 지점은 이 팀의 성별, 연령, 성격의 구성 이다. 의뢰인은 응당 그럴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한국이 아니라, 미신과 풍습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은 미국 LA 거주자이며 무당들은 스니커즈를 신고, 헤드셋과 문신으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MZ 세대의 특징을 고스란히 전시한다. 이 새로운 세대의 무당이, 경력과 연륜을 갖춘 풍수사, 장의사와 충돌과 화해를 거듭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늘 대립하고 반목하는 현실의 서로 다른 세대가 어떻게 조우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해결책을 제시하는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작중 캐릭터 간 조화가 배우 연기의 밸런스와 궤를 같이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단단하게 판을 깔며 장르적 이야기를 과장되지 않게 땅에 안착시키는 최민식의 노련함과 자유자재로 한계 없는 매력을 발산하며 지금껏 가장 도발적이고 강렬한 연기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 김고은의 연기가 좋은 대구를 이루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파묘>가 세운 기록은 우리 모두 잘 안다. 오컬트 장르의 범주 안에서 상상하지 못한 관객의 선택을 받으며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파묘>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시장에서 호응을 불러일으키며, 역대 한국 영화의 흥행 성적을 갈아 치우고 있다. 극의 구조가 시리즈물의 토대를 가졌다는 점에서 후속편을 기대하고, 장재현 감독의 또 다른 장르 파헤치기를 응원하게도 된다. 스코어 면의 성과뿐 아니라, 장르의 파급효과 등 <파묘>가 남길 영향력은 분명 영화 한 편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