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7mcmamd11_01여자친구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카톡을 보내도 읽지 않는다. “네 마음을 모르겠어.” 여자친구가 마지막으로 보낸 카톡이다. 나는 PC방 앞에 서서 그녀가 보낸 카톡들을 읽었다. 그녀가 먼저 집에 들어갔느냐고 물었고, 20분 뒤에 “ㅇㅇ”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날씨가 덥다는 둥, 집에 먹을 게 없다는 둥 불평을 주절주절 늘어놨다. 그래서 나더러 어떡하라는 뜻이지? 그건 자기 사정인데. 나는 뭐라고 해야 할까? 그녀의 불평에 답은 해야만 했다. “그래, 힘내!” 이모티콘도 날렸다.

물론 카톡이 올 때마다 바로바로 답한 것은 아니었다.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레벨 업 중이었다. 직장 상사한테 오는 카톡도 씹을 만큼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래도 사랑하니까, 틈이 나면 그녀에게 답했다. 카톡 소리 때문에 내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남자들은 멀티플레이가 안 된다. 다른 일과 카톡은 동시에 못한다. 그럼에도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도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메시지의 양

우리는 자주 카톡을 했다. 날씨 이야기는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개탄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그린피스의 활동과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카톡창을 채워나갔다. 자연스럽게 음악과 사진, 짤방을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했다. 우리는 영화 이야기도 자주 했는데,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와 최근에 본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늘어놓았다.

나는 운전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느라 점차 그녀에게 답톡을 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다시 말하지만 남자들은 멀티플레이를 못한다. 그녀가 메시지 열 개를 보내면 나는 두세 개를 보냈다. 나는 여전히 카톡으로 대화를 길게 못한다. 목적 없는 수다는 어려웠다. 남자의 카톡이 짧아지는 것은 그녀를 위해 준비한 말을 다 소진했다는 뜻이다. 내게는 수다보다 그녀를 다시 만나는 게 중요했다.

말 없는 남자

우리는 소개팅으로 만났다. 처음 만난 날 해가 지기도 전에 집에 가는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 즐거웠다고. 그녀는 이모티콘으로 답했다. 나도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 뒤로 며칠간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녀가 예쁘고 맘에 들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와 자고 싶지만 자자고 보낼 수는 없으니까. 첫 만남 후 남자들은 약자가 된다. 먼저 연락하고 장난 섞인 농담을 하는 건 바람둥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가 먼저 연락하길 기다린다.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녀의 카톡을 기다렸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솔직히 난 어장 관리라도 당하고 싶었다.

질문톡

남자는 연애를 시작하기 직전까지 궁금한 게 많다. 그래서 카톡으로 맥락도 없는 질문들을 던진다. 그건 여자와 대화가 끊어지는 게 아쉬워서다. 몇 번의 데이트를 하는 동안 서로를 알아간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정식으로 사귄 건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연애관이 궁금했다.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고 그녀는 질문에 곧잘 대답했다. 나는 끊임없이 질문했다.

새벽의 카톡

하루의 절반은  그녀 생각을 했다. 출근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 퇴근 후 술 마실 때도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와 함께 마시면 더 즐거울 것 같았다. 밤늦게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녀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면, 지루하게 집 안에만 갇혀 있다면, 내가 순하리 세 병을 들고 가서 그녀를 구출해줄 수 있었다. 남자들이 호감 가는 여자에게 카톡을 보낼 때는 늦은 밤 취했을 때다. 하지만 그녀는 자는지 답이 없다.

너무 늦은 답톡

평소처럼 딱히 좋을 일 없는 아침이었지만, 그날은 달랐다. 그녀가 먼저 카톡을 보냈다. 어제 일찍 잠들었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카톡을 읽었지만 당장 답할 수가 없었다. 운전 중이었고, 신호에 걸리지 않았다. 부랴부랴 출근했지만 지각을 면치 못했고, 오전부터 회의가 이어졌으며, 점심에는 미팅이 잡혀 있었다. 그녀에게 카톡할 짬이 난 건 늦은 오후였다. 남자들은 업무처럼 감정 없이 보내는 카톡에는 능수능란하지만, 좋아하는 여자에게 카톡을 보낼 때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감정을 다스릴 시간적 여유가 생겨야 보낸다. 그러니 남자가 답이 늦을 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고 보면 된다.

단답형 카톡

연애를 시작하고, 서로에게 익숙해질수록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불쾌한 감정을 문장으로 드러내는 방법은 쓸데없는 수사를 제거하는 것이다. 단답형으로만 답했다. 우리 사이는 빠르게 냉각되고, 다음 날이면 다시 뜨거워졌다. 참고로 남자들은 호감이 없는 여자와 연락하지 않는다. 상대 남자가 단답형으로 답하거나 이모티콘 위주로 카톡을 한다면 카톡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나쁜 남자가 되기 싫은 비겁한 남자들의 매너를 가장한 수법이다.
나는 카톡이 싫다. 문장과 어조, 이모티콘으로는 내 마음을 다 담을 수 없다. 나는 목소리를 더 믿는다. 만일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면,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다면, 나는 PC방을 나와 카페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소리가 전달하는 미세한 떨림, 높낮이, 침묵의 길이 등이 우리를 더 솔직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반면 카톡은 서로의 마음을 추리하게 한다. 추리는 오해를 낳는다. 남자들은 애인의 마음을 의심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