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게임을 고르고 있는데, 누군가 베개로 내 뒤통수를 후렸다. 돌아보니 여자친구가 침대 머리에 기대고 앉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분명 책을 읽겠다고 했는데…. TV 소리가 컸던 걸까? 여자친구의 독서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가만히 소리를 낮췄다. 그렇게 게임에 열중하는데, 여자친구가 방문을 열고 나가 현관문을 닫고 사라졌다. 그게 끝이었다. 그녀는 공간을 나와 외계로 사라지고, 나는 블랙홀에 남아 그녀가 남긴 중력을 느끼려고 애썼다. 협탁에는 몇 권의 소설이 있었다. 그녀는 한 권씩 읽지 않았다. 동시에 여러 이야기를 섭렵했다. 성애 장면을 발견하면 페이지 끝을 접어놓고, 다른 책을 집었다. 나는 독서에 흥미가 없었다.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탐독하는지 알려고 한 적조차 없었다. 하지만 사라진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잠시 게임을 멈추고, 그녀가 접어놓은 페이지를 펼쳤다.
<고래> 천명관
천명관이 섹스를 묘사하는 방식은 거리다. 그는 겉에서 시작해 내부로 들어간다. 섹스가 두 사람의 관계가 가까워져야 가능한 것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성애 장면에서 그는 인물의 외형을 먼저 적나라하게 소개하고, 이어 감정을 설명한다. 외부에서 시작해 내부로 이어진다. 그 과정이 매우 자연스럽고 인위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속도감까지 느껴진다. 읽으면서 감탄했다. 놀라운 점은 영상 콘텐츠에만 길든 내 몸 역시 반응했다는 것이다. 그의 문장들에 심취하고, 묘사들이 머릿속에서 명확하게 그려졌다. 문장의 힘이다. 현대 소설 에서는 섹스를 감성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묘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적나라한 과정을 인물의 표정, 감정, 아름다운 것들로 치환하는 식이다. 하지만 천명관은 노골적이다. 적나라하게 그 모습을 그린다. 그리고 나는 그의 기법에 빠져들었다.
“뜨거운 덩어리가 목울대를 치밀고 올라왔다. 몸속의 내장이 죄다 밖으로 튕겨나갈 것 같은 두려움과 흥분에 그녀는 울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격정의 단단한 엉덩이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물론 유쾌해야 할 문단은 아니지만 그가 남자의 성기를 양물, 물건, 기물 등에 비유할 때는 웃음이 났다. 이야기의 배경이 과거이기에 그의 사용한 단어들 역시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고래>에서는 어딘지 과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한 자짜리 그러니까 30센티가 조금 넘는 성기를 묘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큰 물건은 큰 여자와 만난다. 그리고 적나라한 섹스를 한다. 그 섹스는 꽤 거칠다. 봇물이 터질 정도이고, 세포가 폭발할 정도다. 그의 소설에서는 성애 묘사가 터진다고 해야겠다. 불만족하거나 섹스 중에 상념에 빠지는 인물 또는 섹스에 무기력한 인종 따위는 없다. 이런 강렬한 문장들을 읽으며, 내 축 처진 어깨를 바라봤을 그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그리고 김연수가 있었다. 김연수가 쓴 아름다운 문장들을 인터넷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그는 내가 경험한 감정을 상상조차 못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글로만 가능한 방식이었다. 나는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지만, 슬펐던 기억만 있을 뿐 성애 장면은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접어둔 페이지에는 아름다운 정사 장면이 들어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미끈거리는 여옥이의 몸 안으로 남해 푸르른 물결 하나를 밀어 넣었다. 우리는 둘이서 함께 모든 맨몸의 물고기들을 따뜻하게 덮어주는, 세상에서 가장 큰 푸른색 이불이 됐다.”
김연수는 표현력과 문장력은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가 성애 묘사에 사용한 단어들은 시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의 묘사는 시에 가깝다. 그러니까 이해하기 쉬운 시 말이다. 사용하는 단어들은 자연에서 따온 것들이고, 그것들이 성기, 애무나 삽입 행위를 대체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것이 더 야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밤은 노래한다>에서 정사는 이야기의 한 축이고, 사건이고, 반드시 필요한 갈등이다. 그리고 김연수는 그의 방식대로 시처럼 섹스를 그린다. 그 문장이 너무 아름다워 가슴이 설레었다. 그녀 역시 그랬을 테지만.
<제리> 김혜나
여자는 섹스를 어떻게 묘사할까? 두 남성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나서, 여자친구가 엎어둔 김혜나의 <제리>를 펼쳤다. 김혜나의 섹스는 앞선 두 소설보다 익숙했다. 낯익은 광경이었다. 우리가 지난 주말에 했던 섹스를 옮겨놓은 것 같았다. 아니 과거 다른 여자들과 나눈 경험을 몰카로 찍어다 옮겼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배경이 동시대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김혜나의 문장들은 매뉴얼처럼 친절했다. 정확한 단어만을 사용하고, 행동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다른 장면을 떠올릴 수 없이 명확하다.
“가랑이 사이에 묻힌 불알을 한쪽씩 빨아들여 입에 넣고 애무하다가 항문과 불알 사이를 혀로 쓱 핥았다. 그러고는 다시 귀두를 향해 올라가자 제리가 ‘으음’ 하며 옅은 신음 소리를 냈다.”
섹스의 시점은 여성이다. 강압적인 남성과 비교적 유연한 남성 두 명이 등장하는데, 각 섹스의 분위기는 다르지만 묘사하는 방식은 같다. 섹스에 수식어를 덧붙이거나 비유를 사용하지 않는다. 너무 정확히 묘사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위 문장을 비롯해 소설에는 다양한 체위와 기술이 등장했다. 그럼에도 이걸 완독한 그녀는 왜 내게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을까? 기술을 배웠는데, 대체 왜? 플레이스테이션에서는 게임 음악이 흘러나왔고, 나는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다. 미안하다고, 이제 다 알겠다고. 글로 너를 배우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