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앵글 찾기가 관건
액션캠이 나오기 전부터 우리 커플은 밤의 쾌락을 담은 다큐를 종종 휴대폰이나 디카로 촬영하곤 했다. 처음엔 권태기를 극복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했지만,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느낄 때, 아내도 과연 만족하는지 혹은 내 실력에 문제는 없는지 성찰할 때, 이 기록 영상은 제법 유용하게 쓰인다. 찍다 보니 좀 더 나은 영상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 고정해 찍는 영상은 구현할 수 있는 화면에 한계가 있고, 들고 찍는 핸드헬드 기법은 다양한 앵글을 시도할 수 있지만 영상이 흔들려서 선명한 영상을 얻기가 원체 어렵다. 이런 딜레마에 빠져 있던 차에, 보급형 액션캠이 출시된 것이다. 마치 우리의 고민을 알고 있었다는 듯 나타난 액션캠. 여태껏 찍어온 어떤 촬영 기기보다도 생동감이 뛰어나다. 하지만 몇 번 써본 결과 내 스타일은 아니더라. 액션캠에 부착된 광각렌즈의 특성상 영상 가장자리에 약간의 왜곡이 발생하는데 이 때문에 화면을 넓게 담을 수는 있지만, 원하던 섹시한 영상미를 얻기 위해서는 특정 앵글을 찾는 수고가 동반된다. 어떤 각도에서는 상대의 얼굴이나 머리만 크게 담기고 핵심 부위가 오히려 ‘부속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섹스하랴, 촬영하랴, 촬영 영상 확인하고 다시 파트너 각도 잡아주랴. 정작 중요한 흥분은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나처럼 상대의 반응에 민감한 사람에게 액션캠이 보여주는 화면은 그저 ‘라이브 영상’일 뿐, ‘섹시한 다큐’와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아내와 나는 아이들 물놀이 영상을 찍거나 여행 갈 때나 쓰자고 합의하고 옷장에 고이 모셔뒀다. 줌 기능이라도 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아쉽다. J, 남·34·회사원
요거 물건이네
액션캠을 산 사람들의 반응은 이후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몇 번 쓰고 나니 쓸 일이 없다는 이들과 다양하게 활용하며 액션캠이 선사하는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다는 사람. 굳이 따지자면 나는 후자에 속한다. 밤마다 마실 나가는 우리 집 외출냥에게 달아서 고양이의 일상을 훔쳐보기도 하고, 피트니스 자세를 교정하는 용도로 쓰기도 한다.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꿀잼을 느끼는 건 섹스할 때다. 처음에 액션캠을 들이댔을 때 그의 반응은 한마디로 뜨악이었지만 지금은 영상 편집부터 관리까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전문가의 경지에 이르렀다. 반복되는 섹스 패턴에 지루함을 느끼는 남녀부터 야밤의 운동에 액션캠을 활용해보고 싶은 얼리어답터 커플을 위해 몇 가지 팁을 전하자면, 첫째는 야동 감독도 아닌데 처음부터 끝까지 섹스의 전 과정을 담으려 애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즉, 처음부터 무작정 액션캠을 머리에 달고 침대에 뛰어들지 말라는 소리다. 일단 침대 헤드나 사이드 테이블 등 앵글을 확보할 수 있는 곳에 고릴라 삼각대로 액션캠을 고정해놓고, 특정 체위일 때 본격적으로 촬영에 임해보라. 여러 체위를 시험해본 결과 후배위일 때는 남자가 촬영을 하고, 여성 상위 상태에서는 여자가 촬영을 하는 것이 가장 그럴싸한 그림을 얻을 수 있었다. 머리에 액션캠을 착용하려면 카메라가 보이지 않거나 눈에 거슬리지 않는 체위가 가장 최적화된 체위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촬영한 영상에선 파트너의 흥분과 감정, 그리고 자신의 흥분까지 그대로 전해지니 남의 야동을 돌려 볼 필요가 없다. 팁 하나 더! 돈 아낀다고 싼 거 사지 말고 제대로 된 걸 사길. 야간 촬영 및 손 떨림 방지 기능과 라이브 뷰 기능이 얼마나 요긴하게 쓰이는지, 여러 촬영 기법을 시도하다 보면 절로 필요성을 알게 것이다. 처음이 어렵지, 쏠쏠한 재미를 알고 나면 그다음은 쉽다. L, 여·32·피트니스 강사
대륙의 실수, 나의 실수
최근 중국제 액션캠을 구입했다. 후기에 따르면 성능은 액션캠의 명기 ‘고**’ 못지않은데 가격은 참 착하다고 했다. 몇 번 쓰다 시들해져도 본전은 뽑겠다 싶은 저가 모델. 휴가 가서 셀프 동영상도 찍고, 자전거 블랙박스로도 써야지. 대륙에서 날아온 소포를 뜯으며 느꼈던 그 희열과 의욕은 촬영 결과물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저급한 화질과 편의성은 싹 무시한 인터페이스 역시 중고나라 직행감이었다. 하지만 영감은 막다른 골목에 부딪혔을 때 새록새록 솟아나는 법. ‘대륙의 실수 팝니다. 3회 사용. 직거래 원함’이라는 게시물 작성 완료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생각지 못했던 액션캠의 다른 용도가 떠올랐다. 가장 은밀하고 역동적인 스포츠, 섹스를 담아본다면? 야간 촬영에 강하고 흔들림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데다가 촬영자가 영상의 주체가 되는 액션캠의 특성을 생각해볼 때, 섹스가 딱 부합하는 장르 같았다. 완전 삭제를 조건으로 여자친구의 승낙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지만, 팔기 전 마지막으로 액션캠의 성능을 확인해보고 싶은 불굴의 의지는 결국 통했다. 첫 촬영이자 마지막 촬영을 하던 날, 헤드 마운트 액세서리에 액션캠을 부착하고 촬영을 개시할 때까지 나는 세기의 거장 감독이라도 되는 양 의욕에 들떠 있었다. ‘큭, 너 꼭… 아냐, 아냐.’ 자지러지게 웃는 여자친구의 반응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거울을 보니 웬 미니언즈 한 마리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좋게 봐줘야 막장에 들어가기 직전의 광부랄까. 전라의 몸뚱이와 머리 위 첨단 장비의 조합은 생각보다 끔찍했고, 상상만큼 섹시하지도 않았다. 가끔 상상만으로 그쳐야 아름다운 일들이 있는데, 음…, 이게 딱 그렇다. P, 남·29·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