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살아라
천성적으로 참견의 여왕이었던 예전 상사는 사소한 서류 형식에서부터 앉는 자세까지 지적했고, 원래 소식하는 나를 두고 매일 점심시간마다 옆에 붙어서 ‘넌 왜 애가 그만큼밖에 안 먹니? 그래 가지고 어떻게 일을 해’ 하며 꼭 한두 마디씩 면박을 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사장 앞에서는 온갖 다정한 척을 다 하고 뒤에서는 피를 말리는 통에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상사를 피하게 되었다. 그러자 버릇 운운하며 나를 두고 ‘모자란 아이’라고 몰아세우는데, 그 순간 아, 이 구역 미친X은 바로 저 여자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그길로 바로 사표를 제출했다. 그녀를 상사로 두며 생긴 소화불량과 신경성 위경련, 폭식 증세가 이직하고 한 달 만에 싹 사라지는 인체의 신비를 경험하고는, 나를 미워하는 상사는 안 보고 사는 게 무병장수에 이롭다는 걸 알게 되었다. 후에 내 후임으로 들어온 사람도 나와 똑같은 사유로 얼마 못 가서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내 선택은 옳았다. _P, 패션 디자이너
적은 가까이 두라
내 상사는 예전에 뒤에서 내 험담을 하곤 했다. 나는 잔업을 하지 않기 위해 업무 시간에 아주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그는 퇴근 시간까지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다가 저녁 먹고 돌아와서도 한두 시간을 더 허송하고서야 집에 가는 타입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자신의 패턴을 따를 것을 강요했다. 그래서 주말에 나오라고 해도 나가지 않고, 상사가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도 모르는 척 내 일만 했다. 그 대신 뒤에서 내 흉을 보는 줄 알면서도 딱 시치미 떼고 오히려 먼저 상사에게 다가가서 사근사근하게 챙겼다. 윗사람은 필연적으로 외롭다. 그래서 챙겨주는 후배에겐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연다. 결국 내 상사는 이제 나에게 야근을 강요하지 않는다. 상사의 불합리한 요구를 따르지 않아서 미움을 받더라도 그의 페이스에 마지못해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의 성과가 좋으면 결국 상사도 내 스타일을 인정하고 일정 부분 이상은 터치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대부2>에서 알파치노가 친구를 가까이하고, 적들은 더 가까이 두라고 그랬던가. 나를 미워하는 상사도 예외가 아니다. _S, 출판사 편집부
상사의 가까운 동료를 포섭하라
첫 직장이 직원이 몇 명 되지 않는 작은 회사였는데, 그래서인지 회사 대표는 신입사원인 나에게 아무 개념 없이 사적인 일을 시키고는 했다. 커피 심부름은 가벼운 부탁 정도였고 자기가 어디까지 가야 하니 빠른 길을 알아봐라, 아침마다 본인 하루 스케줄을 확인해서 기사에게 알려줘라, 사무실 자리의 화장대를 치워라 등등 경계가 없었다. 문제는 내가 비서직이 아닌 엄연히 영업직 사원으로 입사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 인상이 너무 무뚝뚝하고 세 보여서 일부러 더 잡일을 시키며 기를 꺾으려 했다는데, 나로서는 일에 집중하느라 싱글벙글할 수 없었던 것뿐이었다. 아무튼 아무리 대표의 지시여도 내 본업에 영향을 받는 수준의 심부름을 하기는 싫었던 나는, 대표가 아끼는 우리 팀 팀장에게 넌지시 대표가 지시한 사항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방법을 택했다. ‘대표님이 빠른 길을 찾으라는데 어떻게 찾을까요?’ ‘대표님 아침 스케줄 확인한 것은 어디에 연락하면 되나요?’ ‘대표님께서 화장대 정리하라고 하시던데 이거 치우면 되는 건가요?’ 등등. 이렇게 물을 때마다 팀장은 왜 자신의 팀원에게 이런 허드렛일을 시키느냐며 대표에게 나 대신 부당함을 따졌다. 그 후로 대표는 더 이상 나에게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다. _L, 대기업 영업팀
자멸할 때까지 기다려라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만 편애하는 대리와 그런 대리의 말이면 곧이곧대로 믿는 과장이라는 답 없는 조합에 고통받던 때가 있었다. 처음 본 날부터 사람 얼굴 한번 쳐다보지 않고 내 질문을 듣고도 대꾸도 않더니 나한테 화장을 왜 그렇게 진하게 하느냐, 왜 아무 생각 없이 일을 하느냐 등등 공사를 구분하지 않고 트집을 잡았다. 특별히 이유도 없었다. 결국 그녀는 나를 10개월가량 다른 부서로 파견했다. 그런데 거기서 담당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잘 나오면서 사내에서 내 평판은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좋아졌고, 그녀로서도 나를 다른 팀으로 쫓아낼 구실이 없으니 파견 기간이 끝난 후 원래 팀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돌아와서 보니 날 미워하던 대리는 육아휴직을 내고 회사에서 사라졌고, 그런 대리를 감싸던 과장은 되레 본인이 인사이동의 대상이 된 상태더라. 때로는 목석처럼 그냥 버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_O, IT 회사 마케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