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의 ‘나 오늘 안 들어갈 건데요’라는 자극적인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송아람의 <자꾸 생각나>는 흔하게 떠올리는 만화적인 요소가 빠져 있어 더 묘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채색을 찾아보기 힘든 그림은 연필 선이 그대로 살아 있어 독특하다. 그림보다 글이 더 많은데도 내용 하나라도 놓칠세라 집중해 보고 자꾸 다음 장을 펼치게 된다. 레진코믹스에서 웹툰으로 처음 연재한 이 작품은 작가가 직접 경험한 만화가의 일상과 연애를 특유의 색으로 표현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공동 작업실에서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20대 중반의 주인공은 만화가로 데뷔하는 게 꿈이지만 아직은 습작에 그칠 뿐 받아주는 곳은 없고, 오래된 남자친구와의 연애도 지지부진하다. 그러던 중 동경하던 만화가 도일과 만나게 되고, 각자 애인이 있는데도 둘 사이엔 특별한 감정이 생겨난다.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지독하게 궁상맞기도 한 연애사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어 어쩐지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생각나기도 한다. 작가는 윤리와 비윤리 사이에서 줄을 타는 모순된 상황을 설정해 독자들을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그게 외려 현실적이어서 더 몰입하게 만드는 생생한 매력의 작품이다.
<자꾸 생각나>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 제대로 20대의 마지막을 즐기기도 전에 출산과 육아에 지칠 대로 지치고, 돈벌이를 위해 힘들고 재미없는 일을 질리도록 하고 있다는 사실에 회의감이 들었다. 결국 내 만화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외부 작업을 하는 와중에 틈틈이 창작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누가 보든지 말든지 상관없었고, 그저 내 일상과 생각의 기록이라는 느낌으로 시간 날 때마다 하나씩 그려가다 보니 모인 것이 <자꾸 생각나>다. 결혼을 일찍 한 편이라 ‘꽃피는 연애에 대해 못다 한 말이 아직 너무 많다’는 생각에 연애를 장르로 한 만화를 꼭 그리고 싶었다.
상당히 자기 고백적 내용으로 보인다. 주인공이 마치 작가의 분신처럼 느껴지는데 실제로는 어떤가? 주인공 ‘장미래’는 나와 얼굴, 직업, 성격까지 비슷하게 설정했고, 전개되는 이야기상의 연애의 설정, 흐름 등은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 세세한 일화나 내용의 어느 정도는 허구다.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남편이나 다른 작가들과 이야기하면서 보고 들은 내용이 영감이 되어 작품에 섞여 드는 경우도 많다. 오히려 실제 경험을 얼마나 많이 담는가 하는 것보다는, 허구를 얼마나 실제처럼 리얼리티를 살려서 구성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가장 현실적일지 고심해서 스토리를 짰는데 그 노고를 알아주는 것 같다.
만화가 더없이 현실적이다. 창피하고 지질한 부분까지도 리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많은 부분이 공감 가기도 한다. 내가 만화가고, 내 일상이 이렇고, 내 연애가 이랬다는 내용을 전체적으로 담고 싶었다. 연애를 하면서도 각자 다른 사람에게 끌려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고, 사소한 걸로 다투고, 혼자만 좋아한다는 생각에 헛헛해하고 질투하기도 하는 현실은 누구에게나 있었을 일들이다. 특히 이 만화에서는 누군가의 뒷담화를 하거나 속으로 남의 흉을 보면서 자기 입장만 신경 쓰기 급급한 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그런 부분도 너무나 사실적이라고 공감하는 독자가 많다.
책이 매력 있다. 그림체도 독특하고 간결하다. 무엇보다 그림보다 글이 더 많은데 이상하게 빠져들어서 계속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만화를 만들기 위해 하는 작업 중에 비효율적인 과정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히려 힘을 빼고 이것저것 하다가 생각나는 걸 일기처럼 그렸다. 러프하게 콘티를 그려놓은 걸 그대로 쓰면서 대사도 전부 손글씨로 내버려뒀다.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 작업만 뺐을 뿐인데도 훨씬 자연스러운 그림체와 특유의 손맛이 잘 드러나서 그걸 더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나중에 책으로 편집할 때 그 러프함이 전해지면서도 보기 편하게 편집하느라 고생을 좀 했다.
다음 작품으로는 어떤 걸 구상 중인지 궁금하다. 어린 시절 유학 경험을 살려,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스스로 고독하다고 생각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릴 예정이다. 그렇다고 우울한 내용은 아니고, 세상 고통을 전부 짊어진 듯 생각하며 어른인 척하는 소녀의 모습과 일상에서 소소한 웃음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생각하고 있다. 물론 내 유년 시절이 소재니까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경험이 녹아들 것 같다. 진짜 어른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재도 계속 생각 중이라 어느 게 먼저 나오게 될지는 모르겠다. 항상 기억과 경험을 되새기고, 구상하고, 상상하는 편이라 창작물로 만들고 싶은 스토리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