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로네, 보츠와나 (Gaborone, Botswana)
컬러 인 더 데저트 패션위크(Colour in the Desert Fashion Week) 기간에 진행된 브랜드 블랙트래시(Black Trash)의 화보 촬영 현장을 찾았다. 아프리카 각지의 스타일리스트들은 패션위크 기간이면 모두 보츠와나의 수도 가보로네로 몰려든다.
잔혹한 전쟁의 잔해, 끔찍한 질병, 배고픔에 고통받으며 슬픈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어린아이들. 언제부턴가 우리는 아프리카 하면 이런 어두운 이미지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아프리카의 현실은 불행하기만 한 걸까? 스웨덴 출신의 사진작가 페르-안데르스 페테르손(Per-Anders Pettersson)은 사람들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매체가 실어 나르는 아프리카의 열악한 모습에 익숙해졌고, 결국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깊이 자리 잡게 된 것이라 생각했다. 무려 20년에 걸쳐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하며 사진 작업을 해오던 그는 지난 2009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중산층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그곳의 생동감 넘치는 패션 트렌드와 문화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 받은 영감이 계기가 되어 아프리카의 새로운 모습,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건강한 움직임을 담아낸 사진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이제는 아프리카에 대한 경쾌한 이미지 또한 조명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들만이 가진 특유의 풍성하고 화려한 색감과 통통 튀는 트렌드를 사진에 담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아프리카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아프리카에서는 분명 여전히 수많은 사회적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인권 유린이나 종교적 갈등,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발한 전쟁, 가난과 질병 등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접하던 슬픈 사건들 말이다. 반면 뉴스에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아프리카에서는 행복하고 기분 좋은 일들 또한 벌어진다. 서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급격히 부상한 중산층이 다져온 소비 시장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프리카의 중산층을 이루는 사람들은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을 사는 데 큰돈을 쓰기도 하고, 유럽에서 들여온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기도 한다. “아프리카에 패션 열풍이 불기 시작한 건 그들의 경제적 상황이 점점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소비문화가 발전하면서 시장이 넓어졌어요.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유명한 브랜드의 제품을 갖고 싶어 하죠. 독일의 자동차 회사인 메르세데스-벤츠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패션위크를 공식적으로 후원하고 있고, 음료 브랜드인 베일리가 나이지리아 패션위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케냐의 패션 시장에도 세계적인 회사들이 대거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진출하는 유럽의 패션 브랜드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요. 아프리카의 패션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걸 알 수 있죠. 저는 몇 년 안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패션 트렌드가 전 세계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칠 거라고 확신해요. 마치 중국이 1980년대를 거치며 빠르게 성장한 것처럼요.”
유럽의 패션계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패션계에도 다양한 스타일과 트렌드가 존재한다. 아프리카 대륙의 특이한 기후와 자연환경이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이 되어 아프리카에서만 볼 수 있는 패션 트렌드가 생겨난다. 특히 풍부한 자원과 수준 높은 수공예 기술을 바탕으로 한 소재의 다양성은 디자이너들에게 더욱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선사하기도 한다. 가나에서 만들어진 직물과 에티오피아에서 생산된 전통적인 직물을 바탕으로 새로운 원단을 개발했고, 그렇게 탄생한 소재에 디자이너의 감각이 더해지며 신선한 패션 스타일이 완성됐다.
아프리카에서 만들어지는 독특한 소재는 유럽의 디자이너들에게까지 전해져 패션계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다. 스텔라 진, 폴 스미스, 버버리, 모스키노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서아프리카에서 만들어진 다채로운 색감의 소재를 즐겨 사용하며, 영국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오래전부터 아프리카 패션에서 받은 영감을 표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지난 컬렉션 의상들은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나라 부르키나파소에서 생산된 원단과 케냐의 마사이족이 만든 전통 구슬 장식으로 디자인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그녀가 발표한 가방인 ‘스퀴글 레오퍼드 러너 홀돌(Squiggle Leopard Runner Holdall)’와 ‘스퀴글 쇼퍼(Squiggle Shopper)’는 케냐의 전통 수공예 기술로 만들어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이제 서구 패션 시장을 장악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이미 진출에 성공한 디자이너도 제법 많죠. 아프리카 남부 모잠비크에서 활동하던 젊은 디자이너 타이부 바카르(Taibo Bacar)는 유럽의 패션 시장에서 전도유망한 디자이너로 주목받았어요.” 디자이너 타이부 바카르는 아프리카의 감성을 풍성하게 담아내면서도 여성스러운 디자인이 돋보이는 컬렉션을 선보이며 아프리카를 넘어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의 패션 시장에서 활발하게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디자이너 라두마 엥조콜로(Laduma Ngxokolo)는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문양을 패션에 적용한다. 그의 독특한 디자인은 오슬로, 베를린, 뉴욕 컬렉션에서 호평을 받았고 런던의 패션 피플이 사랑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아프리카의 패션계의 흐름을 보면 그곳의 문화 수준과 경제 상황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세차게 불고 있는 패션과 트렌드의 뜨거운 열풍이 세계시장에 어떤 형태로 혹은 어느 정도의 규모로 영향을 끼치게 될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다만 그들이 오랜 세월 겪어온 아픔을 딛고 쌓아온 전통과 에너지를 바탕으로 전 세계를 흔들 만한 거대한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