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링을 하다가 괴상한 풍경 하나를 목격했다. 사무실인데 책상과 의자가 없다. 대신 높낮이와 경사를 달리한 기하학 형태의 구조물이 공간 가득 들어차 있고, 직원들은 구조물 위에 앉거나 서서 혹은 기대거나 누워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회의를 한다. 거대한 구조물이 사용자의 편의에 따라 책상이나 의자, 침대로 분했다. TV 프로그램 <있다! 없다?>에 나올 법한 이 드림 오피스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없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 문화 그룹 RAAAF(Rietveld Architecture-Art Affordances)와 비주얼 아티스트 바르바라 피서르(Barbara Visser)가 2025년 사무실의 미래를 예언한 설치 작품 ‘The End of Sitting’이다. ‘아직’ 없되, 곧 등장할 것이라 단정하는 이유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무실의 변화가 이와 닮았기 때문이다
IT 기업과 스타트업 회사들은 이미 ‘워크 스마트’라는 이름 아래 근무 방식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벌이고 있다. 혁신의 시작은 스탠딩 데스크다. 2~3년 전부터 의사들은 ‘몸을 비꼬든 앞뒤 좌우로 비틀거나 흔들든 걷든 상관없으니 제발 앉지만 마라!’ 하고 외쳤고, 장시간 앉아 근무하는 것이 대사증후군, 하지정맥류, 심혈관 질환 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를 공개하며 ‘좌식의 종말’을 주장했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유행한 서서 일하기 문화는 곧 한국에까지 전파됐다. 헬스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회사 엔자임헬스는 지난해 가을부터 서서 일하는 공동 사무 공간 ‘스탠딩 존’을 마련했으며, 신청자에 한해 개인 스탠딩 책상을 지원한다. 엔자임헬스의 유찬미 컨설턴트는 “서서 일한다고 하면 종일 서 있을 거라고 오해하는데, 책상 높이를 조절하며 앉았다 섰다를 반복할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벌 서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웃음) 허리를 다친 이후로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마다 통증이 있어 스탠딩 책상을 사용하게 됐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허리 통증은 확실히 줄었고, 다리 부종도 가라앉았다.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는 업무 능률 향상. 집중력이 떨어지는 오후 2~3시에는 주로 일어나서 업무를 보는데 잠 깨는데 이만한 방법이 없다. 누군가는 다이어트에도 좋을 거라고 했지만 1시간 서 있는다고 몸무게가 줄진 않는다. 그래도 체형을 유지하는 데는 꽤 도움이 되는 편”이라고 말한다. 엔자임헬스에는 8명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대형 스탠딩 테이블도 있어 하루에 한 번은 ‘일동 기립’한 채 회의도 한다. 스탠딩 테이블 앞에 하체운동에 도움이 되는 스태퍼를 설치해 발판을 밟으며 업무를 볼 수도 있다. 이 변화에 정부도 거들었다. 지난 7월 미래창조과학부 정책총괄과 직원들이 경기도 정부 과천청사 사무실에 있는 스탠드 바 형식의 책상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자리 없는 회사’도 있다. 국내에도 진출한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업체 CBRE은 미국 지사에 한해 ‘워크플레이스 36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정석을 없앴다. 책상은 먼저 오는 사람이 임자! 개인 노트북을 사용하고, 책상마다 고유 내선 번호를 설정할 수 있다. 주택을 사옥으로 개조한 에어비앤비 코리아 역시 총 2층, 4개 사무 공간의 주인이 매일 바뀐다. 지난 4월, 신용산 신사옥으로 이전한 LG유플러스는 서비스 디자인 개발 업무를 담당하는 UX개발센터에 한해 자율좌석제를 시작했다.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만큼 개방적인 분위기를 구현하고자 한 것.
세계에서 가장 긴 책상은 어떤가? 미국 광고대행사 바바리안(Barba-rian Group)은 약 335m 길이의 책상을 완성했다. 구글, 디즈니 등과 함께 일한 세계적인 건축가 클리브 윌킨슨(Clive Wilkinson)의 작품이다. 최대 1백75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이 책상은 면적만 무려 410㎡. 직원들이 지위에 상관없이 하나의 책상에 앉아 일한다는 동질감을 주기 위해 고안한 디자인으로 많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다양한 곡선을 사용했다. 가구라기보다 건축물에 가까운 이 테이블은 2014년 ‘인사이드 월드 페스티벌 오브 인테리어(Inside World Festival of Interior)’에서 최고 오피스 디자인 상을 받았다. 건축가 클리브 윌킨슨은 광고 에이전시TBWA/Chiat/Day 사무실 안에 50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던 이다.
사무실의 기상천외한 변화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염려스럽다. 위의 사례들을 지침 삼아 직원의 창의성과 업무 효율은 사무실 책상 하나 바꾸면 해결된다고 믿을 이 땅의 CEO들 때문이다. 입 아픈 소리지만 직무 환경 만족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개인 생활 만족도다. 근무시간의 물리적 양이 개인의 능력치과 비례한다고 믿는 기업 문화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아마 오랫동안 우리가 회사에 바라는 최고의 복지는 ‘정시 퇴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