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은 여전히 성수동이다

피혁 공장이며 신발 공장에서 나는 쉴 새 없이 우르릉 돌아가는 기계와 잰걸음으로 분주하게 제품을 나르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제조업의 열기로 늘 시끌벅적한 성수동. 언젠가부터 그런 풍경을 한 박자 느긋하고 한 톤 부드럽게 만든 문화 예술의 순풍이 성수동에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옛 건물과 젊은 감성의 공간이 오묘한 조합을 이루는 이곳을 탐험하는 재미에 매료되었다. 낮은 임대료와 자유로운 분위기를 찾아 모여든 예술가들의 바람과 달리 몇 해 지나지 않아 거대한 상업지구로 면모하고 만 몇몇 지역이 그러했듯, 이곳 역시 같은 유의 변질이 일어날 것을 걱정하는 시선도 많다. 다행히 아직까지 성수동은 재기 넘치는 아티스트와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젊은 상인들, 성수동의 터줏대감인 구두 장인들이 제법 균형 있게 어우러져 익숙하면서도 낯선, 오묘한 즐거움을 준다. 지역 예술가들은 공장 건물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카페 손님들은 예술과 사회에 대해 토론하는 등 여러모로 지역을 더욱 젊게 만드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지만, 산보하듯 한 바퀴 쓱 둘러보면 여전히 ‘동네’ 같아서 좋은 곳이 성수동이다.

카페 성수의 조금 다른 시작

이렇게 새로운 공간들이 옛 풍경에 녹아들며 조금씩 성수동의 면모를 바꾸어나가고 있는 때, 지난 5월에 문을 열었다는 카페 성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지루할 틈이 없다는 말도 함께 말이다. 주택가 어귀에 자리한 카페는 오래된 단독주택을 개조한 곳이다. 앞마당이었을 공간은 탁 트인 카페 테라스가 되었고, 돌계단 몇 개를 올라가면 나오는 현관문과 반지하층으로 연결되는 옆문은 각각 멋들어진 철문의 카페 입구로 변신했다. 제일 아래층은 원목 테이블과 가죽 소파, 빈티지한 조명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카페 공간이다. 층 전체가 하나로 탁 트인 1층에는 좀 더 많은 커피 테이블과 그랜드피아노가 놓여 있다. 다른 카페와 조금 다른 점은 볕이 잘 드는 통유리 창 곁에 두꺼운 암막 커튼이 젖혀져 있고, 바닥까지 훤히 밝히는 하이라이트 조명이 천장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2층에 올라가니 좀 더 아담한 카페 공간과 함께 프라이빗 룸이 마련돼 있고, 그 옆에 독립된 조리 공간이 있다. 레스토랑의 조리실이 아닌 가정의 부엌 같은 모양새다. 주택을 개조한 곳이라지만 보통의 카페에선 찾아볼 수 없는 요소들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 장치들은 모두 카페 성수가 마련한 작은 기획들을 위한 것이다. 피아노가 있는 1층은 어느 밤이면 두꺼운 암막 커튼을 드리운 채 공연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콘서트홀로 깜짝 변신을 하고, 안락한 인테리어가 어느 가정집 부엌에 온 듯한 2층의 조리 공간은 삼삼오오 친구끼리 동료끼리 모여 쿠킹 클래스를 듣는 요리 교실이 된다. 한편 기다란 카페 테이블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낭독회를 열고 도화지에 슥슥 드로잉을 한다. 커피를 즐기러 온 손님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이들의 모습은 카페 성수를 만든 청현문화재단 이수형 이사장이 처음 이 공간을 구상할 때 머릿속으로 그린 광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에겐 세상이 뒤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한 가지, 바로 끊임없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공유와 공감을 갈구하는 사람의 본질을 채워줄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다운타운의 번쩍이는 네온사인보다는 따뜻한 가로등 불빛이 있는 곳,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분위기보다는 머무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지는 곳에서 그런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하여 성수동에 안착한 그녀의 프로젝트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미래원의 여러 교수들의 지원사격을 받아 구체화되었다. 정원이 네댓 명에서 많아야 열댓 명 남짓한 클래스는 모두 규모는 작지만 그 뜻은 제법 당차다. 지역 주민 누구든 허물 없이 함께 강의와 공연과 취미 활동을 즐기는 성수동 커뮤니티의 활성화, 그리고 친구, 가족, 어떤 구성이건 개개의 공동체가 행복하게 삶을 공유하도록 만드는 장이 되기를 꾀한다.

지식을 나누고 진심을 더하는 공간

하지만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정작 그것을 풀어나갈 도구가 마땅치 않다면 반쪽짜리 계획일 수밖에 없다. 카페 성수는 공간을 구상한 주체가 패션, 조리, 만화 등 다양한 방면의 문화 예술에 관한 교육을 담당하는 문화산업대를 이끄는 인물이라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었다. 카페를 연 후 6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미래원의 많은 교수들과 문화계 인사들이 카페에서 클래스와 공연을 진행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양질의 콘텐츠는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갔다. 카페 성수에서 사람들은 책을 낭독하면서 인문학적 교양을 쌓기도 하고, 단지 그냥 조금 더 멋진 낙서를 하고 싶어서 드로잉 수업을 듣기도 한다. 어떤 프로그램은 좀 더 친밀한 사람들과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다. 동창들끼리 프라이빗 쿠킹 클래스를 듣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집에 묵혀둔 와인을 들고 와 호텔 총주방장 출신의 셰프가 직접 선보이는 파인 다이닝 코스와 함께 즐기기도 한다. 예약만 하면 원하는 시간과 메뉴를 정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겨울에 잠시 쉬고 4월경에 다시 시작되는 플리마켓 ‘꽃장’은 지난 6개월간의 마켓 수익금을 전액 성동구 학생들의 장학 기금으로 기부했다. 정원에서 인디 뮤지션의 미니 콘서트와 함께 벌어진 장터는 동네 사람들과 성수동 나들이에 나선 젊은이들을 한데 모았다. 사람들이 서로의 삶과 지식, 온정을 나누는 장소이자 진심 어린 공감대를 만들어주는 공간. 나아가 성수동을 공유하는 공간이 되는 게 카페 성수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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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OB
‘Bring Your Own Bottle’ 프로그램을 예약하면 카페에서 제공하는 파인 다이닝 코스를 즐기며 직접 가져온 와인을 마실 수 있다. 4명부터 14명까지 예약 가능하다. 레스토랑에서 와인 한 병을 마시는 데 드는 돈을 생각하면 합리적인 금액으로 즐거운 모임을 가질 수 있겠다.

낭독 모임
매주 화·수·목요일에 두 시간씩 진행되는 ‘낭독 시크릿’ 모임에선 다양한 도서를 함께 소리 내어 읽는다. 작가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1백 번 낭독하는 ‘백독회’ 또한 인기다. 12월까지는 극작가 최창근이 소개하는 수필을 읽고 음악 감상도 곁들이는 강좌 또한 열린다.

쿠킹 클래스
복종대, 노재승, 황지희 등 청강문화산업대학교 푸드 스쿨 교수로 재직 중인 유명 셰프들에게 소규모 요리 교습을 받을 수 있다. 4인 혹은 5인 그룹으로 예약할 수 있고, 메뉴는 셰프와 상의해 다양하게 조정할 수 있다. 이탤리언, 프렌치, 한식, 일식은 물론 ‘야메 요리’ 메뉴도 있다.

더하우스콘서트 in 카페 성수
매월 둘째 주, 넷째 주 화요일에 열리는 음악회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 없이 연주자의 연주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어 인기가 좋다. 클래식 공연이 주를 이루는데, 11월 24일에는 마림바 연주자 쉬-이 우(She-e Wu)의 공연이 열린다. 2만원으로 공연을 감상할 기회다.

그림 강좌
12월 중순까지 매주 토요일에는 최석운 작가의 그림 강좌가, 수요일에는 최호철 작가의 드로잉 수업이 열린다. 미술 작품과 그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보고 듣고 싶다면 최석운 작가의 강좌를, 자신 없는 그림 솜씨를 본격적으로 높이고 싶다면 최호철 작가의 강좌를 추천한다.